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감성경사역연구원 미디어팀입니다.

 

제목: 창 F4: 야곱(벧엘에서 벧엘까지)
본문: 창 28:13~22

본문

13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16
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17
이에 두려워하여 이르되
두렵도다
이 곳이여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

20
야곱이
서원하여 이르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어

14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18    
야곱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베개로 삼았던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암송)
21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19
그 곳 이름을 1)벧엘이라
하였더라
이 성의 옛 이름은
루스더라
6) 하나님의 집

22
내가 기둥으로 세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해설 및 연구/묵상_오감성경사역연구원 김성찬 목사

늦둥이다. 게다가 쌍둥이이며 동생이다(의학적으로는 형이지만 동양문화권에서는 먼저 나온 아이가 형으로 인정된다.). 나이 마흔에 결혼을 하여 얻은 소생이 아들 쌍둥이라니...! 이삭의 삶은 신혼이 길었던 셈이다. 부유하고 넉넉하며 주변 민족들과의 관계도 상당한 가문의 쌍둥이 동생으로 태어난 야곱! 그의 삶은 어떤 삶이었을까? 대게 쌍둥이라면 외모적으로 비슷하여 쉬이 구분이 되지 않는 것이었을 텐데 에서와 야곱은 달랐나 보다. 성향도 반대요 외모도 전혀 다른 그 둘이 과연 쌍둥이 맞나 싶을 정도의 의구심이 드는 바이다. 그럼에도 성경은 언제나 반전의 연속이고 선택과 불 선택의 선상에서 선택 받은 이의 감사로 기록된다. 야곱이 그렇다. 더욱이 선택의 은혜가 큰 야곱이라면 우리가 해야 할 이야기가 많다. 이제 그 이야기를 ‘언약 확장성’과 ‘계승’ 측면에서 야곱이 어떻게 그 약속을 기억하며 자신의 삶에 이루어갔는지에 맞추어 살펴보고자 한다.

가출을 한다. 평생토록 집 밖에 나가보지 않은 자가(비약이 심할 수 있겠는데 정황상 충분히 유추 할 수 있는 부분이다.) 가출을 하는 것이다. 그것도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외삼촌의 집으로 향한다. 이 외삼촌은 야곱의 어머니 리브가가 이삭에게 출가 할 때, ‘천만인의 어미가 될 지어다.’ 라고 축복한 장본인이다. 나중에 설명하겠지만, 본인의 입으로 선포된 언약이 자신의 집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몰랐을 것이다. 여하튼, 야곱의 가출의 이유는 생존의 본능이었다. 레저와 각종 동호회 활동으로 주변 지역에 탄탄한 사회적 지지를 가지고 있는 에서와는 다른 삶을 살아온 야곱이다. 호전적이고 육체미가 넘치는 에서로부터의 도피이다. 에서는 분명 각종 무투를 연마한 사람이었을 것이고 이런 성향을 바탕으로 주변 호족들과의 다양한 관계를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이방여인과의 결혼을 자기 주도적으로 행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래서 이삭의 뒤를 이를 차기 세도가의 자제로 정평이 나 있는 인물이었을 것이다. 아버지의 사업권을 물려받아 얼마든지 사세 확장을 이룰 수 있는 그런 인물이고, 하고자 한다면 군수산업까지 확장 시킬 수 있는 역량도 다분한 사람이었다. 이삭과 맺은 조약에 따라 얼마든지 주변국들과의 관계를 이용하여 사업을 확장시킬 수 있는 정말이지 이 시대에도 보기 드문 활동가이며 정치가일 수도 있을 그런 인물, 에서이다. 그런 에서를 제치고, 당연한 것을 당연한 것이 아니게 만들어 버린 사람이 야곱이다. 에서는 그렇게 만들어 버린 야곱이 수용되지 않았을 것은 너무나도 분명하고 충분히 예측 가능한 정서이다. 그래서 야곱은 이 형으로부터 자신을 분리시킬 필요가 있었다. 같은 날 태어났지만, 쌍둥이면서도 도저히 감당이 안 되는 가족이며 피붙이! 그래서 집을 나온다. 살고자 하는 본능에서이다. 그렇게 야곱은 가출을 한다.

야곱은 이런 외삼촌의 집으로 향하면서 노숙을 한다. 놀랍게도 그곳에서 하나님을 만난다. 그리고 고백하기를,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창 28:16)’ 라고 한다. 놀랍다. 평생토록 이삭에게 자신의 할아버지 때부터 섬긴 여호와 하나님을 직접 만나게 되니 놀라울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가족이 섬기는 아버지의 하나님이 자기의 하나님이 되는 순간으로 최초의 경험을 하게 되니 그 놀라움이란 어느 정도였을지 짐작이 되는 바이다.

출처 :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altazor1&logNo=50081508684&proxyReferer=https:%2F%2Fwww.google.com%2F

 

하나님은 야곱을 처음으로 대면한 그 현장에서 주신 말씀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주신 그 내용 그대로이다. 달라진 내용이 없다. 창 26:13~15에 나타난 언약의 내용을 분석해보면 쉽게 알 수 있는 바이다. 게다가 ‘임마누엘’까지 약속하신다. 그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 되시는데 심지어 함께 하시겠다고 까지 하시니 이 얼마나 놀라운 약속이 되는가!

약속을 받은 야곱은 가슴에 꽉 찬 확신 하나를 가지고 간다. 외삼촌 집에 도착한 야곱! 전혀 다른 삶이다. 자기 손으로 자기 옷 한 번 빨아 보지 않았을 삶이었을 텐데 기꺼이 모든 것을 감당한다. 양식의 풍성함은 물론이거니와 따르는 식솔에 다루는 재산만 해도 엄청났을 집이다. 그런 그가 전혀 다른 삶으로 외삼촌의 집에서 견딘다. 그렇게 20년. 노동력 착취와 부당한 대우를 견디며 그는 목양의 달인이 되고 재산증식의 탁월한 귀재가 되어 귀향을 결심한다. ‘천만인이 어미’의 소생인 야곱에 대한 처우가 전혀 없었던 삶이었다. 라반이 보여준 비겁한 자세 속에서 하나님은 오히려 네 여인으로부터 11명의 아들과 1명의 딸을 낳게 하는 반전 있는 상황을 연출하셨다. 그런 그에게 보인 라반의 적대 행위는, 앞에서는 복을 이야기 하고 뒤에서는 악을 행하여 선인들을 해하고자 하는 사탄의 궤계와 그 궤적을 같이 한다. 오히려 그가 한 ‘대적의 성문을 차치하리라’는 축복이 그의 장막에서 야곱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는 셈인 것이다.

그로부터 혈육 이외 아무것도 허락하지 않은 라반에게서 벗어나고 한 야곱이 고백한 대목을 보면 최초, 그가 하나님을 만났었고 하나님이 하신 말씀 그대로를 인용한다. ‘내 아버지의 하나님은 나와 함께 계셨느니라!(창 31:5)’. 야곱으로서는 현재의 이 결정이 최고의 선택이라는 것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 때, 하나님은 그에게 나타나 확실한 힘을 실어주신다. 실제로 야곱이 고백한 대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최초의 언약과 같은 맥락에서 말씀하신다. 구체적으로 ‘최초의 장소’에로의 복귀를 명하시고 계신다. 결정과 판단에 대한 근거가 마련된 셈이다. 망설일 이유가 없다. 심지어 두 아내들도 지지하고 나선다. 그렇게 그는 귀향길에 나선다.

 

Francesco Hayez: Esau and Jacob reconcile (1844) http://en.wikipedia.org/wiki/Esau

 

놀라운 광경이다. 하나님의 군대를 목격한다(창 32:1~2). 전시상황도 아닌데 하나님의 군대를 목격한다. 야곱의 일생에 하나님의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최초, 하나님이 그에 대한 생명의 보호와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을 하나님 편에서 이행하고 계신다는 증거로 보여주신 것이다. 약속을 기억하고 20년 이상을 견딘 야곱, 그에게 ‘보고 있니 야곱?’ 하듯 그렇게 함께 하고 계신다는 증거를 보여주셨으니 이 얼마나 감격스러운 장면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서를 만나기 전에 그가 가진 두려움은 각인된 두려움인 듯하다. 하나님이 에서와의 대면을 앞둔 야곱에게 그를 호위하는 ‘하나님의 군대’를 보여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에서의 군대 앞에 두려움을 보여주고 있다. 이 얼마나 인간적인가! 두려움이 인간적이라는 말이 아니다. 이런 상황 앞에서 그가 하나님 앞에 올리는 기도가 아주 인간적이라는 뜻이다. 하나님이 주신 약속, 그 한 가지만 붙들고 있기 때문이다.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이라고 시작하는 그의 항변은 마치, ‘주님이 하신 말씀이시니까 알아서 해주세요! 나는 모르겠습니다.’ 라는 식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런데 이게 통한다. ‘내가 반드시 네게 은혜를 베풀어 네 씨로 바다의 셀 수 없는 모래와 같이 많게 하리라’ 하신 이 말씀을 이루시겠다면 지금 내가 죽게 생긴 이 상황을 주님이 알아서 해결 해 주셔야 하는 것 아닌가요? 하는 식이다. 놀랍지 않은가? 결국, 야곱은 끝까지 하나님이 주신 약속을 기억하고 있으니...!

우여곡절 끝에 벧엘로 돌아온 야곱...! 그 와중에 일족이 몰살당할 어려움도 있었으나 결국 와야 할 곳으로 오게 된다. 다시 돌아온 하나님과의 감격적인 첫 만남의 자리! 그곳에서 야곱은 복귀 기념 예배를 드리고 성대한 잔치를 배설 했을 것이다. 그가 돌아온 것을 기다리기라도 했듯이 하나님은 약속을 주신다. 새 이름도 주신다. 약속은 언제나 동일한 내용이다(창 35:11~12). 이제는 ‘왕’이라는 구체적인 직위까지 언급하신다. 굳건하고 굳센 믿음을 가질 수 밖에 없는 힘 있는 약속이다.

이 때, 아버지와도 재회했을 것이다. 이제 안정을 찾은 듯하다. 그러나 사랑하는 여인을 먼저 떠나보내야 하는 아픔을 겪은 야곱. 이제 쓰라린 인생 후반부를 겪게 되는데...

여기까지가 야곱의 삶 벧엘에서 벧엘까지이다. 다음 주, 벧엘에서 애굽까지를 살펴보는 것으로 야곱을 가늠한다.

진행 시나리오

[활동] 29초 안에 야곱일생 설명하기
[준비물] 야곱의 일생을 29초 안에 설명 할 수 있는 시나리오, 촬영도구(휴대폰 등), 종(호루라기 등)
[진행내용]
야곱의 일생을 벧엘에서 벧엘까지로 해도 되고 벧엘(창 28)에서 애굽까지 전체 일생을 다루어도 되겠으나 이것을 청중 앞에서 빠르고 정확하게 온 몸으로 29초 안에 설명(나레이션, 동화, 논설 등 상관없음)하는 활동.
모둠이나 개인 상관없으며 대표 대항전으로 해도 상관없고, 동시에 설명을 해도 상관없음.
모든 설명은 촬영하여 29초 영화제로 제작함. http://29sfilm.com/

[활동] 아브라함/이삭/야곱 언약 비교표 만들기
[준비물] 오감성경 교재, 성경책, 종이, 펜
[진행내용]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말씀하신 내용만 취합하여 각각에게 주신 언약의 내용들을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도표나 도식을 제작하는 활동.교재에 나와 있는 각각의 성경구절을 찾아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말씀하신 내용을 정리하여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함.
제작 후 게시 또는 한 손 카드로 적용하여 성경책에 휴대 할 수 있게 하면 좋음.

[활동] 야곱의 축복 노래로 서로 축복해주기
[준비물] 야곱의 축복 악보 / MR(여건에 따라)
[진행내용] 야곱의 축복 노래를 부르며 서로 안아주고 축복해주기(단체 활동으로 응용 가능)

분반나눔

분반나눔시 주의사항

다그치듯 하지 않습니다. 설교를 잘 들었는지 그렇지 않은지는 점검하고 짚어주는 시간이며 활동한 내용을 통해 말씀에 대한 이해와 반응을 확인하는 시간입니다. 아이들은 배운 것을 작게라도 활동에 참여한 후에 나눔을 한 것이므로, 어떤 형태로든 자기의 감정과 느낌을 이야기 하게 됩니다. 짧게 한 마디 하더라도 최대한 칭찬과 격려로 나눔을 이끌어 가시기 바랍니다. 나눔 진행 순서는 다음과 같습니다(현장의 상황에 따라 다르게 진행가능하며 유동적으로 접목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점검 및 활동내용 소감 나눔] → [말씀을 바탕으로 한 일주일의 각오] → [암송구절 제창] → [축복 기도 후 해산]

1. 자, 다같이 오늘의 본문과 제목이 어떻게 되지?
2. 창세기를 이루는 두 기둥은? ‘B4', 'F4'
3. 창세기를 이루는 두 기중에서 B4와 F4 네 가지는 뭐지?
‘창조’, ‘타락’, ‘심판’, ‘분산’ /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4. 야곱에게 최초 하나님이 나타나신 때는 언제입니까?
5. 야곱은 20년 동안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이 어려움과 힘든 시기를 이겨 낼 수 있는 힘이 되었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기억하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은?
6. 야곱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을 여러분의 이름을 넣어서 고백해 봅니다.(창 28:14~15)
땅이 모든 족속이 OO와 OO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내가 OO와 함께 있어 OO가(이) 어디로 가든지 OO를 지키며 OO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OO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OO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7. 이번 주, 머릿속 말씀을 다같이 읽어보고 마무리 하자!

창 28:21(암송) 암송 순서

21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1. 골격보기
종속절: 내가 돌아가게 하시오면
주절: 여호와께서 되실 것이요

2. 살붙이기
① 여호와께서 어떤 분이 될 것이라 말합 니까?
→ 나의 하나님이
② 내가 어디로 돌아오게 하시면 나의 하 나님이 될 것이라고 말합니까?
→ 아버지 집으로
③ 어떻게 돌아오길 바랍니까?
→ 평안히

3. 전체암송

묵상 포인트(관계묵상)
1.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입니다.
비록 야곱은 아버지의 집을 떠나지만 하나님의 함께하심과 인도하심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아직 하나님에 대해서 충분히 경험하지 않았기 때문에 조건부 신앙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차후에 그의 신앙고백은 확실해 질 것입니다.

 

오감성경사역연구원 미디어팀장입니다.

 

본문: 창 26:23~25

제목: 창 F4: 이삭 I

 

본문     암송

23
이삭이
거기서부터 브엘세바로
올라갔더니

24
그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나는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이
번성하게 하리라
하신지라

25
이삭이
그 곳에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거기 장막을
쳤더니
이삭의 종들이
거기서도
우물을
팠더라

 

24    
그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나는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이
번성하게 하리라
하신지라

 

 

해설  연구/묵상

이삭이다. 약속의 아들이며 기적의 아들이다. 하나님의 권능의 상징이며 말씀대로 행하신다는 표징이다. 창세기의 F4  번째 인물, 이삭을 통해 하나님의 의지는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간단하게 살펴보자.

Caravaggio( 1571~1610), Sacrifice of Isaac(1603) 출처 : 드림투게더(http://www.thedreamtogether.com)

아브라함과 이삭으로 이어지는 언약의 확장과 통일성은 아브라함을 통해서도 익힌바 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삭에게 약속을 이루어 가시는 현장을 보게 되면 더디더라도 말씀 하신 것은 끝까지 이루신다는 것을   있다. 그리고  약속이 이루어질  까지 “인내 “너그러움으로  약속을 이루어내는 이삭의 삶을 보며 하나님의 은혜를 사뭇 생각하게 된다.

이삭이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게   자체가 드라마이다. 약속의 아들이 나타나기까지 하나님의 세밀하고 인간을 향한 세심한 배려는 경탄 하고도 남을 만큼의 당연한 반응이다. 우리가 흔히  , 이삭의 출생 자체가 불가능한 것이었으나 ‘믿음으로 이루어진 은혜이다. 그런 그에게 닥치는 어려움은 자신의 목숨을 내어 놓으면서까지 지켜 내었던 아버지를 향한 무한 신뢰이다. 나를 살리기도 하는 분이 하나님이신 줄은 모르겠는데(물론 아직 어려서), 자신을 죽이려는 현실 아버지 앞에 그가 보인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 같은 이미지는 ‘믿음으로 반응하는 은혜이다. 일생토록 하나님을 섬기며 그를 예배하던 아버지 아브라함을 보아오면서 어린 나이지만, 이삭이 보인 태도는 그가 약속의 아들다운 면모라 한다면,  치의 반박도 없이 인정   밖에 없는 부분이다. 아브라함의 하나님을 향한 무한신뢰와 반응은 , ‘ 씨가 대적의 성문을 차리 하리라( 22:17~18)’ 약속을 얻어낸다.  약속은 놀랍게도 이삭의 아내가 되는 리브가가 들었던 축복의 내용과 일치한다(24:60). 그러고 보면 부부의 연은 동일한 말씀을 받았을 , 같은 비전과 사명을 부여 받은 우주적인 만남인듯하다. 해석하기에 다르겠지만, 이제 이삭의 가문은,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는 가문 되기 때문이다.

결혼 , 부모가 죽고 독립하여 가업을 잇게  이삭은 그의 아버지가 그러했던 것처럼 약속의 땅에서 이방인 같은 삶을 살아간다. 딛고, 걷고, 거하는  땅이  약속의 땅이며 언약이 성취되는 자리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나그네요, 이방인의 삶을 살아간다. 농사를 짓고 정착하여 삶을 꾸려 보려 해도 수원지 쟁탈로 그마저도 쉽지 않다. 유목에서 정착민으로 성질을 바꾸고 가업으로 이어오던 것에 농사로 업종을 변경한 이삭이 누린 소출의 은혜는 인간이 자연법칙 안에서 누릴  있는 최대치를 경험하게 된다. 이것이 원주민들과의 마찰을 일으킨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보겠으나 이삭은 끝가지 주신 말씀, ‘’, ‘자손 대한 부분을 갱신하게 된다.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이 자신에게 계승되고 갱신된다는 것을 하나님이 직접 보여주셨으므로 이삭은 조직적인 방해공작에도 약속을 잊지 않을  있었던  같다. , 말씀이 우리를 관통하며 결국 우리를 만들어가는 것은 말씀이 된다는 것을 이삭은  몸으로 우리에게 메시지가 되고 있다. 자리를 옮길 , 하나님을 만나고   등등의 반응을 보면 이삭이 취한 행동은 아브라함의 그것과 같다. 예배자가 가진 자부심을 이삭이 그대로 이어 받아 어느 곳에서나 예배를 했다. 그리고 그것을 내재하여 ‘인내, ‘너그러움으로 이루어간다. 말씀의 성취는 성화된 인격의 그릇으로 표현되는 듯하다.

언약을 이루어가는 명문가도로서의 궤도에 오른 이삭의 가문은, 업종변경을 통해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와 영광을 경험하게 되었고, 이삭은 이를 겸손하게 수용한다. , 유목을 업으로 하던 가문이 농사를 지었다는 것은,  지리에 대한 기후와 토양에 적합한 파종으로 자연법칙 안에서의 최대치를 경험   있었다는 것이 된다. 이를 통해   있는 것은 이삭은 충분히 연구하는 사람이었음을   있다. , 하나님의 은혜를 현실적으로 이루어가는 기가막힌 기술과 적용력을 가진 자였던 것이다. 그래서 조직적인 방해공작에서도 너그러움을 보일  있었던 것은, 확신이었다고 본다.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어가는 확신! 이미 청소년기에 죽음까지 경험한 그가  정도 문제에 일희일비  정도의 인사는 아니었을 것이다. 아브라함으로부터 승계된 막대한 재산과 사회적 지위는, 이삭이 가졌을 유약한 이미지로는 감당할 만한 그것이 아니다. , 그런 생각이었다면 우리가 심각하게 오해  것이다.

출처 : http://www.kcjlogos.org/news/articleView.html?idxno=15022

이삭이 야곱을 붙들고(물론 에서인줄 알았지만)  축복은 그런 이삭의 성정을 드러내는 절정이다. 들로 다니며 산으로 오가는 야인과도 같은 에서에게 이삭은 ‘정착민 누릴 은혜를 내용으로 축복한다. 이미 그가 겪은 ‘농사 통해 터득한 하나님의 은혜에 기반 하는 것이다. 농사꾼만이   있는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를 경험적으로 고백하는 내용이라   있다. ‘하늘의 이슬’, ‘땅의 기름짐’, ‘밭의 향취등의 표현이 그러하다. 그리고 여기서 눈여겨  것은, (에서인줄 알고 내린)야곱을 향한 축복의 내용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자신에게 하셨던 언약의 내용과 일치하며 부자로 겪은 그의 수모와 복의 발현과 일치한다. , 이삭은 말은 하지 않았지만, 자주 등장하지는 않았지만, 충분히 하나님이 주신 약속을 되새기고 기억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있다.  마음에 담고 이루어지기를 소원한 열망들은 결정적일 , 튀어나온다. 이삭의 축복이 그러하다. 하나님이 내리신 약속은 이렇게 (아브라함으로 시작된) 이삭의 축복을 통해 더욱  견고해지며 이루어지게 된다.

이삭!   없는 신비의 인물도 아니고 범접할  없는 신기의 인물도 아니다. 노동현장 안에서 정직하고 바르게 하나님이 주신 말씀에 반응하면, 자연법칙 안에서 최대의 은혜를 경험하게  것이고 우리에게 주신 언약의 성취를 확신 가운데  삶으로 열망하면, 그것이 (代를) 이어 적용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것이다. 결국, 약속의 아들 이삭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듯, ‘약속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  안에 이루어지는 ‘유업 , 우리가 고백하는 신앙의  일선이 현장이 되기 때문이다.

진행시나리오

[활동] 1 이삭 비디오 시청

[진행 내용]

이삭을 번제로 드린 부분에 대한 영상을 시청합니다.

youtu.be/DakNvz8G70Q?t=9998

 

[활동] 2 “이삭의 축복” 노래

[준비물] 창 27:27~29 구절, 이삭의 축복 악보

[진행 내용]

창 27:27~29 구절로 축복한 후, 이삭의 축복 노래를 불러 봅니다.

분반나눔

 

분반나눔시 주의사항

다그치듯 하지 않습니다. 설교를 잘 들었는지 그렇지 않은지는 점검하고 짚어주는 시간이며 활동한 내용을 통해 말씀에 대한 이해와 반응을 확인하는 시간입니다. 아이들은 배운 것을 작게라도 활동에 참여한 후에 나눔을 한 것이므로, 어떤 형태로든 자기의 감정과 느낌을 이야기 하게 됩니다. 짧게 한 마디 하더라도 최대한 칭찬과 격려로 나눔을 이끌어 가시기 바랍니다. 나눔 진행 순서는 다음과 같습니다(현장의 상황에 따라 다르게 진행 가능하며 유동적으로 접목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점검 및 활동내용 소감 나눔] → [말씀을 바탕으로 한 일주일의 각오] → [암송구절 제창] → [축복 기도 후 해산]

1. 자, 다 같이 오늘의 본문과 제목이 어떻게 되지?

2. 창세기를 이루는 두 기둥은? ‘B4', 'A4'

3. 창세기를 이루는 두 기중에서 B4와 F4 네 가지는 뭐지?

‘창조’, ‘타락’, ‘심판’, ‘분산’ /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4. 아브라함의 약속의 아들은 누구입니까?

5. 창세기 22장에서 ‘대적의 성문을 차리 하리라’는 말씀을 받은 두 사람은?

6.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주신 약속은 이삭이 야곱에게 한 축복으로 야곱에게 이어집니다. 서로를 보며 진심으로 축복해 주도록 합니다. “창 27:27~29”의 인칭대명사에 친구들의 이름을 넣어서 읽어 봅니다(모든 반이 한 명씩 이름을 넣어 다 같이 돌아가면 읽어도 좋습니다.).

OO의 향취는 여호와께서 주신 밭의 향취로다 하나님은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이며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를 OO에게 주시기를 원하노라 만민이 OO를 섬기고 열국이 OO에게 굴복하리니 OO가 형제들의 주가 되고 OO의 어머니의 아들들이 OO에게 굴복하며 OO를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OO를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기를 원하노라!

7. 이번 주, 머릿속 말씀을 다 같이 읽어보고 마무리 하자!

창세기 26:24 암송순서
24    
그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나는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이
번성하게 하리라
하신지라

1. 골격보기
첫째주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둘째주절: 두려워하지 말라
셋째주절: 내가 번성하게 하리라 하신지라

2. 살붙이기
① 여호와께서 어떻게 이르셨습니까? → 나타나
② 여호와께서 누구에게 나타나 이르셨습니까? → 그에게
③ 언제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이르셨습니까? → 그 밤에
④ 왜 여호와께서 두려워하지 말라고 명령 하셨습니까?
→ 나는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⑤ 내가(하나님) 무엇이 번성하게 하신다 하셨습니까?
→ 네 자손이
⑥ 나는(하나님) 어떻게 자손이 번성하게 하신다 하셨습니까?
→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⑦ 하나님은 누구를 위하여 자손이 번성하 게 하신다 하셨습니까?
→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3. 전체암송

묵상 포인트(관계묵상)

1. 여호와께서 ‘두려워하지 말라’ 명령하십니다.

하나님은 이삭에게 나타나셔서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이유를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부모 세대에 역사해주신 하나님은 자녀 세대에도 은혜를 베푸시고 역사해 주십니다. 따라서 두려움의 환경에서도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면 두려움을 이길 수 있습니다.

2. 하나님께서 자손을 번성케 하신다고 약속하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자손에 대한 복을 이삭에게 다시 말씀하십니다.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어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입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은 오늘도 약속의 말씀을 사모하며 순종하는 자들에게 이루어주십니다.

 

안녕하세요
오감성경사역연구원 미디어팀장입니다.

 

복나무39공과 파트 1-8
제목 : 왜 망가졌어?
본문 : 창세기 3:8

본문 암송

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Point
사단의 유혹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죄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망가진 존재가 되었습니다.

 

말씀속으로 GoGo

8과에서는 인간의 죄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살펴봅니다. 천사장이었던 사단은 자신의 아름다움에 교만하게 되어 하나님의 자리를 노렸습니다. 이것으로부터 죄가 시작되었습니다. 아담을 유혹했고 죄로 인간이 망가졌습니다. 결과는 두려움으로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막으실 수 있었지만 허용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반드시 승리하시기 때문입니다.

 

도입

1. 왜 망가졌어? / 창 3:8

2. 두 가지 사진을 보여줄게요. 부서지고 망가진 사진입니다.  원래의 모습을 잃어버렸어요.
그래서 사용할 수가 없어요. 망가지면 제 기능을 할 수 없어요. 원래 모습을 찾아야 해요.

본문

3. 이번 시간에는 죄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살펴봅니다. 천사장이었던 사단은 자신의 아름다움에 교만하게 되었어요. 겔28:12-17절을 읽어요! 자신의 능력과 아름다움에 취해서 하나님의 피조물임을 잊었습니다.

4. 하나님의 자리를 노렸습니다. 사14:12-14절을 읽어요! 하나님처럼 높아지려는 마음으로부터 죄가 시작되었어요. 유1:6절을 읽어요! 자기 자기를 떠났어요. 그래서 영원한 멸망이 정해졌습니다.

5. 사단이 아담에게 하나님처럼 되라고 유혹했습니다. 유혹에 넘어가 죄로 인간이 망가졌습니다. 요일3:8절을 읽어요! 죄를 지으면 마귀에게 속하게 됩니다. 하나님과 교제할 수 없어요.

6. 결과는 두려움으로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게 됩니다. 창3:8절을 읽어요! 하나님을 피하여 숨게 되었다. 모든 만물을 다스리는 최고의 권위자였던 아담이 완전히 망가졌다.

7. 망가진 원인은? 하나님처럼 되려고 하는 마음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지 않아서이다. 다스리고 통치하는 것을 잃어버린 것도 힘들다. 그렇지만 교제가 단절된 것이 얼마나 끔찍한 것인가? 부부 사이에서도 이것이 가장 괴롭다. 친구들이 부모님과 이야기가 단절될 때 얼마나 힘든가? 하나님이 충분히 막으실 수 있었지만 허용하셨습니다. 자유의지를 통해서 진짜 사랑을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반드시 승리하시기 때문입니다.

기도

8. 말씀을 떠나 자신을 의지하고 자신의 아름다움에 빠진 것이 죄의 시작임을 알았습니다. 망가진 나를 인정하고 복음으로 나를 온전히 바꾸실 주님을 기대하며 함께 기도합니다.

 

온몸으로 GoGo

 

1. 환영_출석부 체크 / 과제 및 미션을 점검해 주세요.

타락 게임(그림으로 설명), 부모님께 거짓말했거나 순종하지 않았던 경험과 그 결과에 대해서 이야기하세요.

타락 게임은 아래 링크의 영상을 참고해 주세요

youtu.be/MC6VO6c8fgg

2. 묵상_묵상하면서 기록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

본문 암송순서

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Gn 3:8) Then the man and his wife heard the sound of the LORD God as he was walking in the garden in the cool of the day, and they hid from the LORD God among the trees of the garden.

1. 골격보기 SV
1)주절:
그들이...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피하여... 숨은지라

2)종속절:
그들이(무엇을)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무엇을) 피하여(어디에)숨은지라

2. 살붙이기(관계) : 혼자 질문하고 답하기
① 그들이 무엇을 들었나요 ?
→ 그들이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들었습니다.
② 그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무엇을 하였나요?
→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었습니다.
(다시 전체) 3번을 반복한다. 그러면서 관계가 망가진 그들에게 나타난 현상이 무엇인지를 묵상해 보자.

3. 전체암송(구조)
“주절 → 종속절 → 살붙이기” 순서로 천천히 안 보고 살을 붙이면서 말해보자 
그러면 그림이 보입니다. (묵상그림)

묵상 포인트 (관계묵상)
정확한 관찰이 바른 해석을 낳고 바른 해석은 이 시대에 적확한 적용을 만들 수 있습니다. 적용은 교사님들이나 학생들이 하셔야 합니다.

1. 죄의 결과는 두려움으로 인해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은 죄를 지었을 때 인간의 모습을 여실히 드러나게 합니다. 죄는 하나님에 대한 교만에서 시작됩니다. 이 부분은 앞 부분(창3:1~7)을 읽고 그렇게 유혹한 사단의 과거를 설명합니다. (겔 28:12~15) 12) 인자야 두로 왕을 위하여 슬픈 노래를 지어 그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너는 완전한 도장이었고 지혜가 충족하며 온전히 아름다웠도다. 13) 네가 옛적에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 있어서 각종 보석 곧 홍보석과 황보석과 금강석과 황옥과 홍마노와 창옥과 청보석과 남보석과 홍옥과 황금으로 단장하였음이여 네가 지음을 받던 날에 너를 위하여 소고와 비파가 준비되었도다. 14) 너는 기름 부음을 받고 지키는 그룹임이여 내가 너를 세우매 네가 하나님의 성산에 있어서 불타는 돌들 사이에 왕래하였도다. 15) 네가 지음을 받던 날로부터 네 모든 길에 완전하더니 마침내 네게서 불의가 드러났도다
모든 죄는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잊고 자신의 자리를 차지하려는 교만에서 시작됩니다. 그 결과 아담과 하와는 주님의 소리를 듣고 피합니다. 은혜를 사모하는 이들의 가장 큰 소망은 주님의 임재함이며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죄를 지은 그들은 피하고 숨습니다. 우리가 죄를 지을 때를 생각해 봅시다. 죄의 모습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같다면 그 원인도 같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2. 죄로 인한 가장 큰 벌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동산에 주님이 찾아오십니다. 우연하게 지난 것이 아님을 우리는 “거니시는”라는 동사의 활용을 보고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의 의지대로 걸어오심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히려 아담과 그의 아내가 "숨는다"라는 단어의 쓰임도 같은 강도로 쓰입니다. 절대 들키지 않으려는 아담과 하와의 의지가 보입니다. 이 세상의 많은 죄의 문화들은 절대로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이것 또한 죄의 문화인지 은혜의 문화인지를 가늠할 수 있는 기준입니다. “자유의지”를 남겨두신 이유는 “관계”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담과 그의 아내는 “자유의지”를 가지고 도망치고 있습니다. 그 “자유의지”는 영과 진리로 주님을 찬양케 하는데 사용하라고 주신 것인데 말입니다. 한 아담이 인류를 대표하여 망가졌으니 이제 다른 한 아담(예수)이 와서 인류를 구원하는 절차가 진행됩니다.
(요일 3:8)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오셔서 복음을 완성해 주시는데, 그 복음의 가장 큰 유익은 하나님과의 관계의 회복입니다.
복음은 하나님을 똑바로 보게 하며 이 세상의 동산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명확하게 알려 줍니다.

3. 다짐_묵상했던 말씀에 순종하도록 함께 기도합니다.

4. 미션_주 중에 순종하도록 꼭 연락해 주세요.

부모님이나 가족에게 잘못했던 것 용서 구하기, 친구들과 깨어진 관계 회복하기.

창3:8절 암송, 창6:5-6절 3번 쓰기

오감성경사역연구원 미디어팀장입니다.

본문: 창세기 23:6, 18

제목: 창세기 F4: 아브라함 Ⅱ

본문 1 본문 2 암송

6
내 주여
들으소서
당신은
우리 가운데 있는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이시니
우리 묘실 중에서
좋은 것을
택하여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소서
우리 중에서
자기 묘실에
당신의 죽은 자 장사함을
금할 자가
없으리이다

18
 자손들은
하윌라에서부터
앗수르로 통하는
애굽 앞 술까지
이르러
그 모든 형제의 맞은편에
거주하였더라

12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해설 및 연구/ 묵상_오감성경사역연구원 김성찬 목사

F4의 파노라마 속에 펼쳐지는 하나님의 장엄하면서도 세밀한 역사는 단순히 아브라함 한 사람의 일생이라고 국한하기엔 너무 드라마틱하다. 이것이 우리의 삶이며, 우리의 고백이자 오고 오는 세대가 직시해야 할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경외이다. 한 사람의 지목에서 시작하여 지목하신 이유를 그 사람의 일생에 이루어지도록 치열하게 이루어가시는 하나님의 인내와 열정을 보면, 가히 자녀를 향한 부모의 마음과 흡사하다. 전적으로 지지하고 격려하며 ‘성장’ 할 수 있도록 세밀하게 돌보시는 것을 보면 참되거나 바르거나 가르쳐주시는 스승과도 같은 모습이기도 하다. B4에서 보여주신 위엄 있으신 것과 심판을 행하시며 흩으신 모습과는 너무도 다른 모습이다. 너무도 다른 하나님의 모습 속에 독자들은 다소 하나님의 불연속성에 혼돈을 가질 수도 있는 면이다. 단순히 신이시기에 어떤 모습이든 비판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 아닐 것이다. 하나님이라는 신도 그리스와 이집트의 신들처럼 변주거릴 수 있는 신중의 하나와 같다는 것도 아닐 것인데 말이다.

먼저 전제가 있다. 하나님은 하나님 그 자신이 먼저 우리에게 보여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하나님을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보여주시는 만큼만 그를 알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가 우리에게 그를 보여주시는 방법은 그의 하시는 일을 통해서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B4에 그가 하신 것을 통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 수 있었다. 그 범위가 개인과 집단을 오가는 가히 한계를 측정 할 수 없는 범위로 그 안에 내가 들어가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하나님과 자신을 직접 연관 짓지 않을 수 있는 부분이다. ‘나한테 하신 것이 아닌데?’ 라며 말이다. 그러나 F4부터는 다르다. 우리와 같으며, 우리와 다르지 않은 ‘한 사람’을 등장시키며 그의 이야기가 곧 우리의 이야기가 되고, 그에게 말씀하시는 것이 곧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그의 이야기가 되도록 하셨다. 특정인과 불특정 다수로부터 특정인의 삶이되 보편타당한 삶으로 내려앉으신 것이다. 언제가 그 곁에 계시며 그의 성장을 돕고 그의 전진을 도모하신다. 친구와 같으며 동역자 같기도 한 모습으로 친근한 이미지로 전환하신다. 심판자에서 친구로, 벌을 내리시는 분에서 벗이 되시는 모습으로 함께 하시는 것을 통해 하나님에 대한 오해와 권위적인 이미지를 직접 벗고 계신다. 이것이 F4를 통해 우리가 찾아 볼 수 있는 하나님이다. 아브라함이라는 한 사람의 믿음의 성장과 그에게 말씀하시는 언약의 내용이 구체화며 소상해지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연속성과 일치함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아브라함이 아내 사라를 장사지내고자 할 때, 그와 함께 머물던 헷 족속의 고백을 통해 하나님이 아브라함이라는 한 사람을 선택하셔서 어떻게 그의 일생을 값지고 멋들어지게 만들어 놓으셨는지 알 수 있다. 즉, 미완이나 다분히 ‘작품성’을 인정받은 부분이라 하겠다. 타인의 입술에 의해 하나님의 계시의 전환국면을 멋지게 정착시킨 부분이기도 하다.

헷 족속의 고백은,

6
내 주여
들으소서
당신은
우리 가운데 있는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이시니
우리 묘실 중에서
좋은 것을
택하여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소서
우리 중에서
자기 묘실에
당신의 죽은 자 장사함을
금할 자가
없으리이다

비록 한 족의 장이며 심히 부유한 이에게 칭한 존경의 의미일 수도 있겠으나 헷 족속이 보여준 아브라함에 대한 표현은, ‘하나님’에 대한 고백이요, 그의 보여주신 모습에 대한 인정이다. 하나님이 처음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거주하는 땅의 우두머리’의 내용을 담은 표현들은 당대에 이미 성취된 결과임을 알 수 있다.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아내를 두 번이나 팔아넘겨야 했던 치졸하고 이기적인 인간의 모습을 ‘우리 가운데 있는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라는 사회적 인정과 평판으로 하나님의 계시에 걸 맞는 제대로 된 ‘평가’가 해도 무리가 아니다. 어쨌든, 하나님은 제대로 성공하셨다. 아브라함의 이름을 위대하게 하고, 그의 자손이 나라를 이루며 민족을 이루게 하는, 심지어 그 자녀들 중에 왕이 나고 대적을 무찌르는 것을 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들이 진짜로 이루어져 가는 것을 확인 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하나님은 한 번 이야기 하신 것은 끝까지 행하신다. 적어도 그의 일생 안에 이루어지도록 하시는데 완벽하게 이루어 주시지는 않을지라도 하나님이 행하시고 이루어 가신다는 것에 있어서는 결코 의심 할 수 없는 확실함이라는 것이 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선택하시고 끝까지 그의 일생을 이루어 가시는 것이 하나님이 친히 그 자신을 보여주시는 방법이라면, 그 아브라함이 내가 되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겠는가! 한 번 말씀하신 하나님의 그 말씀이 오늘의 삶 속에서도 이루어져 간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하나님을 고백한다면, 적어도 아브라함적인 삶을 살아내는 하루가 아닐까?

진행시나리오

[활동] 아브라함의 고향 ‘우르’ Video 시청

youtu.be/Ey4VJV57g8w?t=1647

[진행내용]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신 갈대아 우르에 대한 영상을 시청합니다.

 

분반나눔

분반나눔시 주의사항

다그치듯 하지 않습니다. 설교를 잘 들었는지 그렇지 않은지는 점검하고 짚어주는 시간이며 활동한 내용을 통해 말씀에 대한 이해와 반응을 확인하는 시간입니다. 아이들은 배운 것을 작게라도 활동에 참여한 후에 나눔을 한 것이므로, 어떤 형태로든 자기의 감정과 느낌을 이야기 하게 됩니다. 짧게 한 마디 하더라도 최대한 칭찬과 격려로 나눔을 이끌어 가시기 바랍니다. 나눔 진행 순서는 다음과 같습니다(현장의 상황에 따라 다르게 진행가능하며 유동적으로 접목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점검 및 활동내용 소감 나눔] → [말씀을 바탕으로 한 일주일의 각오] → [암송구절 제창] → [축복 기도 후 해산]

1. 자, 다같이 오늘의 본문과 제목이 어떻게 되지?

2. 창세기를 이루는 두 기둥은? ‘B4', 'A4'

3. 창세기를 이루는 두 기중에서 B4와 F4 네 가지는 뭐지?

‘창조’, ‘타락’, ‘심판’, ‘분산’ /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4. 헷 족속이 아브라함을 두고 한 고백이 뭐지?(본문 참고)

5. 아브라함에 주신 약속의 내용과 헷 족속의 고백을 비교해보자!(창 12~창 22에 나온 아브라함에 대한 구절들 속에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 주신 약속을 훑어보고 헷 족속의 고백과 비교해보며 하나님의 언약의 성취를 발견하도록 합니다.)

6. 하나님이 너에게 무엇인가를 이루어주시겠다고 약속을 주신다면 그 약속이 무엇이면 좋겠니?(아이들의 이야기를 다 듣고 교사는, ‘예수 그리스도’ 라고 고백 할 수 있도록 합니다. 실제로...)

7. 이번 주, 머릿속 말씀을 다같이 읽어보고 마무리 하자!

창 22:12b 암송 순서

12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1. 골격보기
종속절: 네가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주절: 내가 아노라

2. 살붙이기
① 내가(하나님) 무엇을 안다고 하십니까?
→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② 내가 언제 경외하는 줄을 안다고 하십니까?
→ 이제야
③ 네가 누구에게 아끼지 않았습니까?
→ 내게
④ 네가 누구까지도 아끼지 않았습니까?
→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3. 전체암송

묵상 포인트(관계묵상)

1. 아브라함이 독자까지도 아끼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위해서 가장 사랑하는 아들 독자까지도 아끼지 않았습니다. 가장 사랑하는 첫 번째를 드린 것입니다. 아까워하거나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즉시로 순종했습니다. 하나님을 진정 사랑하고 믿는다면 가장 첫 번째 가장 사랑하는 것도 드릴 수 있어야합니다.

2. 하나님은 이제야 경외하는 줄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진심으로 경외하길 원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랑하는 것들을 통해서 시험하십니다. 하나님의 시험에 통과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경배와 섬김을 인정해주시고 칭찬해주십니다.

#오감성경사역연구원 미디어팀장입니다.

본문: 창세기 10장 21~32절

제목: 창 B4: 분산 II


21

셈은

에벨 온 자손의 조상이요

야벳의 형이라

그에게도

자녀가

출생하였으니

25

에벨은

두 아들을

낳고

하나의 이름을

1)벨렉이라하였으니

그 때에

세상이

나뉘었음이요

1)벨렉의 아우의 이름은

욕단이며

1) 나눔

29

오빌과 하윌라와 요밥을

낳았으니

이들은 다

욕단의 아들이며

 

30

그들이 거주하는 곳은

메사에서부터

스발로 가는 길의

동쪽 산이었더라

22

셈의 아들은

엘람과 앗수르와

아르박삿과 룻과 아람이요

26

욕단은

알모닷과 셀렙과

하살마웻과 예라와

31

이들은

셈의 자손이니

그 족속과 언어와

지방과 나라대로였더라

23

아람의 아들은

우스와 훌과 게델과 마스며

27

하도람과 우살과 디글라와

32

이들은

그 백성들의 족보에

따르면

노아 자손의 족속들이요

홍수 후에

이들에게서

그 땅의 백성들이

나뉘었더라더라

 

24

아르박삿은

셀라를

낳고

셀라는

에벨을

낳았으며

 

28

오발과 아비마엘과 스바와

 

해설 및 연구/ 묵상

바벨사건의 후유증은 의외로 상당했다. 현대에도 외국어를 습득하려는 많은 이들이 겪는 고통을 보면 쉽게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렇게  세계로 흩어진 노아의 후손들이  현재  세계에 분포된 민족들의 선조라   있겠다. , , 야벳이 후손들이 어떤 후손들이며 각각의 민족들이 어디에 정착하여 현재에 이르게 되었는지 인류학적으로 증빙한 연구자료들이 있다고 하겠으나 여기에  언급  수는 일이다. 그래서 셈의 다섯 아들을 중심으로 간단하게 살펴  것이며 이것이 아브라함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밝힐 것이다. 

출처 : 나무위키

고대사회에서 흩어진 후손들은  지역의 이름을 정할 , 선조들이 이름을 따르든지 사건의 발생  자체를 명명했다. 이를테면, 민수기 11장에서 고기를 먹고 싶다고 아우성  이스라엘 백성들이 탐욕으로 인해 집단 죽음을 당한 장소를 ‘기브롯 핫다아와 [Kibroth Hattaavah]’ 라고 하였던 것과 같다. , 어떤 장소의 이름은 위대한 선조나 특정 사건이 발생한 사건을 들어  지역의 이름이  것이다. 그래서 노아의 후손들이 흩어진 이후에 그들이 가지고 있던 지명의 이름은  그들 직계 선조들의 이름이었다. 그렇게 선조들의 이름을 따라 명명된 지역 안에서는  선조의 이름이 위대한 이름이 되는 일반적인 이해이다.

먼저 엘람이다. 엘람은 페르시아의 선조격이다. 기원전  2,700 ,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아완(Awan), 슈스타르(Shustar) 세워지기 전에는 약한 부족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왕조가 바뀌며 강력한 패권을 가지게 된다. 이들 후손은 나중에 바벨론을 함락시키고 메소포타미아 일대 강력한 엘람 제국을 건설하는 민족이 된다. 하지만 세계 역사 안에서 그들은 아케메니드 페르시아, 파르티아 왕조, 사산조 페르시아를 형성하는 강력한 맹주로 자리 잡은 강한 족속이다. , 엘람은 엘람을 세운 것이다.

둘째 아들 앗수르이다. 너무도 유명한 족속이다. 엘람이 메소포타미아 남부 지역의 패권을 이루었다면 앗수르를 메소포타미아 북서부의 맹주로 자리잡는다. 최초의 셈족문화를 형성하게 되는 셈의 후손들이다. 세계사에 등장하는 앗시리아가 이들이다. 우리가  아는 함무라비 법전의 배경이 되는 나라이기도 하다. 또한, 수메르 문명을 일으킨 악카드, 혹은 아카드 셈족 문명을 발전시킨 족속이다. , 앗시리아 제국을 이룬 셈의 후손이다.

넷째 아들 (Lud)이다. 정확하지 않지만 소아시아의 리디아 왕국으로 보는 견해가 주류이다. 두로에 용병을 파견  정도로 힘이 있는 족속이며 당시 북부 아프리카의 패권을 장악한 미스라임의 후손이 건설한 애굽과 대등한 관계로 동맹을 맺을 정도로 상당한 세력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가  아는 헤라클레스가 왕으로 있던 지역으로 호메로스는 마이오니아 라고도 하였다. 룻의 후손들의 번영을 누릴  있었던 것은, 대륙과 대륙을 잇는 요충지에 있었기 때문이다. 일례로 메소포타미아를 거쳐 수사에 이르는 페르시아 제국이 건설한 ‘King's Highway' 통하는 곳이었다. 세계사적으로 사르디스 신전이 위치한 지역이다. 엘람, 앗수르와 동격은 아니어도 그들과 견주기에 부끄럽지 않는 세를 가진 족속이라 하겠다. 

다섯째 아들 아람이다. 엄밀히 말해서 ‘아람이라는 나라를 건설했다고   없다. 아람의 후손들이 여기저기 도시국가 형태로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광범위하게 정착하였기 때문이다. 지리적으로 비옥한 초승달 지역(Fertile Crescent) 산재한 후손들이며 성경에서는 ‘수리아 표기된 부분이다. 그래서 아람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를 ‘아람어라고 하는데, 워낙 편만한 지역에 사용된 언어이기 때문에 ‘아람어라는 표기 안에 셈의 후손 아람의 이름이 제국을 건설한 엘람이나 앗수르보다  이상이 유명세를 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다. 예수님 시대에도 아람어가 사용될 정도인 것을  , 셈의 후손들이 가진 선조들의 명성은 현대에서도 충분히 흔적을 찾을  있는 부분이다.

우리가 다루지 못한 아들이 있다. 바로, 셈의 셋째 아들 아르박삿이다. 아르박삿은 엘람과 앗수르, , 아람처럼 패권을 장악하는 국가를 형성하지 못한다. , 후손들에 의해 아르박삿이라는 이름이 회자되거나 지역을 따를 정도의 영향을 이루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다른 자료에 의하면 바벨에서 흩어질 , 아르박삿과 그의 후손들은 엘람의 비호 아래  정착지를 찾아 국가를 건설했다는 흔적은 있어나  역시 분명치는 않다. 세계사적으로 사료나 자료들이 현저하게 부족한 상황에서 단정할  없기 때문이다. , 실제로 아르박삿의 후손들이 나라를 건설했을 정도면, 지리여건상 다른 형제들 나라와의 충돌이 불가피한데, 이에 대한 기록이 없는 것을 보면 아르박삿만 유일하게 나라다운 나라를 세우지 못하고 겨우 부족일가가 세를 형성한 정도라고 밖에는....!

결국, 아르박삿의 후손은 형제들이 세운 나라의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유목생활을 했다는 것인데 이는 이스라엘 민족이 민족적 업을 삼은 것에 비추어 봐도 어색하지 않다. 그렇게 셈의 후손으로 명맥을 유지하며 후손들에 의해 유명해지는  따위는 다른 형제들에 해당한 것으로 치부한 , 그들만의 생활양식을 이루어 갔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  것은, 바로  후손들 중에 우리가  아는 아브라함이라는 후손이 있다는 점이다. 아브라함이 아르박삿의 후손이라는 점이 부각되는 것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시면서 하신 말씀에 답이 있다. 왜일까? 이미 살펴본 셈의 다른 형제들이 누린 명성과 후손들의 강성함에 대한 기술들을 보면 충분히 유추    있는 점이다. ,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시면서   12:2~3 있는 말씀들을 하셨을까? 다음 주에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참고 하면 좋은 자료 

크리스천투데이에 연재된 ‘오피니언/칼럼 조덕영 박사의 창조신학

아브라함의 조상은 누구인가? 셈의 후손 아르박삿

페르시아(이란) 주인이  (Shem) 장남 엘람

앗수르 제국을 이룬 셈의 아들 앗수르(Asshur)’ 

 

임번삼 , 「지명 속에 숨겨진 창세기 : 창세기와 고대 국가의 탄생

박윤식 , 「(하나님의 구속사적 경륜으로 ) 창세기의 족보

 

진행 시나리오

[활동] 셈의 후손 족보 완성, 셈의 다섯 아들 외우기

[준비물] 셈의 후손 족보 관계도

[진행내용]

바벨탑 사건으로  세계에 흩어진 노아의 후손들  셈의 후손들의 족보를 찾아보되 특히, 아르박삿의 후손에 초점을 두어 족보를 완성해 보도록 한다

 

분반나눔

분반나눔시 주의사항

다그치듯 하지 않습니다. 설교를  들었는지 그렇지 않은지는 점검하고 짚어주는 시간이며 활동한 내용을 통해 말씀에 대한 이해와 반응을 확인하는 시간입니다. 아이들은 배운 것을 작게라도 활동에 참여한 후에 나눔을  것이므로, 어떤 형태로든 자기의 감정과 느낌을 이야기 하게 됩니다. 짧게  마디 하더라도 최대한 칭찬과 격려로 나눔을 이끌어 가시기 바랍니다. 나눔 진행 순서는 다음과 같습니다(현장의 상황에 따라 다르게 진행가능하며 유동적으로 접목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점검  활동내용 소감 나눔] → [말씀을 바탕으로  일주일의 각오] → [암송구절 제창] → [축복 기도  해산]

1. , 다같이 오늘의 본문과 제목이 어떻게 되지?

2. 창세기를 이루는  기둥은? ‘B4', 'A4'

3. 창세기를 이루는  기중에서 B4  가지는 뭐지? ‘창조’, ‘타락’, ‘심판’, ‘분산

4. 셈의 다섯 아들은?

5. 셈의 아들들  나라를 건설하지 못한 유일한 아들은?

6. 아브라함의 누구의 후손인가?

7. 이번 , 머릿속 말씀을 다같이 읽어보고 마무리 하자!

 9:7 암송 순서 묵상 포인트(관계묵상)

22    

셈의 아들은 

엘람과 앗수르와 

아르박삿과 룻과 아람이요

1. 골격보기

주절: 아들은 엘람과 앗수르와 아르박삿과 룻과 아람이요

2. 살붙이기

누구의 아들입니까?

셈의

3. 전체암송

1. 셈의 아들들입니다.

성경의 특징 중에 하나는 수많은 인명과 지명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셈의 아들 다섯 명의 이름이 기록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이름과 행위를 기억하시고, 그것을 기록하십니다. 선한 일만 기록될  있도록 힘써야 합니다.

 

#오감성경사역연구원 미디어팀장입니다.

 

본문: 창세기 9장 1, 6~7절

제목: 창 B4: 분산

 

본문 본문 암송

1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6

다른 사람의 피를

흘리면

그 사람의 피도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셨음이니라

7

너희는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가득하여

그 중에서

번성하라

하셨더라

 

7

너희는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가득하여

그 중에서

번성하라

하셨더라

 

해설 및 연구/ 묵상_오감성경사역연구원 김성찬 목사

 

신세계 질서(New World Order)는 8명으로 시작된다.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가 언제나 그의 말씀 하신 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거대하고 끔찍한 사건으로 보여주신 바 있다. 인류의 신기원을 이룰 만한 다양한 사건이 아닌, 딱 하나의 사건으로 이루어 가신 것이다. 그렇게 하나님이 그의 창조세계 안에 이루어진 창조주에 의한 사건은 어쩌면 가장 끔찍하지만 가장 깔끔한 방법이었는지도 모른다. 방법이야 하나님 편에서는 무엇이든 선택될 수 있는 것이었으므로 피심판자인 우리가 그 어떤 이유와 핑계로 하시고자 하는 바를 그만두게 할 명분은 없다. 분명한 것은 작정하시고 계획하신 바가 그대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며 예외는 없었다는 점이다. 즉, 신세계 질서를 이루어 나가는 새로운 시작점이 8명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은 언제나 그 질서의 운행자가 된다는 것이다. 새롭게 시작되는 인류의 역사 안에 주어진 명령이 최초의 세계가 이루어졌을 때 주어진 명령과 다름이 없다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즉, 선수는 달라도 선수가 지켜야 할 규칙과 원리는 같다는 뜻이다. 그것이 무엇일까?

하나님은 일단 그의 사명을 이루시기 전에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 있다. 사명을 이루기 위한 원천적 힘이라고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아담 부부와 피조 세계에 주어진 ‘생육’, ‘번성’, ‘충만’의 사명을 이루게 하시고자 할 때, 하나님은 그들에게 “복”을 주셨다는 것이다. 이것이 노아의 가족에게도 동일하게 주어진다. 구조가 같다. “복”을 주시고, “생육”, “번성”, “충만”이라는 사명을 이루라 하신 것이다. 완벽한 조건을 주시고, 질서의 원리를 행하게 하신 것이다.

 

 

호랑이 1마리의 활동 반경은 100~150km이다. 온 땅에 흩어져 가득할 수 있는 산야의 맹주다운 활동 범위이다. 다른 동물들도 마찬가지이다. 땅에 가득 하라 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묵묵히 순종하는 금수들을 보면, 유독 사람만이 흩어짐을 면하고자 하는 본성이 가득하다. 머무르고 있는 땅에 가득할 것이 아닌, 하나님이 지으신 이 땅에 가득할 것을 명하셨다는 점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8명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번성할 수 있을까 하는 수학적 질문을 던져보아도 한 세기 동안 한 세대를 지나 편만해지는 인간의 수는 상당하다. 즉, 하나님이 명하신 “생육”, “번성”, “충만”의 말씀에 따름은 사람도 예외 일 수는 없다는 뜻이다. 다만, 땅에 가득 하라 하신 말씀의 성취 장소가 지엽적이거나 그들 스스로 제한한 특정 영역으로 제한 될 수 없다는 점이다. 홍수 이후에 달라진 지리환경으로 도저히 가득 할 수 있는 형편이 되지 않아 그랬을 것이라는 동정의 추측은 그만두자. 분명 하나님은 “복”을 주셨고, 능히 행할 수 있는 조건도 베풀어 주신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래서 수학적인 접근은 접어두더라도 향후 펼쳐질 바벨탑에 일어난 준엄한 경고와 말씀의 강제시행은 인류가 행한 치명적인 잘못이 아닐 수 없다.

결론이다. 노아의 가족에게 주신 이 명령이 창세기 1장에 주어진 최초의 명령과 같다. 즉, 하나님의 말씀과 그의 뜻은 변하지 않는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들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은 나타내신바 된 그 이시므로 영원하다.

예수께서도 “복”을 주시고, “생육”, “번성”, “충만”의 동일한 구조로 이 땅에 살아가는 우리에게 말씀을 주셨다. 즉, 우리가 마땅히 행하여야 할 것으로 무엇을 요구하시기 전에 “복음”과 “성령”을 주셔서 온 땅에 두루 다니며, 온 천하에 다니며, 심지어 땅 끝까지 이르러 그의 말씀되심을 나타내라 하셨다.

 

 

여기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우리에게 있는 것을 발견하지 못한 채, “생육”, “번성”, “충만”을 행해야 하는 부담과 무게감에 의해 온전하지 못하고 자유하지 못한 행태를 보이는 것이다. 즉, 우리에게 이미 주어진, “복음”과 “성령”의 가치를 발견하지 못하고 “온 천하에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파하라"라는 것의 범위가 “땅 끝”까지 이르러야 한다는 부담이 우리에게 있는 것을 온전하게 누리지 못하는 것이다.

기억하자. 우리에게 “복” 있음을...! 신명기 30장에서 “행할 수 있느니라!"라고 하신 하나님의 강력한 촉구에 우리 스스로 거부하지 말자! 행하고자 함이 100%에 이르지 않고자 하여 애써 거부하는 불손함은 과감히 버리자.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신세계 질서의 원리가 창조 당시의 원리와 다르지 않음을 기억하며 말씀을 이루어 가는 주체로 세워주신 것에 감사해보자! 그리고 우리에게 그럴 수 있는 힘과 능력이 “복음”과 “성령”으로 이미 확증된 것에 감사하자. 이제 우리에게 남은 것은, 주님 오시는 그 날까지, 끝 까지, 땅 끝까지 “복음”과 “성령”으로 그의 나라를 전하는 것이겠다. 그리고 기억하자. 그것이 곧, “생육”, “번성”, “충만”의 신기원을 이루는 완벽한 신약의 성취라는 것도...!

 

진행시나리오

 

[활동] 지구촌 무한 자유이용권(지구촌 먹거리 대잔치)

[준비물] (최소한의) 조리도구

[진행내용]

홍수 심판의 결론이면서 분산(바벨탑 사건)의 서론입니다. 온 땅에 가득한 하나님 나라의 한 가족임을 기억하고 경험하고자 하는 활동입니다. 반별로 대륙이나 나라를 지정하여 그 나라의 음식을 마련해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온 구성원이 참여하는 먹거리 잔치 같은 행사가 이루어집니다. 음식 지정은 사전에 고지하여도 좋고 대륙이나 나라만 지정한 후, 음식은 자유선택에 맡겨도 좋습니다. 선교에 관심을 두고 있는 교회라면, 선교지 음식 박람회로 기획을 해도 좋겠습니다. 다르지만 “복음”과 “성령”안에 하나 됨을 상기 시킬 수 있는 좋은 교육 소재입니다.(그래서 학부모를 참여시켜 함께 만들어 가는 구성이 된다면, 좋은 전도의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다른 방식의 분산게임

 

https://youtu.be/Cd0qXaXOWD8

 

분반나눔

 

분반나눔시 주의사항

다그치듯 하지 않습니다. 설교를 잘 들었는지 그렇지 않은지는 점검하고 짚어주는 시간이며 활동한 내용을 통해 말씀에 대한 이해와 반응을 확인하는 시간입니다. 아이들은 배운 것을 작게라도 활동에 참여한 후에 나눔을 한 것이므로, 어떤 형태로든 자기의 감정과 느낌을 이야기 하게 됩니다. 짧게 한 마디 하더라도 최대한 칭찬과 격려로 나눔을 이끌어 가시기 바랍니다. 나눔 진행 순서는 다음과 같습니다(현장의 상황에 따라 다르게 진행 가능하며 유동적으로 접목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점검 및 활동내용 소감 나눔] → [말씀을 바탕으로 한 일주일의 각오] → [암송구절 제창] → [축복 기도 후 해산]

1. 자, 다 같이 오늘의 본문과 제목이 어떻게 되지?

2. 창세기를 이루는 두 기둥, 무엇과 뭐지?

3. 창세기를 이루는 두 기중에서 B4의 네 가지는 뭐지?

4.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명령은 뭐지?

5. 자, 하나님이 노아의 가족들에게 주신 명령과 창세기 1장에서 아담에게 주신 명령을 비교해보자! 어때?

6. 하나님이 “복”을 주시고, 그의 명령을 행하라고 하신 것처럼, 예수님도 우리에게 “복음”과 “성령”을 주셔서 그의 명령을 행하라고 하셨는데, 그게 무엇일까?

7. 이번 주, 머릿속 말씀을 다 같이 읽어보고 마무리 하자!

 

안녕하세요

오감성경사역연구원 미디어팀장입니다.

 

본문: 창세기 8장 1~12절

제목: 창 B4: 심판 Ⅲ(홍수 후)

 

본문

1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가축을

기억하사

하나님이

바람을

땅 위에

불게 하시매

물이

줄어들었고

 

 

6

사십 일을

지나서

노아가

그 방주에 낸 창문을

열고

 

7

까마귀를

내놓으매

까마귀가

물이 땅에서 마르기까지

날아 왕래하였더라

10

칠 일을

기다려

다시

비둘기를

방주에서

내놓으매

 

 

 

 

 

2

깊음의 샘과 하늘의 창문이 닫히고

하늘에서

비가

그치매

 

3

물이

땅에서

물러가고

점점 물러가서

백오십 일 후에

줄어들고

8

그가

비둘기를

내놓아

지면에서 물이 줄어들었는지를

알고자 하매

 

 

 

 

 

 

11

저녁때에

비둘기가

그에게로

돌아왔는데

그 입에

감람나무 새 잎사귀가 있는지라

이에

노아가

땅에

물이 줄어든 줄을

알았으며

 

4

일곱째 달

곧 그 달 열이렛날에

방주가

아라랏 산에

머물렀으며

 

5

물이

점점 줄어들어

열째 달

곧 그 달 초하룻날에

산들의 봉우리가

보였더라

9

온 지면에

물이

있으므로

비둘기가

발 붙일 곳을

찾지 못하고

방주로

돌아와

그에게로 오는지라

그가

손을

내밀어

방주 안 자기에게로 받아들이고

12

칠 일을

기다려

비둘기를

내놓으매

다시는

그에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더라

 

 

 

 

 

 

암송

1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가축을

기억하사

하나님이

바람을

땅 위에

불게 하시매

물이

줄어들었고

 

해설 및 연구 / 묵상_오감성경사역연구원 김성찬 목사

홍수로 이 땅을 심판 하신 것이 어떻게 끝나 가는지 관찰자 시점으로 기술되고 있다. 엄연히 이야기 하면 창세기 8~9장의 이야기를 동시에 다루어야 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매 주 진행되는 설교 분량의 한계와 시간의 제한으로 창세기 8장의 이야기가 주는 희망의 메시지로 금주의 이야기를 가늠하며 여기까지의 과정을 도표로 정리한 교재 23쪽을 중심으로 살펴보도록 하자.

노아가

600세 되던 해

세상의 부패를 보시고 심판을 작정하신 후 노아를 선택하심

방주를 만들라는 지시를 받음

6:5~8

6:13~22

2/10 방주에 들어감 7:7
2/17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고 하늘의 창문들이 열린 40일간의 홍수가 시작 7:10~12
3/37 지면의 모든 생명 있는 것은 다 죽음, 비 그친 후 150일간 물이 가득함. 7:20~24
7/17 방주가 아라랏산에 머묾 8:4
10/1 150일간 물이 점점 줄어 산들의 봉우리가 보임 8:5
11/11

홍수 후 처음으로 내놓아 본 까마귀가 왕래를 함,

비둘기를 날려 봄

8:7~8
11/18 비둘기가 올리브 나무  잎사귀를 물고  8:11
11/25 비둘기가 돌아오지 않음 8:12
1/1

노아 601

방주에서 땅에 물이 걷힌 것을 확인
8:13
2/27 방주에서 나옴 8:14~19

위의 도표를 통해서 보면, 홍수에 대한 여러 가지 의문점들을 해소 할 수 있다.

먼저, 홍수가 실제의 역사인가이다. 바로 그 증거가 홍수의 일지와도 같은 구체적인 시간의 언급과 지리 지형의 언급, 노아의 가족들이 방주에서 나오기까지의 과정이 상당히 자세하게 기술되어 있다. 허구적이며 꾸며낸 이야기라면 이렇게 구체적이고 마치 눈앞에서 본 것처럼 생생한 묘사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홍수 심판이 국지적이냐 전 지구적이냐를 떠나, 실제 있었던 사건임에는 이의가 있을 수 없겠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심판의 기간이 생각보다 길었다는 부분이다. 40일간의 비가 내린 후에도 노아의 가족들은 1년을 가까이 방주 안에만 있었다. 그 정도 시간이면 방주의 구조 상 채광이 여의치 않았을 것을 감안 했을 때, 거의 비타민 D 결핍은 물론 영양 불균형으로 거의 창백한 얼굴들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방주 안에서의 환경이 쾌적하거나 크루즈선 같은 여가시설이 충분한 것도 아니었을 테니, 겨우 8식구가 먹고 마시고 지내는 정도가 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 정도 시간이면 실로 어마어마한 시간이다. 노아가 살았던 당시의 인구 평균 수명이 보통 몇 백 살이라서 1년 동안 방주에서 지내는 시간이 찰나와 같다고 할 수도 있겠으나 노아가 처한 상황은 철저하게 상대적으로 해석 할 수 밖에 없다. 이쯤 되면 폐쇄공포증이 생겨도 전혀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노아가 방주에서 있었던 1년은 심판의 기간으로 하자면 상당한 시간이 아닐 수 없다. 여러분이 방 안에서 촛불 정도의 밝은 빛만 비춰지는 상태로 인터넷 없이 바깥 상황은 전혀 모른 채, 1년을 지낸다고 해보라!

노아는 밖의 상황을 전혀 알 수 없었으므로 노아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새를 날려 보내는 일 밖에 없었을 것이 자명하다. 그래서 그가 선택한 것은, 위로 나 있는 하나 밖에 없는, 그것도 성인 남자가 겨우 몸을 비집고 들어가고 나올 수 있는 그런 창문으로 새를 날려 보내는 일이었다. 심지어 창문의 위치는 위이다. 물론 방주가 3층 구조라는 것 이외에 아무런 정보가 없으니 그들이 위로 난 창문을 어떤 식으로 달아 내렸는지 알 수는 없겠으나 분명 노아는 그 창문을 통해서 새를 날려 보냈다는 것이다. 어쩌면 빠금히 고개를 내밀고 바깥상황을 수시로 확인했을 수도 있다. 배가 멈춘 것은 알았을 것이나 아직 물이 가득하다는 것을 보면서 매일 나가려는 희망을 가졌을 것이다.

배가 멈추고 한 달이 지나 새를 날려 보내기 시작한지 일주일 후...! 드디어 희망을 본다. 비둘기가 나무 새 잎사귀를 물고 온 것이다. 땅이 약동하고 생동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노아의 600세 11월 18일이 현재 그레고리안 태양력에 기준한 11월의 아라삿산 기후인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다만, 새 잎사귀를 물고 왔다는 것은, 분명 노아를 흥분하게 할 만한 일이었음은 틀림없다.

 

하나님은 노아를 방주에 들어가라 하셨고, 노아에게 나오라고 하셨다. 상황이 충분하여 때에 따라 결론을 내리고 판단한 근거에 의해 방주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분명 노아는, 새들을 통하여 땅이 말랐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방주를 탈출(?)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땅이 마른 것을 확인 한 후에도 한 달을 더 기다렸을 때, 하나님이 방주에서 나올 것을 명하신다. 방주에 들어간 후에도 일주일 있다가 비를 내리셨듯이, 땅의 물이 걷힌 것을 확인 한 후에도 충분한 시간이 지난 후, 육지를 밟게 하신 것이다.

우리는 종종, 기대되는 상황이 현실이 되었을 때 흥분하고 이성의 초점을 놓치는 때가 있다. 기다리던 때가 임박한 것을 확인하면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1%는 충분히 감안 할 수 있는 것으로 여기고 기꺼이 수행한다. 그리고 어느 정도 목표치가 달성되기까지 했을 땐, 적절히 고려 된 상황에 결단력 있는 행동을 취한 자신에게 심리적 보상까지 행한다. 특히, 노아와 같은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러 할 법도 하다. 그러나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것은, 노아의 태도이다.

가만히 보면 창세기 6~9장에 등장하는 인물이 노아인 것은 맞지만 하나님이 주체를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노아가 하나님 앞에서 실제로 행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따른 것뿐!

현재에도 하나님은 이 땅을 그의 택하신 종들을 통하여 이루어 가고 계신다. 선택된 사람들의 활약과 업적들이 사람들 사이에 공감되고 이해되는 어떠한 메시지를 줄 지라도 결국, 하나님이 하시고자 한 것은 변함없이 이루어져 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묵묵히 그럴 수 없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이 이끌어 가실 것이고, 다 되어가는 상황에 놓여 다 되어지는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섭리는 명확한 것이겠으니 말이다. 다만, 우리가 가진 ‘기대’라는 것이 ‘현실’이 되었을 때, 호전되고 달라지는 상황에 따라 중심이 흔들리는 그런 뜻의 희망이 아닌, 절대 가치의 희망을 현실로 누리는 다부진 기다림이 필요한 것이라고 본다. 흥분하지 말고, 끝까지 주님이 말씀하시는 그 때가 곧, 내가 행할 시점이라는 것을 기어가며 묵묵히 지금 나에게 주어진 길을 걸으리라는 젊은 시인의 고백이 이 순간, 우리에게 필요한 고백이 아닐까 한다.

(그런데 한 마리 가지고 계속 날려 보냈을까? 돌아오지 않은 날려 보낸 비둘기 따라 다른 비둘기도 같이 보내줬을까? 암수 한 쌍이어야 하는데...)

 

진행 시나리오

 

[활동] 방주모형 맞추기

[준비물] 방주 모형 만들기 Set

[진행내용]

지금까지 익힌 창세기 6~8장의 내용을 기억하며 방주 만들기를 통해 직접 이야기 해볼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하게 됩니다. 기독교 쇼핑포털에서 구입가능하며 예산에 따라 개인 적용하는 것도 좋고, 반 별로 진행하여도 좋습니다. 여건이 되는 선에서 스티로폼과 기타 재료들을 가지고 실제 방주의 축소비율에 맞는 모형을 제작 해 보는 것도 좋습니다. 축척은 50:1 정도가 어떨까 합니다.

 

https://youtu.be/TEmUegAQJOs

https://youtu.be/9zEyOpl1ZqY

 

이외에 창세기 게임도 참고해보세요

https://limsk98.tistory.com/249

 

오감성경에서 준비한 바이블 게임!!!

안녕하세요 오감성경사역연구원 미디어팀장입니다. 교회에서 일반 레크리에이션을 적용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거기에 성경적인 내용을 담아서 한다는 것은 준비하는 분들의 노력과 폭풍 서치가 필요한데요. 그..

limsk98.tistory.com

 

분반나눔

 

분반나눔시 주의사항

다그치듯 하지 않습니다. 설교를 잘 들었는지 그렇지 않은지는 점검하고 짚어주는 시간이며 활동한 내용을 통해 말씀에 대한 이해와 반응을 확인하는 시간입니다. 아이들은 배운 것을 작게라도 활동에 참여한 후에 나눔을 한 것이므로, 어떤 형태로든 자기의 감정과 느낌을 이야기 하게 됩니다. 짧게 한 마디 하더라도 최대한 칭찬과 격려로 나눔을 이끌어 가시기 바랍니다. 나눔 진행 순서는 다음과 같습니다(현장의 상황에 따라 다르게 진행가능하며 유동적으로 접목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점검 및 활동내용 소감 나눔] → [말씀을 바탕으로 한 일주일의 각오] → [암송구절 제창] → [축복 기도 후 해산]

1. 자, 다같이 오늘의 본문과 제목이 어떻게 되지?

2. 빛이 거의 들어오지 않으며 인터넷도 되지 않는 방 안에서 1년 동안 살면 어떤 느낌일까?

3. 노아가 날려 보낸 새들은 며칠 째 창조되었을까?

4. 노아가 물이 마른 것을 확인한 후 얼마나 더 방주에 있었을까?

5. 거의 다 되었다고 판단 할 때 움직이는 것이 맞나?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 움직이는 것이 맞나?

6. 자, 오늘의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인지 이야기 해보자!

7. 이번 주, 머릿속 말씀을 다같이 읽어보고 마무리 하자!

1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가축을

기억하사

하나님이

바람을

땅 위에

불게 하시매

물이

줄어들었고

 

1. 골격보기

종속절: 하나님이 기억하사

하나님이 불게 하시매

주절: 물이 줄어들었고

2. 살붙이기

① 하나님이 무엇을 기억하셨습니까?

→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가축을

② 하나님이 어디에 불게 하셨습니까?

→ 땅 위에

③ 하나님이 무엇을 땅 위에 불게 하셨습니까?

→ 바람을

3. 전체암송

1. 하나님이 기억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은혜 베푸실 대상을 기억하십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대상은 사람과 들짐승과 가축입니다. 하나님은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들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그들이 보존되고 활동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보존의 은혜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살아 있음에 감사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께서 은혜 베푸실 존재로 기억되어야 합니다.

2. 하나님이 불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고, 주관자이십니다. 그러므로 바람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을 도구로 사용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무의미한 환경은 없습니다. 모든 것들이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도구요, 통로입니다.

 

 

 

 

안녕하세요

오감성경사역연구원 미디어팀장입니다.

교회학교 모세오경 분반나눔지도안 14주차입니다.

본문: 창세기 6장 1~22절

제목: 창 F4_심판 I(홍수 전)

[사람의 죄악]

1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4

당시에

땅에는

1)네피림이

있었고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에게로

들어와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은

용사라

고대에

명성이 있는 사람들이었더라

1) 장부가

6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2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

7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8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5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노아의 족보]

9

이것이

노아의 족보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13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포악함이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16

거기에

창을

내되

위에서부터

한 규빗에

내고

그 문은

옆으로

내고

상 중 하 삼층으로

할지니라

10

세 아들을

낳았으니

셈과 함과 야벳이라

 

11

그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부패하여

포악함이

땅에

가득한지라

14

너는

고페르 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만들되

그 안에

칸들을

막고

역청을

그 안팎에

칠하라

17

내가

홍수를

땅에

일으켜

무릇

생명의 기운이 있는

모든 육체를

천하에서

멸절하리니

땅에 있는 것들이 다

죽으리라

12

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부패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부패함이었더라

15

네가 만들 방주는

이러하니

 길이는

삼백 2)규빗,

너비는

오십 규빗,

높이는

삼십 규빗이라

2) 히, 암마

 

 

18

그러나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

너는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네 며느리들과 함께

그 방주로

들어가고

21

너는

먹을 모든 양식을

네게로

가져다가

저축하라

이것이

너와 그들의 먹을 것이

되리라

암송

 

9

이것이

노아의 족보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10

세 아들을

낳았으니

셈과 함과 야벳이라

19

혈육 있는 모든 생물을

너는

각기

암수 한 쌍씩

방주로

이끌어들여

너와 함께

생명을

보존하게 하되

22

노아가

그와 같이 하여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20

새가

그 종류대로,

가축이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

각기 둘씩

네게로

나아오리니

그 생명을

보존하게 하라

   

 

해설 및 연구/묵상_오감성경사역연구원 김성찬 목사

창세기를 이루는 두 기둥, B4와 F4에서 B4 세 번째 사건, 홍수 심판이다. 너무나도 익숙하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이 사건에 대해 지구과학적 접근은 물론이고 성경의 역사성에 대한 논의도 상당한 주제이기도 하다. 우리는 성경을 있는 사실 그대로 믿고 실천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홍수가 어떤 식으로 진행되었느냐에 대한 약간의 이견은 있을지라도 그 자체에 대한 허구성을 제기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여기서는 홍수 심판 사건이 실제로 존재했느냐에 대한 초점보다 “심판”의 초점을 두어 다루고자 한다.

먼저 살펴 볼 것은, 심판의 동기와 이유, 그리고 그 방식이 무엇인지 보다 홍수 이전과 지금의 상황이 어떠한지 이중 구조로 제시되는 심판을 이야기 할 필요가 있다.

홍수 이전과 지금의 상황은 다르지 않다.

5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홍수 이전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한 현상은 타락의 결과요 죄의 결과이다. 그 죄악의 횡행함이 그 때나 지금이나 동일하다. 어떤 형태로 나타나든지 하나님 보시기엔 이 세상의 보편타당한 논리가 무시되는 현상은 시대를 초월하여 동일하게 나타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편만한 정당성을 확보하게 될 경우 그것은 집단의 논리가 작용되어 하나의 사회 현상으로까지 동일시된다. 더욱 무서운 것은, 이 논리가 종교화 되고 또 종교적 규칙이 되면 더 이상 깰 수 없는 견고한 규칙이 되어버린다. 가장 간단한 예로, 이슬람에서 4명의 부인까지 둘 수 있다는 것에 근거하여 만 14세 이상 되는 여자 아이와 결혼하는 것이다. 그것이 잘못되었고 사회적인 지지를 얻지 못한다고 하여도 사람의 죄악이 그들 안에 가득하여 문화로 당연시되는 것을 볼 때, 하나님은 홍수 심판 시대의 그것과 다르지 않은 이 사회를 보고 계실 것이다.

그리고 심판 이전,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이라는 보편적인 악의 유발성은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죄 아래에 있는 인간의 한계를 드러내주고 있다. 집에서 곱게 자란 아이들이 학교를 다녀오면 거칠어지고 거친 말을 하고 심지어 거짓말을 하게 되는 것을 보며 충분히 납득 가능한 현상이라 하겠다. 배우지고 않고, 가르치지도 않은 선량함 이편의 현상들은 누구도 교육하지 않은 것인데도 불구하고 자가 학습의 결과마냥 스스로 싸우고, 거짓말을 하고, 속이고, 다투고, 분쟁을 일삼는다. 즉, 학교에서나 가정에서 그 누누도 정규과정으로 교과서나 교재로 악을 가르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이 거의 대부분 악함 뿐이라는 것은, 절망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심판 이전과 지금의 상황은 여하히 다를 바가 없다.

자, 계속해서 홍수 이전의 상황을 살펴보자!

11

그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부패하여

포악함이

땅에

가득한지라

 

12

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부패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부패함이었더라

성경에 ‘세상’을 지칭 할 때, 적어도 4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듯이 여기서 ‘온 땅’이라는 표현도 중의적이다.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세계 전체를 일컫는 동시에 ‘인류’를 지칭하는 문학적 표현이다. 그렇게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 세계 안에 포악함이 가득하다고 선언하신다. 이미 그렇다는 결론과도 같다. 그런 상태를 하나님은 ‘부패한 땅’이라고 하시고 계신 것이다. 즉, 기능 상실이며 자체 소멸 과정을 겪고 있는 것이다. 부패가 화악 작용의 결과로 분자구조가 붕괴되는 현상이겠는데, 요지는 그런 작용이 시작되면 최초의 형태를 유지하면서 작동해야 할 원초적 기능이 완벽하게 무너지고 제한된 상태를 일컫게 된다. 즉, 하나님은 그가 지으신 피조 세계가 ‘혈육 있는 자’로 대변되는 인류 전체의 붕괴로 인해 전체 심판의 대상이 되어버린 것을 말씀해 주고 계신 것이다. 이것은 지금의 사회도 마찬가지이다. 지금의 사회는 자정작용으로 자가 회복이 가능한 사회가 아니다. 지상에 모두가 만족하는 유토피아를 건설하고자 하는 열망은 있어도 그것이 실현된 적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여전히 부패한 것은 동일하며 ‘포악하여 행위가 선하지 않은 것’도 동일하다. 즉, 사람에겐 소망함을 가질 수 없으며 사람은 그런 존재도 되지 못한다는 것을 이야기 해준다. 사람만이 희망이라 노래했던 시인의 외침이 결국은 자기중심적인 사회의 자기 논리밖에 되지 않는 모순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런 현상을 ‘부패’ 하였고, 또 ‘부패’한 것이라 말씀하시고 계신다.

9

이것이

노아의 족보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10

세 아들을

낳았으니

셈과 함과 야벳이라

그러나 희망은 있다. 사람만이 희망이라서 희망이 아니다. ‘의인’이 있기 때문이다.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악이 세상에 들어왔을 지라도 하나님은 언제나 한 사람을 통해 구원을 이루셨다. 홍수 심판의 시대, 하나님은 노아를 선택하셨고, 그를 의인이라 칭해주셨다. 성경은 그가 왜 의인인지 설명하고 있지 않다. 다만, 하나님이 사람의 생각하는 것이 악함뿐임을 보시고 이 땅을 부패한 땅이라고 하셨듯이, 노아를 당대의 의인으로 칭해주시고 있다. 의의 상대성이 어떻게 적용되는지 따져 볼 것도 없이 당대에 통하는 의가 하나님 편에서 볼 땐, 당시의 절대 의가 되어 의인이 된 것이라 하겠다. 하나님은 그를 완전한 자로 여기시는데 이 표현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칭호에도 사용된 적이 없는 유일의 칭호이다. 에스라서에서 율법에 완전한 사람으로 에스라를 소개하고 있는 것과 아가서에서 왕이 술람미 여인에게 칭한 표현이 있겠으나 존재 자체가 하나님 편에서 완전함을 보였다는 사람은 거의 그가 유일하다. 더욱 더 놀라운 것은,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부패하였다’는 하나님의 말씀이 그에게는 전혀 해당이 되지 않는 다는 것이다. 그 또한 셈, 함, 야벳이라는 혈육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상관없이 없음을 하나님은 덤덤하게 알려주고 계신다.

하나님과 동행하며 언제나 그의 뜻과 생각에 합일된 이를 하나님은 의인이라 칭해주신다. 즉, 의인이라 함은 언제가 하나님 편에서 하나님의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생각하고 행하는 이라고 할 수 있겠다. 노아가 그런 사람이었다. 그래서 언제나 하나님의 마음이 그의 마음에 있으므로 이 땅에 부패함이 가득할지라도 의인으로 살 수 있는 것이며, 생각하는 것이 악함뿐인 곳에 더불어 살아갈지라도 그의 의로 말미암아 의인으로 살아 갈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당시의 상황과 지금과 아주 똑같다. 홍수 이전에 누군가는 부패한 세상에 누군가를 딛고 살아가지만 우리는 언제나 마음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를 두고 말씀을 딛고 살아간다.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언제나 삶을 둘러쳐 있어 하나님의 가족의 한 구성원(막 3:35)으로 살아가는 현장이 믿음이 표현되는 현장인 것이다.

그 때는 노아를 통해 홍수로 심판 하실 것을 준비하셨지만 지금은 교회를 통해 불로 심판 하실 것을 준비하도록 하고 계신다. 그들의 날 수가 백이십년으로 정확한 기한을 두셨듯이, 누군가의 삶이 죽음으로 마감되는 정확한 때가 주어져 있음에는 동일하다. 이미 하나님은, ‘무드셀라’1) 라는 사람을 통해 그의 죽음으로 이 땅에 종말이 찾아 올 것을 예고 하셨으니 어쩌면 하나님 편으로서는 충분한 시간과 기회를 주셨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미 이 세상이 심판을 받았다고 이야기 하고 계신다. 심판이 완료된 상태에서 그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그의 ‘의’ 안에 편입시킨 하나님의 계획하심이 우리 안에 성취된 것을 발견하게 하신 것이 ‘의’이고 은혜라 하겠다.

22

노아가

그와 같이 하여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노아가 하나님의 모든 말씀에 온전한 행동으로 결론이 된 것, 이것이 의인됨의 행위이다. 성경이 그에게 의인됨의 칭호를 먼저 지정해 주고 나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다 행한 것을 소개 한 것을 본다면 우리의 의가 행동에 비롯됨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무엇이 먼저인가? 믿음의 반응이 먼저인가? 반응을 보인 것으로 의를 얻는 것인가? 성경의 은혜를 안다면 우리는 그의 ‘의’ 되심으로 말미암아 이 시대의 소명을 이루어 가는 것이 마땅할 것이겠다.

1)활 쏘는 자, 세상을 지키는 자라는 뜻으로 그의 죽음은 곧 세상의 끝을 뜻한다. 즉, 세상을 지키는 자가 죽으면 세상이 끝날 것이라는 뜻이 이미 이름 안에 내포되어 그 자체가 계시가 된 것이다. 실제로 홍수 심판은 무드셀라가 죽은 해인 노아 600세에 일어났다.

성경은 ‘물’이라는 것으로 세상이 심판을 당하였다고 하였다. 이제는 ‘물’로 심판을 당할 일은 없을 것이겠으나 그렇다고 하여 심판이 유예된 것이 아님을 명확하게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심판 이전이나 지금이나 동일하게 죄악이 관영함과 사람이 어렸을 때부터 생각하는 것이 악함뿐인 것과 부패하여 포악함이 가득한 것은 전혀 개선된 부분이 없다. 그러므로 노아를 통해 심판을 면한 기회를 얻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심판을 면해 영원한 안식의 기회를 누려야 함이 마땅하겠다. 홍수 이전과 이후의 지금의 상황이 여하히 다르지 않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노아에게 주신 기회, 현재는 교회에 주신 것을 기억하며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과 뜻에 합치하여 매 순간 동행하면서 모든 말씀에 ‘준행’ 하는 삶이되기를 바라는 바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말씀이 무엇인지, 심지어 그것이 무엇이든지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행한 노아의 삶처럼 그렇게 되기를...!

진행 시나리오

[활동] 홍수 전과 지금을 비교하기

[준비물] 이면지, 펜

[진행 내용]

홍수 이전과 이후를 상상력을 발휘하여 토론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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