안녕하세요
J-Virtue Media 상구 & 오감성경사역연구원 입니다.
코로나19로 각 예배도 축소되고 미디어로 대체되고 있는 암울한 상황입니다.
심지어 각 부서 예배도 축소 통합되는 분위기인데요.
예배가 줄어서 뭐 할지 고민하기보다는 조금 더 기도와 간구가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오감성경 유튜브 채널을 통해서 복음캠프 자료 나눔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는데요.
영상 올리고 거의 하루 만에 구독자가 100명을 넘어섰습니다.
자료가 필요하시다면 바로 영상 링크로 가셔서
구독하시고 댓글 달아주시면 자료를 보내주신다고 합니다.
본문: 창 1:26~31
제목: “창 B4: 창조 Ⅱ(창조)”
암송 | 본문 | ||
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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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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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29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 거리가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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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또 땅의 모든 짐승과 하늘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먹을 거리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31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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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및 연구 & 묵상
오감성경사역연구원 김성찬 목사
천지창조!
이 세상이 어떻게 만들어졌는가에 대한 진지한 물음과 그 답을 찾는 구도가 어쩌면 인생의 답을 찾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만약,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세계 라면, 누가 창조했으며 왜 만들었는가! 또한 인간의 발생이 자연 발생인가 그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것인가! 만약,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면, 그는 왜 인간을 만드셨는가! 답을 ‘알고 있다’는 우리는 이런 질문조차 하지 않는 것이 문제이겠지만, 아무리 탄탄한 삶아가는 삶일지라도 이런 답을 구하지 못한 인생은, 어딘가 모르게 답답하고 해결되지 못한 물음 하나를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이것은, 어떤 사람이든 ‘엄마’를 찾는 본성과도 같은 것이다.
놀랍게도 성경은 우리가 가질 수 있는 모든 물음에 대답을 해주고 있다. 천지만물의 기원, 온 현실 세계의 기원을 이야기해주고 있다. 우리는 이 기록을 성경의 첫 책이자 첫 장에 있는 내용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익숙함에 있겠으나, 종교 경전이라는 믿음의 테두리를 벗어나 인문학이라는 큰 틀 속에서 본다면 자칫, 우리만의 이야기로 그칠 위험성을 안고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창조는 과학의 영역도 아니요, 증명의 대상도 아닌, 믿음의 대상이다. 창조의 행위에 대한 증명을 통해 신의 존재를 규명하는 역설적 구도가 팽배한 이 세대에서 “믿음”이라는 도구로 의심 한 번 없이 수용 가능한 대상으로 자리 잡고 있다. 즉, 창조는 해석이나 설명이 도구가 아니라 “믿음”의 영역이라는 것이다. 그 믿음의 실체를, 대상을 논리적으로 규명하고 과학적으로 입증하고자 하는 노력을 ‘창조과학’이라는 명목 아래 마치 의례 그래야 하는 것인 양 받아들여졌다는 점이다. ‘창조과학’이라는 이상한 논리로 성경의 기록을 과학적으로 증명 가능한 영역으로 격하시킨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창조과학’ 따위로 증명 가능한 기록이 아니다.
즉, 믿음의 영역을 과학적으로 입증되었다 하여 믿을 만한, 믿어도 되는 결론으로 안정감 가질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이것을 과학주의 신앙이라 하니, 우리의 신앙이, 특히 창조의 주제를 가지고 설명되어야 할 여러 과학적 논증을 들이대며 믿음의 근거를 제시받을 이유와 명분도 없다는 점이다. 하지만, 과학과 신앙을 분리하여 과학은 과학이고 신앙은 신앙이라는 점을 구분하고 선을 긋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초중고에서 배우는 과학지식들이 성경과 배치된다는 점을 우리는 너무도 당연한 듯 받아들이면서 가르치고 있다. 즉, 학교에서 배우는 과학의 여러 이론들이 창조를 통해 드러난 하나님의 신성을 부인하듯이 결론을 내리고 배격하고 경계하는 자세로 아이들에게 ‘믿음’을 강요했음을 시인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과학과 신앙의 절충을 찾는 과정에서 과학과 신앙을 분리하여 ‘성경’에 접근한 결과라고 본다. 특별히 ‘창조’에 있어서만큼은 엄격하고 엄중하여 ‘믿음’이 맹목적인 신앙으로 자리를 잡아 교과서가 틀리다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우리는 가르치는 자로서 이 부분에 더욱 정직하게 반응해야 할 것이다. 세상의 기원은 ‘믿음’에 대한 부분이라는 점을 정확하게 고백하고 시작해야 한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만드실 때에 사용하신 방법이 ‘창조’라는 것을 인정하고 시작해야 한다.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가 원하는 세상을, 그의 시간 안에, 그의 영역 속에서 얼마든지 조성하시고 새롭게 하실 수 있다는 것을 명시해야 한다.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즉, 우리가 사는 지구가 최초의 지구인지 어떻게 아는가? 모르는 것이다. 끊임없이 별이 생성되고 사라지는 끝을 알 수 없는 우주의 영역 속에서 지구라는 별이 우주 공간에서 최초의 지구가 현재까지의 지구인지 어떻게 알 수 있느냐이다.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현재’를 지배하는 시간의 개념 안에서 겨우 점의 점과 같은 정도로 이해되는 것이지 이것을 우리의 관점에서 하나님의 ‘창조’를 다 해석하려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수 천 번 업고 덮으셨을지 알 수 없는 영역이므로 우리는 그저 창세기 1장에 기록된 ‘창조’의 역사가 현재까지 이어진다는 사실에 감격해야 할 것이다. 놀랍지 않은가! 언제 일어난 줄도 모르는 ‘창조 사건’이 현재에도 동일한 역사의 흐름 안에 이어져 있다는 사실이...!
엄격히 말하면 우리는 창조된 존재라기보다는 조성된 존재이다. 무에서 유로 ‘창조’된 것은, ‘빛’이 유일할 정도로 6일 동안 하나님이 하신 것은 극히 제한 적이다. 그렇다고 하여 하나님 그 자체가 제한이 있으시거나 능력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해하지 말 것이며 오류에 빠지지 말 것이다. 마치, 이창호 9단이 바둑 초단자를 이겼다고 하여 그의 능력이 초단자를 이기는 수준 정도가 아닌 것과 같다. 하나님의 ‘창조’는 그런 영역으로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흙으로부터 조성되었다. 그 흙은 셋째 날, 궁창 아래의 물이 한곳으로 모인 후 드러난 뭍이다. 그렇게 모인 물은, ‘하나님의 신은 수면 위에 운행’ 하였다는 표현에 따르면 언제부터 있었던 물인지 알 수 없는 그야말로 미지의 물이다.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물’이라는 표현이라 해도 무방하다. 그 물 아래 흙, 즉 ‘바닥’이라는 개념으로밖에는 설명할 수 없는 그런 흙이 존재했었음을 성경은 이야기한다. 그래서 그 흙이 언제부터 있었는지도 알 수 없는 부분이겠으나 어쨌든, 우리는, 사람은, 인간은, 첫 사람 아담은, 그 수면 아래 감추어져 있던 흙에서 비롯되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무에서 유에서 창조된 존재라고 하기엔, ‘우리의 형상을 따라’라는 표현이 발목을 잡기 때문이다. 그래서 분명,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조성되었고 만들어진 존재라는 것만큼은 부인할 수 없는 부분이다. 이렇게 사람이 조성되고 완전하게 세상을 이룰 때까지 하나님은 6일의 시간을 보내셨다. 6일 정도는 되어야 다 만들어질 수 있는 천지 세계이기 때문이 아니다. 6일이라는 시간 그 자체에 의미가 발견되어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있을 것이기에 하나님은 그렇게 하신 것이다. 왜 그러셨을까를 묻고 그 답을 찾고자 진지하게 연구하고 노력하는 것이 헛된 것은 아니겠으나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하셨다는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겠다.
그렇다면 각 일차들에 따라 하나님이 하신 것은 무엇일까? 천지 조성되는 시작 점 이전의 상태가 어떠하였는지는 각설하고 시작한다. 먼저, 하나님은 첫째 날에 ‘빛’을 만드신다. 이 ‘빛’의 정체가 별이 폭발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라 할 수도 있고, 단순한 분출일 수도 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현재 우리가 확인하는 ‘가시광선’ 으로서의 빛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아마도 질량 덩어리 일 수도 있고, 빅뱅일 수도 있고, 거대한 정말 정말 거대한 초신성 일 수도 있고, 블랙홀의 충돌 일 수도 있고... 모른다. ‘빛’ 덩어리이다. 이 ‘빛’으로 인해 ‘어둠’과 ‘밝음’의 개념이 시작되었고 ‘시간’의 개념이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첫째 날’이라고 하신다. 이것을 어떻게 ‘설명’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우리가 현재 지배받고 있는 ‘시간’은 태양계가 만들어진 넷째 날에 이루어진 것인데 첫째 날이라 이야기하는 그 ‘날’을 ‘욤(히브리어)’, ‘24’시간이라고 단정할 수 없는 바이다. 그래서 하나님이기 때문에 그가 능력이 부족하여 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기에 24시간으로서의 날이라는 ‘믿음’을 강요해서는 안 되는 부분이라 하겠다. 성경이 이야기하지 않는 부분은 겸손하게 이야기 한 부분까지만 수용하면 되겠다.
그런 후, 하나님은 하늘이라 칭하신 궁창을 만드신다. ‘공간’을 만드신 것이다. 이 공간이 우주 공간 전체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고 본다. 그렇다면 전 우주에 ‘물’이 편만했어야 하는데 현재 인공위성들이 물속을 헤매는 것이고, 화성탐사선도 수중 운행을 한다는 것인데 말이 안 되는 부분이다. 이성으로도 해석도 납득이 안 되는 영역이다. 우주 공간에 가득한 물이 지구라는 작은 별에 다 모여서 바다를 이루었다는 뜻인데.... 질량 보존의 법칙에 따르면, 하나님이 행하신 창조가 그렇게 무식하고 판타지 같은 것이 아님을 믿기에 여기서 조성하신 공간은 대기 상태 정도가 아닐까 한다. 즉, 여기에서의 하늘은 우주 공간 전체를 이야기함이 아니라고 본다. 물을 궁창위의 물과 궁창 아래의 물로 나누신 것을 보면 특정한 공간에 제한하신 것이다. 그렇게 하시고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둘째 날’이라 하신다.
그런 후, 하나님은 궁창 아래의 물을 한곳으로 다 모으신다. 자, 운동에너지가 발생했다는 뜻이다. 그리고 모였다는 것은, 흘렀다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중력이 작용했다는 의미이다. ‘빛’이 창조되기 이전부터 ‘중력’이 존재했었는지, ‘천하의 물이 한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셨을 때부터 중력이 있었는지 필자의 짧은 지식으로는 가늠할 수 없는 영역이겠으나, ‘드러난다’는 명을 내리신 것으로 보아, 첫째 날에 ‘빛’ 이전부터 중력의 작용이 있었겠지 않았나 추정해본다. 여기에서 궁창 아래 물은 ‘뭍’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이 또한 현재의 지구 상태를 전제해서 보기 때문이지 확실히 그러했다고 이야기할 수 없는 영역이다.). 그렇게 드러난 뭍에 하나님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라 하신다. 뭍이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의 속성을 머금고 있었다는 뜻이다. 그래서 흙이 있는 곳엔 어김없이 풀이 자라는 것을 볼 수 있다. 흙은 천연 상태로라면 언제든지 생명을 틔울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한다. 우리 인간과 원산지가 같다.
그런 후, 하나님은 넷째 날에 하신 것은 놀라움 그 자체이다. 첫째 날에 하신 ‘낮’과 ‘밤’의 개념을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영역으로 만들어버리신 것이다. 전 우주 공간에 퍼져 있는 별이라기보다는, 태양계를 만드셨다고 하는 것이 맞다. 지구가 공전과 자전을 이때부터 시작되었는지, ‘주기’를 갖게 되었는지 확실하지 않으나 분명한 것은, 현재 우리가 영향을 받고 있는 시간의 개념이 이때부터임은 확실하다. ‘욤’, ‘날’의 완벽한 이해이다.
그런 후, 다섯 째 날에 하나님이 하신 것은, 지구 대기권을 채우는 것과 바다를 채우는 일을 하셨다. 나는 모든 것, 물에서 번성하는 모든 것을 만드시고 보시기에 좋아하셨다. 하나님이 ‘~하라’고 하셨을 때, ‘~하라’ 하시기 전까지 염두에 두신 그대로 완벽하게 조성되었다는 뜻이다. 완벽하다!
그런 후, 여섯 째 날에 하나님이 하신 것은,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로 내어 놓으라 하신다. 셋 째 날에 하신 것과 같은 표현이다. 이 역시 흙이 내포하고 있는 생명력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사람’이 만들어진다. 남자와 여자가 같은 날 만들어진 것인데 창세기 1~2장의 전개 상, 상당한 시간이 흐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아니다. 살아 움직이는 생물의 이름을 지은 것과 잠들게 하여 여자를 만드신 것 모든 것이 같은 날 이루어졌다. 현재의 하루와 당시 여섯 째 날의 하루와 다르지 않은 시간인 것을 감안하면 마지막 날은 상당히 분주한 하루였음을 짐작 알 수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그렇게 하신 후, 우리에게 주신 명령은 놀랍도록 경이적이다. ‘이 세계를 경영하라!’고 하셨으니 어마어마한 특권을 우리에게 주신 것임을 새삼스럽게 깨닫는 바이다.
그런 후, 쉬신다. 쉬는 것까지, 여기까지가 천지만물을 이루는 완성이며 끝이다.
하나님의 창조는 현재에 영향을 주는 사건이며 우리가 살아가는 현장에서 마땅히 누리는 하나님의 흔적이다. 더듬어 알 수 있는 충분한 것이며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증거들이다. 그래서 짧지만, 간략하게 살펴본 천지창조에 대한 기사들을 보며, 오늘을 통괄하시는 하나님을 현재의 은혜로 고백하기를 기대해 본다.
활동
[활동] 그림카드에서 천지창조 날짜 별로 해당되는 것을 찾아보기
[준비물] PPT, 그림카드, 교재 p16~17
“다음 그림들을 보고 각 빈칸에 몇째 날에 창조되었는지 숫자로 적어보세요~!”
[그림카드를 나누어 준 후]
“하나님이 둘째 날에 하신 것을 찾아 들어주세요!”
“하나님이 넷 째 날에 만드신 것을 찾아 들어주세요!”
(각 날짜별로 하고, 1~6일까지 차례대로 들어보라 하고, 조별로 한 사람이 한 장씩 들어 보이게 하면서 다양한 인원이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다 같이 창세기 1장 1절을 큰 소리로 외워봅니다! 시작”
분반나눔시 주의사항
다그치듯 하지 않습니다. 설교를 잘 들었는지 그렇지 않은지는 점검하고 짚어주는 시간이며 활동한 내용을 통해 말씀에 대한 이해와 반응을 확인하는 시간입니다. 아이들은 배운 것을 작게라도 활동에 참여한 후에 나눔을 한 것이므로, 어떤 형태로든 자기의 감정과 느낌을 이야기하게 됩니다. 짧게 한 마디 하더라도 최대한 칭찬과 격려로 나눔을 이끌어 가시기 바랍니다. 나눔 진행 순서는 다음과 같습니다(현장의 상황에 따라 다르게 진행 가능하며 유동적으로 접목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점검 및 활동내용 소감 나눔] → [말씀을 바탕으로 한 일주일의 각오] → [암송구절 제창] → [축복 기도 후 해산]
1. 다 같이 오늘의 본문과 제목이 어떻게 되지?
2.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첫째 날부터 여섯 째 날까지 순서대로 이야기해볼까?
3. 다른 것은 다 하나님이 하라는 대로 만들어졌는데, 우리 사람만 달라! 어떻게 다를까?
4. 우리에게 주어진 특권이자 명령이 있는데 그게 뭐지?
5. 다 같이 창세기 1장 28절을 읽어볼까?
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오감성경(5senses Bible)'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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