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감성경사역연구원 미디어팀장입니다.

 

본문 : 고린도전서 15:3~4입니다.

3 내가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4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제목 : 성경대로

 

본문   암송

3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4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1. 골격 보기

3절

첫째주절: 내가 전하였노니

둘째주절: 이는

종속절: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4절

종속절: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살아나사

2. 살붙이기

3절

① 내가 누구에게 전하였습니까? → 너희에게

② 내가 몇 번째로 너희에게 전하였습니까? → 먼저

③ 내가 무엇을 너희에게 전하였습니까? → 받은 것을

④ 이는 무엇대로 그리스도께서 죽으셨습니까?→ 성경대로

⑤ 그리스도께서 무엇 때문에 죽으셨습니까? → 우리 죄를 위하여

4절

① 어떻게 살아나셨습니까? → 다시

② 몇 칠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까? → 사흘 만에

③ 무엇대로 다시 살아나셨습니까? → 성경대로

3. 전체암송

1. 내가 전하였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것은 그들보다 먼저 받았기 때문입니다. 먼저 복음을 받은 사람은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에게 전달할 사명이 있습니다.

 

2. 복음은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입니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전한 것은 그리스도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사역을 전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입니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우리의 죄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사흘 만에 일어났습니다. 이 모든 것이 성경대로 이루어졌습니다. 바울이 전한 복음은 그리스도이고, 그리스도는 성경대로 모든 사역을 감당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복음은 어느 날 갑자기 우리에게 온 것이 아닙니다. 복음은 약속되었고, 그 약속의 성취하신 분이 그리스도입니다. 바로 이 사실이 복음입니다.

 

 

해설 및 연구/묵상_오감성경사역연구원 김성찬 목사

 

복음,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과 부활!

어떤 전자기기일지라도 많고 적음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그 전자기기에 대한 사용설명서, 매뉴얼이 없는 것은 없다. 그리고 고장이 났을 때 처리하는 요령이나 안내 등을 담은 것을 볼 수 있다. 즉, 매뉴얼을 통해 제품을 사용하는 가장 탁월한 어떤 기술을 터득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기본적인 사용요령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매뉴얼을 익히는 것이 곧 그 제품을 제대로 누리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하듯, 우리의 신앙도 매뉴얼에 의해 통제되거나 기본을 행함에 대한 기준을 제시 받게 되는데, 그 매뉴얼이 곧 성경이라 하겠다. 그런데 그 매뉴얼이 놀랍게도 예수 그리스도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사실! 우리는 부활절을 맞아 그의 죽으심과 부활이 철저하게 시나리오에 의해 이루어진 것임을 깨닫고 우리의 각 사람에게 작동되는 시나리오가 그와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을 확인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예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이 철저하게 성경에 응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은, 복음서를 조금만 주의 깊게 읽어보면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복음서에는, ‘성경에 응하게 하려’, ‘성경을 이루려’, ‘성경에...’, ‘말씀을 이루려’, ‘선지자로’등으로 예수님의 생애 속에 이루어진 다양한 사건의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이렇듯 예수 그 자신은 매뉴얼에 의해 사역을 행하셨으며 심지어 그의 죽음과 부활까지도 이 매뉴얼에 의해 이루어진 결과인 것이다. 그 매뉴얼은 성경이다. 당시의 상황을 반영하면 정확하게는 구약성경이라 할 수 있겠다. 실제로 누가복음 4장 16~30절에 기록된 ‘사건’을 보면, 예수께서 회당에서 말씀을 읽으실 때,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하신 그 글은 곧 이사야 61장이었다. 예수께서는 이 말씀의 완벽한 성취를 선포하신 것이다. 즉, 사역 초창기 그의 출현은 곧 구약성경의 완성을 의미하는 것이었으며 옛 언약의 갱신을 뜻하였다. 이것이 사도들에 의해서 재해석되거나 다시 적용되어 어떤 새로운 개념을 창출하는 의미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구약의 이루어진 사실 그대로 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사도행전 2장의 베드로의 설교와 7장의 스데반의 설교를 통해서 확인 할 수 있다. 또한 바울이 선교지에서 한 짤막한 설교나 회당에서 가르친 일반적인 서술을 등을 보면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되고 적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예수께서 구약성경에 의해 완벽하게 이루어진 그 자신에 대한 기록을 사도들이 자신들의 복음으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셨으며 그 적용은 사도 요한의 계시록에서도 구약적 이미지로 완벽하게 투영되고 있는 바이다. 

 

그래서 우리가 배우고 있는 모세오경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과 부활을 우리의 삶에 완벽하게 적용할 수 있는 아주 탁월한 매뉴얼이 되는 것이다. 창조를 배우며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성을 발견하고, 타락을 배우며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의 흔적과 계획의 성립에 은혜를 받으며, 홍수 심판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선택적 은혜와 보편적 섭리를 깨닫게 되고, 분산을 통해 말씀에 의한 공동체의 형성을 배우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요셉을 통해 말씀이 상황을 지배하는 것과 말씀을 따라 말씀을 이루어 가는 족장들의 삶과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대비하게 된다. 즉, 현재 배우고 익히고 있는 모세오경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과 부활하심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창~신에 대한 지식은 교만에 이르는 지식이 될 뿐일 것이고, 도리어 우리를 망하게 하는 가르침이 될 뿐이겠다. 그래서 성령의 조명하심에 따라 모세오경 안에 드러난 각각의 사건들과 인물들을 통해 오늘도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의 살아 숨 쉬는 현장에 우리의 중심을 두어야 할 것이다.

성경대로...! 철저하게 말씀을 따르신 그의 삶에서 우리의 교만과 말씀으로 타인의 연약함을 지배하려는 악한 본성을 보게 된다. 그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조차도 ‘우리의 죄를 위한 죽음’이고 ‘우리의 죄를 위한 부활’ 인 것임을 성경이 증언하고 있는 것인데 우리는 우리의 의지와 감정이 매뉴얼이 되어 이미 명시된 기록을 간과한 부분을 반성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믿을 때도 성경을 기준으로 해야 하고 배울 때도 성경을 잘 살펴보아야 할 부분이다. 예수께서 친히 성경을 열어 가르쳐 주셨던 엠마오로 내려가는 길에 만난 두 제자들의 무지함이 어쩌면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

우리 죄를 대신하여 죽으신 유일한 사건, 예수께서 죽으심이 곧 그리스도의 죽음이었고 그의 부활하심이 곧 우리를 위한 부활이며 그가 우리의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다시 한 번 새기는 바이다. 이것이 성경에 의한 것이었으며, 그 성경의 무오성과 절대 권위를 믿음으로 받은 우리는 진지하고 정직하게 그의 죽으심과 부활하심 앞에 성경대로 반응하는 삶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성경을 배우면 배울수록 더욱 더 그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이 선명하게 드러나며, 성경대로 실천하는 현장이 곧 그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의 성취를 드러내는 현장이 될 것을 기대하는 바이다.

출처 : 온누리신문  http://news.onnuri.org/board/board_view.php?BoardID=4&BoardSeqNo=16467

또한 교회를 처음 방문하거나 아직 무엇을 믿어야 할지 잘 모르겠는 이들이 있다면, 성경을 통해 당신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주와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믿음이 일어나길 진심으로 축복하는 바이다. 그리고 그 성경이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는 기적 같은 일이 흔하게 너무 나도 당연하게 우리 손에 들려져 있음에 감사하길 바란다.

[예수께서 죽으신 ‘십자가’의 의미, ‘장사 지낸 바 되었다가’의 표현이 주는 완벽한 죽음에서의 부활, ‘사흘 만에’라는 당시의 절기(유교/무교/초실)적 특성, ‘죽으시고’로 표현된 예수께서 죽으심에 대한 고찰, ‘살아나사’로 표현된 다시 사심에 대한 초현실적 개념 등을 세밀하게 살펴보는 것은 추후 논의토록 한다.

 

진행 시나리오

 

[활동] 성경대로 오사 부르기

[준비물] 악보

[진행 내용]

자, 드디어 완전 재밌는 활동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다 같이 오늘의 말씀, 한 목소리로 외쳐보겠습니다.

시작~! 예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매뉴얼이 있습니다. 무엇일까요?

네, 좋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성경책 가지고 온 사람?

오늘은 노래를 배워보도록 하겠습니다.

너무나도 쉽고 간단해서 한 번 부르면 나도 모르게 따라 부르게 되는 노래입니다. 반주 주세요!

(선생님들이 먼저 다 같이 부릅니다.)

자, 그럼 한 목소리로 크게 불러보겠습니다.

(반 별로 게임을 해도 좋고, 학년별 대항을 해도 좋으니 진행자의 역량에 따라 ‘성경대로’라는 노래를 익힐 수 있도록 쉴 틈 없이 계속 연속해서 5번 정도 부르도록 한다.)

https://youtu.be/eL5lNmkVBH4

https://youtu.be/ZHq_o_bM0ac

분반나눔

 

다그치듯 하지 않습니다. 설교를 잘 들었는지 그렇지 않은지는 점검하고 짚어주는 시간이며 활동한 내용을 통해 말씀에 대한 이해와 반응을 확인하는 시간입니다. 아이들은 배운 것을 작게라도 활동에 참여한 후에 나눔을 한 것이므로, 어떤 형태로든 자기의 감정과 느낌을 이야기 하게 됩니다. 짧게 한 마디 하더라도 최대한 칭찬과 격려로 나눔을 이끌어 가시기 바랍니다. 나눔 진행 순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현장의 상황에 따라 다르게 진행 가능하며 유동적으로 접목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점검 및 활동내용 소감 나눔] → [말씀을 바탕으로 한 일주일의 각오] → [암송구절 제창] → [축복 기도 후 해산]

1. 자, 다 같이 오늘의 본문과 제목이 어떻게 되지?

2.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신 매뉴얼이 무엇이라고 하셨지?

3. 예수님이 누구 죄를 위하여 죽으셨다고?

4. 예수님이 얼마 만에 살아나셨다고?

5. 그러면 예수님이 부활하셨으니까 지금도 살아계실까?(동행하심에 대한 의미를 설명)

6. 다 같이 고린도전서 15장 3~4절을 읽고 마무리 하자.

 

3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4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1. 내가 전하였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것은 그들보다 먼저 받았기 때문입니다. 먼저 복음을 받은 사람은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에게 전달할 사명이 있습니다.

 

2. 복음은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입니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전한 것은 그리스도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사역을 전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입니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우리의 죄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사흘 만에 일어났습니다. 이 모든 것이 성경대로 이루어졌습니다. 바울이 전한 복음은 그리스도이고, 그리스도는 성경대로 모든 사역을 감당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복음은 어느 날 갑자기 우리에게 온 것이 아닙니다. 복음은 약속되었고, 그 약속의 성취하신 분이 그리스도입니다. 바로 이 사실이 복음입니다.

 

 

안녕하세요

오감성경사역연구원 미디어팀장입니다.

 

교회학교 공과나 소그룹 모임에서 복음에 대해서 체계적으로

알아갈 수 있도록 오감성경사역연구원에서는 복나무39공과를

매주 업로드 하고 있는데요.

어제는 제 2편이 올라갔습니다.

https://youtu.be/BxrQkpiihq4

 

이와함께 업로드하고 있는 공과내용이 1년동안 모세오경을 체계적으로 배워보는

내용을 순서대로 업로드 하고 있는데요.

벌써 11주차 내용이네요.

 

본문: 창 B4: 타락 I(사탄의 정체)

제목: 창 3:1~24

본문 1

[사람의 불순종과

하나님의 심판 선언]

1

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2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3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4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7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8

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9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10

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본문2

11

이르시되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알렸느냐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

12

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13

여호와 하나님이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여자가

이르되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14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16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17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18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19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20

아담이

그의 아내의 이름을

1)하와라

불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머니가

됨이더라

1) 생명

 

 

 

본문3  

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아담과 하와를 쫓아내심]

22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 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24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 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 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9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1. 골격보기

첫째주절: 여호와 하나님이 부르시며 이르시되

둘째주절: 네가 있느냐

 

2. 살붙이기

① 여호와 하나님이 누구를 부르십니까?

→ 아담을

② 하나님이 누구에게 이르십니까?

→ 그에게

③ 무엇을 묻습니까?

→ 어디 있느냐

 

3. 전체암송

 

 

 

 

 

 

 

 

23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 동산에서

그를

내보내어

그의 근원이 된 땅을

갈게 하시니라

 

1. 하나님은 아담을 부르시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교제가 가능하신 인격을 갖고 계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아시고, 느끼시고, 생각하시고, 행동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과 인격적인 교제를 할 수 있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여러 모양으로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십니다.

2. 네가 어디 있느냐.

범죄 한 아담은 하나님을 피해 숨었습니다. 죄는 하나님께 가까이 가지 못하게 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합니다. 그러므로 죄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막는 칸막이입니다.

 

해설 및 연구 & 묵상_오감성경사역연구원 김성찬 목사

 

타락! 끔찍한 사건이다.

그래서는 안 되는 존재가 그러 할 필요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된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우리는 흔히 ‘죄’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 먹음’으로 세상에 들어왔다는 표현을 사용한다. 그런데 진짜 그럴까? 먹고 난 행위의 결과일까?

아담과 하와에게 주어진,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마라,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는 명령과 그 명령안에서 행하는 삶은 생명의 관계로 일치하는 존재였다. 즉, ‘죄’라는 것은, 따 먹은 행위 이전에는 그 어떤 영향도 끼칠 수 없는 그런 관계였다. 그래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 먹음으로 ‘선악’을 알게 되고, 보지 못하던 것을 보게 되었다. 자, 그렇다고 하여 선악을 따 먹어서 죄가 세상에 들어왔다고 결론 내릴 수 있는가? 그렇다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아담이 그 열매를 따 먹는 순간 선과 악이 존재하게 되었다는 뜻인가?

결론은 그렇지 않다.

우리가 이미 살펴보았듯이, ‘선악’은 이미 존재했다. 에덴이 창설되지 이전에 이미 ‘악’이 존재했고,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기로 한 구원의 계획도 에덴이 이루어지기 전에 시작되고 있었다. 그 계획에 대하여 바울이 우회적으로 표현하기를,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엡 1:4)’라 하고 있다. 예수께서도 그의 기도 중에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요 17:24)’ 라고 하신 것으로 볼 때, 우리의 구원이 이미 창세가 이루어지기 전에 완성 되었다는 것을 볼 수 있듯이, ‘죄’의 영향 속에 전혀 상관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그런 존재가 우리의 가진 어떤 원형을 ‘훼손’하고 ‘오염’시킨 것이라 할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그 인과를 차근차근 사탄의 정체를 밝히면서 살펴보도록 하자!

먼저, 뱀이 아담에게 와서 꾀고 있다.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라면서 말이다. 여기서 알 수 있는 바는, 사탄도 말씀을 듣는다는 것이다. 사탄도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인지 알고 있고 수신자가 누구인지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 우리가 말씀을 들을 때 사탄도 같이 듣는다.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이 나에게 말씀 그대로의 영향이 있고자 한다면 내가 듣는 말씀을 적도 듣고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실제로 이에 대하여 누가복음 8장 12~15절은 너무나도 정확하게 짚어주고 있다.

12길 가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니 이에 마귀가 가서 그들이 믿어 구원을 얻지 못하게 하려고 말씀을 그 마음에서 빼앗는 것이요13바위 위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을 때에 기쁨으로 받으나 뿌리가 없어 잠깐 믿다가 시련을 당할 때에 배반하는 자요14가시떨기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이나 지내는 중 이생의 염려와 재물과 향락에 기운이 막혀 온전히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15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

사탄도 말씀을 듣는다는 것과 함께 말씀을 임의가공변개를 할 수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이 하신 말씀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이었을 뿐, 여기에 “모든” 이라는 수식어 따위는 없다. 이것이 말씀인 듯이 하면서도 말씀이 아닌 말씀 같은 이야기를 뱀은 당연히 하나님의 말씀인양 이야기 하고 있다. 누구나 넘어 갈 수 있고 속을 수 있는 부분이다. “먹지 말라”는 동사와 동사의 주체는 정확하게 일치하기 때문이다.

여자는 이에 대하여 정확하게 ‘아니, 모든 나무가 아니라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고 하셨다’ 라고 이야기 했어야 했다. 그런데 우리가 알다시피 여자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고 하셨다고 하며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지칭하지 않은 채,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로 특정사물을 집합명사화 하고 있다. 어떤 나무인지도 정확하게 언급하지 않았고, 하지 말라는 동사의 구분도 모호해졌고, 단서조항도 희석된 말씀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현재의 여자의 상황을 지배하고 있다. 주신 그대로의 말씀이 아닌, 변개되고 희석된 말씀이다. 불안하다.

역시 불안한 그대로더라니...

뱀은 말한다. 죽지 않는다고! 이런...! 이럴 수가! 말도 안된다. 하나님은 죽는 다고 하시는데 뱀은 죽지 않는다고 한다. 자, 아담과 하와가 이 이야기를 듣는 순간 충격에 빠졌을 것이다. 하나님이 “죽는다”고 하셨기에 “죽는다”라고 알고 믿고 있던 그들에게 “죽지 않는다!”라고 한 뱀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충격에 빠졌을 것이다. 분명 둘 중 하나는 거짓말이기 때문에...! 아무도 죽은 상황에 이르지 않은 상태에서 하나님은 죽는다 하시고 뱀은 죽지 않는다고 하는데 그 상황에서 어떠하겠는가!

심지어 뱀이 덧붙이기까지 한다. ‘눈이 밝아져 하나님이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라’고...! 뭐? 우리가 하나님 같이 된다고? 그리고 하나님만 아시는 선악을 우리도 알게 된다고? 게다가 죽지도 않아?(죽는 것이 뭔지 알든 모르든)

고민이다. 먹으면 죽고, 먹어도 죽지 않고! 어느 편이 맞단 말인가! 그러나 그 때 따라 유독 봄직도 하고 먹음직하기도 하다. 그 이전엔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하신 나무의 열매였기에 무심코 지나쳤을 그 열매가 이제는 ‘하나님과 같이 될 것이다!’는 이야기를 듣고 난 후 보니 다르게 보인다.

 

여기서 사탄에 대해 알 수 있는 바는, 사탄은 끝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즉, 유혹의 끝에 어떻게 되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으나 그 다음의 수를 보여주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그것이 놀랍게도 ‘사실’이라는 점이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 이므로 당연히 먹으면 ‘선악을 알게 됨’의 현상이 일어나는 것 아니겠는가! 그리고 ‘선악’은 하나님만 아시고 아담과 하와는 그와는 상관없이 선의 편에서 선의 하나님만을 교제하고 있었기에 ‘선악’의 영향이 미치지 않는 것도 당연한 것 아닌가! 이렇게 사탄은 너무도 명백하고 사실관계분명한 내용을 가지고 접근한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사탄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더욱이 사탄은 정확한 사실을 가지고 접근했으며 경험하지 못한 그 이후의 경험을 제시해주고 있다. 사탄은 선악을 알게 되는 상황이 무엇인지 알고 있으며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는 것이 어떤 것인지 “끝”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반대편의 결과는 이야기 해주지 않는다.

사탄은, 아담이 누리는 창조자의 권능을 훼손하고 오염시킴으로 그 자리에 자신이 서는 것이 목적이었다. 아담이 가지고 있던 세상 만물의 주관하는 능력을 아담에게서 가져오려고 하였다. 누가복음 4장에 나온 예수께서 광야에서 사탄에게 받은 시험을 볼 때 이런 표현이 등장한다.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 내가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눅 4:6)’ 누구에게 넘겨받았겠는가! 아담에게서 받은 것이다. 즉, 아담이 천하를 누리며 모든 권위와 영광을 누리며 살아가던, 갈 수 있었던 존재였으나 사탄의 이야기에 정확하게 반응하여 하와로부터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건네어 받았을 때, 그 자리에서 ‘안 돼!’라고 저지했어야 하는 사람이었거늘...!

 

실제로 일어난 결과는 정확하게 사탄이 이야기 한 것과 맞는다. 우리도 알다시피, 눈이 밝아졌으며 발가벗겨져 있는 것을 알고 부끄러움을 느낀 것으로 선악을 알게 된 것도 맞다. 결정적으로 ‘죽지 않는다!’는 사탄의 이야기가 한 치도 틀리지 않았다. 죽는 다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하였을 지라도 일어난 변화로 보았을 때, 죽는다는 것과는 관계없는 것쯤은 알았었을 것이므로 그들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죽는 것이 아닌 사탄의 이야기대로 죽지 않은 것이 맞았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아니, 어쩌면 죽는 것 보다 더 고통스러운 순간을 경험했을 수도 있겠다는 사견을 붙여본다).

사탄은, 우리가 누리는 창조자의 영광을 훼손하는 방법을 너무나도 정확하게 알고 있다. 그리고 그 끝을 제시하지 않은 채, 일시적인 결과가 어떠한지 사실을 바탕으로 제안한다. 이것이 사탄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런 사탄의 궤계를 어떻게 이겨낼 수 있을까?

 

방법은 하나이다. 말씀을 바르고 정확하게 듣고 지키는 것이다. 이것뿐이다. 일 점, 일 획 하나도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 우리에게 전달되는 말씀은 없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며 모두가 하나님의 마음을 전하기에 충분하다. 그러하므로 우리는 사탄이 변개된, 변형된, 변질된 말씀으로 우리를 훼손하고 오염시키려 할 때, 우리를 살릴 수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하게 바르게 익히는 방법 밖에 없다. 그리고 그 말씀을 오고 오는 세대가 그 말씀으로 그 때의 상황을 지배하고 이길 수 있도록 정직하게 전수해주어야 한다. 생각해보라! 아담에게 처음 주어진,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는 말씀을 정확하고 바르게 전달하였다면,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는 반응이 나오겠는가!

지금, 우리 교회에서는 나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하고 바르게 전하고 있는가? 그리고 내가 아는 말씀은 정확하게 말씀하신 그대로의 말씀인가?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점검해 보아야 할 것이다. 살펴보자, 그래야 살 수 있을 테니까...!

 

진행 시나리오

 

[활동] 고양이/쥐 게임

[준비물] 없음

남자 교사(혹은 건장한 교사) 2명을 제외하고 동그랗게 섭니다. 가장 약한 여자 아이 2명을 안으로 세웁니다. 미리 선택된 남자 교사 두 분은 밖에 섭니다. 동그랗게 선 후, 옆에 있는 사람의 옆 사람 손을 잡습니다. 그러면 거의 빈 틈 없이 동그랗게 될 것입니다. 그런 후에, 교사는 고양이 역할을 하고 여자아이 2명은 쥐 역할을 합니다. 동그란 원은 울타리가 되어 쥐를 보호 합니다. 고양이가 안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고 혹, 안에 고양이가 들어오면 안에 있는 쥐를 재빨리 밖으로 내보내어 안에 있는 쥐를 보호하는 놀이입니다. 사탄의 궤계로부터 영혼을 지키는 울타리가 되는 교회가 되고 하는 취지이므로 제한 시간 1분을 두어 고양이가 쥐를 다 못 잡으면 전체 간식을 내기로 하면 상당한 결속력이 생길 것입니다.

교사가 부족할 시 남자학생으로 대체하여도 좋습니다.

주의 사항: 고양이가 울타리를 뛰어 넘거나 과도한 힘으로 참여시 울타리 역할을 한 아이들이 다칠 수 있으므로 고양이 역할을 하는 이들에게 사전에 안전교육을 하고 진행합니다.

 

분반나눔

분반나눔시 주의사항

다그치듯 하지 않습니다. 설교를 잘 들었는지 그렇지 않은지는 점검하고 짚어주는 시간이며 활동한 내용을 통해 말씀에 대한 이해와 반응을 확인하는 시간입니다. 아이들은 배운 것을 작게라도 활동에 참여한 후에 나눔을 한 것이므로, 어떤 형태로든 자기의 감정과 느낌을 이야기 하게 됩니다. 짧게 한 마디 하더라도 최대한 칭찬과 격려로 나눔을 이끌어 가시기 바랍니다. 나눔 진행 순서는 다음과 같습니다(현장의 상황에 따라 다르게 진행가능하며 유동적으로 접목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점검 및 활동내용 소감 나눔] → [말씀을 바탕으로 한 일주일의 각오] → [암송구절 제창] → [축복 기도 후 해산]

1. 다같이 오늘의 본문과 제목이 어떻게 되지?

2. 오늘 말씀을 통해서 알 수 있는 사탄은 어떤 존재이지?‘말씀을 듣는다!’, ‘말씀을 변형/변개/변질 시킬 수 있다!’, ‘끝을 알고 있다!’‘무엇에 넘어지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다!’

3.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은 결과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졌습니까? 사탄의 이야기대로 이루어졌습니까?

4. 우리가 사탄의 이야기에 정확하게 넘어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하고 바르게 듣고 지키는 것!’

5. 다같이 창세기 3장 9절을 읽어볼까?

9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안녕하세요

오감성경사역연구원 미디어팀장입니다.

 

 

오감성경에서는 분반 나눔 지도안 이외에도

복나무39공과를 제작하여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복나무39공과는 39주간 복음을 주제로 공과공부를 진행할 수 있도록 도와드릴 예정입니다.

https://limsk98.tistory.com/234

 

복나무 39공과 1편이 업로드되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오감성경사역연구원 미디어팀장입니다. 그간 J-Vitue Media와 오감성경의 콜라보 형식으로 관련 콘텐츠를 블로그에 업로드해드렸는데요. 지난 오감성경 리트릿을 통해 정식으로 미디어팀장으로 임명되..

limsk98.tistory.com

 

본문: 창 B4: 창조 Ⅲ(창조 VS 진화)

제목: “창 1:24~25”

본문 암송  

24

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가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24

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가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1. 골격 보기

첫째 주절: 하나님이 이르시되

둘째 주절: 땅은 내되

셋째 주절: 내라 하시니

넷째 주절: 되니라

2. 살붙이기

① 땅은 어떻게 냅니까? → 그 종류대로

② 땅은 무엇을 그 종류대로 냅니까? → 생물을

③ 어떻게 내라고 명령하십니까? → 종류대로

④ 무엇을 종류대로 내라고 하십니까? → 가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⑤ 명령의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 그대로

3. 전체 암송

25

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가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1. 하나님은 말씀으로 창조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지구와 인간의 기원에 대해서 궁금해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지구와 인간을 비롯한 모든 피조물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되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셨고, 그 명령대로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창조의 능력 그 자체입니다.

 

2. 하나님은 종류대로 창조하셨습니다.

진화론자들은 ‘아메바’라는 단세포가 진화하여 여러 종이 발생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생물과 동물)을 종류대로 창조하셨다고 말합니다.

지금 있는 생물과 동물은 처음부터 그 모습 그대로 있었던 것입니다.

결코 진화의 결과로 된 것이 아닙니다.

https://youtu.be/aO1S6wry97Q

해설 및 연구 & 묵상

천지창조!

언제나 민감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그게 사실이냐고 묻기도 전에 성경은 언제나 옳은 것이고 그 자체가 메시지이기 때문에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바를 한 번도 회의적으로 바라본 적도 없다. 특히 창조에 대해서는 더더욱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성경에서의 가르침은 “진리”이고 “사실”인 것에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으로 수용하였다. 그 결과, 과학의 영역은 전혀 다른 차원이기 때문에 서로의 연관성에 대해서는 언제나 과학을 성경의 보조 수단으로 치부하였다. 그러다 보니 진지한 물음은 언제가 성경의 권위와 정통성을 훼손하는 불손한 시각이 되었고 믿음 없는 사람의 그것이 되어 버리기도 하였다.

그러나 우리 아이들이 배우는 과학에 대한 지식과 수용성은 성경과 별개이다. 아이들은 별의 생성과 몰락에 대한 이론을 꿰고 있으며, 밤마다 펼쳐지는 별의 향연에 내러티브를 입혀 산술적인 도식을 해낼 수도 있다. 그리고 블랙홀과 세포 하나에 이르기까지 웬만한 주일학교 교사가 성경에 대해 두서없이 이야기하는 지식보다 더 정확하고 과학적 근거로 이야기할 수 있는 아이들이다. 우리는 이런 아이들에게 ‘너희들이 배우는 과학은 다 틀린 것이야’라고 감정적으로 성경이 옳은 것임을 강요하였다. 다른 분들은 몰라도 필자는 그러하였다.

[전혀 다른 차원의 접근]

그렇다면 과학을 잘 가르치는 것으로 더 창조주를 드러낼 수는 없을까? 이것은 과학자만 해야 할 고민은 아니라고 본다.

‘창조과학’은 공룡과 사람이 함께 살았고 지구 나이는 1만 년이라고 가르친다. 그런데 아이들은 학교에서 공룡은 수 천만 년 전에 멸종했으며 지구는 아주 오래되었음을 배운다. 그래서 갈등이 일어난다. 자, 둘 다 틀렸든지 둘 중에 하나가 틀렸든지....! 여러분의 아이들은 어느 쪽이 틀렸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는가? 아마 교회의 이야기가 틀렸는데, 교회에서는 그것이 맞다고 대답할 것이다. 조금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그것은 교회니까, 교회에서만 통하는 이야기라고 선을 긋고 받아들이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공룡을 가지고 노는 아이들에게 어떻게 이야기할 것인가? 당신은 성경 교사로서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우리의 아이들은 이미 답을 정했다. 교회는 OO다고...!

만약, 교회가 아닌 교과서가 틀렸다고 한다면 어떨까? 아니,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있다면, 시험 볼 때마다 양심의 괴로움을 경험하기로 작정한 ‘믿음’일 것이다. 대신, 이공계는 그의 인생에 선택지로 들어가 있지 않을지도 모를 일이다. 평생 괴로워야 할 테니까..!

자, 우리의 아이들은 어떤 편에 서 있을까? 그리고 우리는 아이들에게 어떻게 가르치고 있었는가? 과학을 배울 때는 과학을 배워야 하고 성경을 배울 때는 성경을 배워야 한다. 축구하겠다는 아이에게 배구를 가리킬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성경을 중심으로 신앙이 잘 자랄 수 있도록 교회는 신앙을 책임져야 한다. 즉, 잘 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종교와 과학은 다른 영역으로 선을 긋고 있었다. 종교와 과학, 과학과 종교는 차원이 다른 것이 아니다. 같은 영역이라고 본다. 개신교는 신앙고백을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신관으로 수용하기 때문에 이 세상의 역사는 곧, 창조주의 개입 역사이다. 과학이 현상을 객관적으로 정리/나열하는 영역이라면 그 현상이 이루어지는 현실 세계를 창조주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므로 우리 편에서 본다면 과학과 종교는 불가분의 관계인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따로 있다. 바로, 극단적인 견해! 이것이 문제이다. 이에 대하여 서울대 우종학 교수는, “첫째는, 과학의 범주를 넘어선 철학적 견해를 마치 과학처럼 선전하는 극단적 과학주의다. 여기에는 과학이 무신론의 증거라는 주장이나, 과학으로 신의 창조가 증명된다는 식의 주장이 다 포함된다. 결국 과학 아니면 종교를 양자택일해야 한다고 보는 견해다. 하지만 과학이 모든 철학적 신학적 질문까지 답을 할 수는 없다. 과학은 자연을 이해하는 유용한 도구로서 딱 그만큼의 대우를 해주어야 한다. 두 번째는 극단적 성경 해석을 바탕으로 과학을 인정하지 않는 창조과학 부류의 근본주의다. 하지만 성경 창조 기사의 초점은 창조주에 있으며, 창조의 순서나 기간과 같은 창조의 ‘방법’에 대해서 알리려는 의도를 담지 않았다는 것이 성서신학자들의 일관된 견해다. 즉, 성경 본문으로 과학을 판단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라고 하고 있다. 즉, 근본주의자들이 이야기하는 과학적 배격 주의로 비롯된 신앙의 증명이 아니라는 점이다.

 

아...! 그러면 주일학교에서 어떻게 교육해야 한다는 것일까?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이 세상이 어떻게 창조되었는가?’라는 “창조론”만을 붙들다가 ‘누가 창조하였는가?’에 대한 의식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즉, “창조주”의 “창조주되심”을 제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시간이 흐를수록 과학은 발전할 것이고, 그렇게 발전한 과학은 창조주 하나님의 일하심과 창조 역사도 더불어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 즉, 우리 같은 성경 교사들이 해야 할 것은, 아이들이 “창조의 과정과 방법”은 과학을 통해 알 수 있도록 하고, 우리는 “창조주”가 어떤 분이신지 성경을 통해 알 수 있도록 해주면 된다 할 것이다. 섣불리 ‘과학’으로 ‘창조의 과정과 방법’을 설명하려 하지 말았으면 한다.

그래서 현장에서 아이들이 실제로 배우는 교과서에 나오는 내용과 성경의 내용과 무엇이 일치하고 무엇이 다른지 살펴보는 시간을 가질 것이다. 물론 각 교회마다 현장이 다르고 적용 연령이 다르겠으나 교과서에 나오는 기초적인 과학적 사실들을 바탕으로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하는 부분들이 무엇인지 용어를 정리하는 식으로 개념을 잡아나가면 크게 어렵지 않게 교과서를 비판적이고 성경적으로 볼 수 있게 될 것이라 확신한다.

그래서 여기서는 창조과학에서 이야기하는 ‘과학’과 ‘성경’의 이야기를 알 수 있는 것과 창조과학과는 전혀 상관없는 크리스천 과학자의 이야기를 둘 다 제시하여 성경을 근거로 한 믿음이 과학의 바른 지식의 수용으로 더욱더 확고해질 수 있다는 점을 제안하고자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아이들이 배우는 과학은 우리가 아는 과학과 다르기 때문이다.

 

진화와 진화주의, [2015년 5월 9일, 우종학 교수(서울대 물리천문학부)의 글]
진화라는 단어는 다양한 의미를 갖는다. 과학자들은 주로 자연현상과 관련해서 진화라는 말을 사용하는 반면, 진화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무신론과 연결해서 철학적 의미로 진화라는 말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진화를 정의하는 일부터 논쟁이 시작되기도 한다. 오해와 편견을 풀려면 기독교인들은 진화와 진화 이론, 그리고 진화주의를 구별해야 한다.
다양한 과학 분야에서 사용되는 진화라는 개념은 시간에 따른 변화를 의미한다. 물론 단순한 변화보다는 과학적으로 의미 있는 변화를 뜻한다. 가령, 균일했던 초기 우주가 역동적인 현재 우주로 바뀌는 과정을 우주 진화라고 하고, 빛을 내기 시작한 별이 크기와 온도가 변하면서 결국 백색왜성이나 초신성으로 일생을 마감하는 과정을 별의 진화라고 한다. 세대에 걸쳐 유전자 풀이 증가하고 종의 분화가 일어나는 과정은 생물진화라고 부른다. 시간에 따른 변화를 뜻하는 진화는 자연현상이며 다양한 데이터를 통해 직간접적으로 관측되는 과학의 탐구 대상이다.
진화 이론은 진화가 어떻게 발생하는지 설명하는 하나의 설명 체계를 의미한다. 진화의 원인이나 인과관계를 찾아 설명하는 과학 이론이라는 말이다. 별의 진화 이론은 태양 같은 별이 100억 년의 시간 후에 어떻게 크기가 수백 배로 커져서 적색거성이 되는지 설명해 준다. 생물진화 이론은 유전자 풀이 어떻게 증가하고 생물종이 어떻게 분화되는지를 설명한다.
진화라는 자연현상을 어떤 관점에서 볼 것인가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진화주의라는 말은 진화에 대한 하나의 철학적 관점이다. 흔히 무신론적 진화론이라고 불리는 진화주의는 진화 현상을 무신론적인 입장에서 해석한다. 가령, 진화가 진화 이론으로 잘 설명되니까 더 이상 신은 필요 없다는 영국의 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의 주장이 대표적이다.
반면 유신론적 입장의 해석도 가능하다. 진화는 하나님이 다양한 생물의 종을 창조하는 과정을 보여주며, 진화 이론은 그 창조의 방법을 밝힌 것이라고 보는 미국의 생물학자 프랜시스 콜린스의 견해가 대표적이다. 이런 견해는 유신론의 관점에서 진화를 이해한다는 의미에서 유신론적 진화론이라 불리기도 한다.
기독교인들은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까? 우선, 진화라는 자연현상을 거부하는 입장은 설득력이 없다. 하나님의 창조 과정은 자연이라는 책에 낱낱이 기록되어 있다. 100억 년 이상의 역사를 통해 드러나는 우주 진화나, 46억 년의 지구 역사 동안 화석과 유전자의 기록에 담긴 생물진화는 다름 아닌 창조주의 창조 과정을 보여준다. 일반 계시로 주어진 자연이라는 책을 거부한다면 창조주의 창조 역사를 바르게 이해할 수 없다.
진화 이론은 어떨까? 반진화주의자들은 흔히 진화론은 과학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과연 그럴까? 사실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 중에 진화생물학을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 듯하다. 우주 진화를 부정하는 창조과학자들의 주장을 들어봐도 천문학에 대한 이해가 현저히 부족하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다.
진화 이론이 과연 진화 현상을 잘 설명하는지, 탄탄한 과학적 증거들에 기초하는지, 얼마나 엄밀한 설명 체계인지를 판단하는 일은 과학자의 몫이다. 생물학, 지질학, 천문학 등 전문성을 가진 과학자들이 판단해야 한다. 해당 분야의 전문 과학자도 아닌 창조과학 지지자들의 일방적 주장만 듣는 일은 심각한 정보의 불균형을 초래한다. 설교시간이나 주일학교에서 진화 이론은 과학이 아니라고 가르친다면 기독교인들을 포함한 전 세계의 해당 분야 과학자들에게 매우 무례한 일이 될 수밖에 없다.
진화주의는 어떨까? 물론 기독교인의 입장에서 진화주의는 수용할 수 없다. 진화주의는 과학이 아니라 과학에 대한 철학적 해석이며 설득력도 떨어진다. 태양계에서 관측되는 행성들의 운동을 중력이론이라는 과학으로 잘 설명할 수 있다고 해서 무신론이 입증되는 것은 아니다. 진화도 마찬가지다. 진화와 진화 이론을 수용한다고 해서 무신론자가 되지는 않는다.
진화에 대한 편견을 버려야 한다. 진화주의는 창조주를 부정하지만 진화는 오히려 창조의 놀라움을 알려준다. 과학을 통해 진화에 담긴 창조주의 지혜를 밝혀낸다면 그만큼 창조주의 위대함이 드러난다.
이상 우종학 교수의 글

 

아울러 우리가 오해하고 있는 “문자주의” 해석에 입각한 창세기 1~2장의 견해가 얼마나 오인된 부분인기 한 교부의 글을 통해서도 교정 받을 수 있다.

"6이라는 숫자의 완전함 때문에, 같은 날 여섯 번 반복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성서는 창조가 엿새 동안에 이루어진 것처럼 이야기한다. 그렇다고 하느님이 동시에 모든 것을 창조하지 못하여 적절한 운동에 따라서 시간이 흘러가는 것처럼 하느님께 시간의 간격이 필요했다는 말은 아니다. 그보다는 여섯이라는 완전수를 통해 창조 사업의 완전함을 상징한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신국론 11권 30에서)

"하나님이 창조하자 세계가 시간 속에 존재하기 시작했다" (신국론 11권 4)

그래서 그는, 창세기 1장 1~2절에 대한 풍성한 해석과 견해, 독자의 상상력에 의한 하나님 되심을 드러내는 행위에 있어서 아래와 같이 결론 내리고 있다.

"참으로 심원한 내용을 담은 대목이므로 각자가 마음 내키면 받아들이도록 할 것이며, 읽는 사람들의 지적 훈련에 따라서, 신앙의 규범에 상충하지 않는 범위에서 많은 의견을 내놓을 수 있겠다" (신국론 11권 32)

이야기할 수 있는 많은 이야기들은 여기서 접고자 한다.

이제 여러분의 자녀가 배우는 과학 교과서를 펴고, 하나님의 창조하신 창조의 흔적을 발견해보도록 하자!

 

 

진행시나리오

[활동] 각자 가지고 온 과학 교과서에서 창세기 1장의 흔적 찾기!

[준비물] 과학 교과서, PPT

[제안] 아이들이 실제로 보는 과학 교과서가 무엇인지 학교별로 파악하여 사전에 살펴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분반나눔시 유의사항

다그치듯 하지 않습니다. 설교를 잘 들었는지 그렇지 않은지는 점검하고 짚어주는 시간이며 활동한 내용을 통해 말씀에 대한 이해와 반응을 확인하는 시간입니다. 아이들은 배운 것을 작게라도 활동에 참여한 후에 나눔을 한 것이므로, 어떤 형태로든 자기의 감정과 느낌을 이야기하게 됩니다. 짧게 한 마디 하더라도 최대한 칭찬과 격려로 나눔을 이끌어 가시기 바랍니다. 나눔 진행 순서는 다음과 같습니다(현장의 상황에 따라 다르게 진행 가능하며 유동적으로 접목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점검 및 활동내용 소감 나눔] → [말씀을 바탕으로 한 일주일의 각오] → [암송구절 제창] → [축복 기도 후 해산]

1. 다 같이 오늘의 본문과 제목이 어떻게 되지?

2. 하나님이 이 세상을 만드셨는데,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① 인지능력 ② 양심 ③ 증거 ④ 과학 ⑤ 성경

3. 과학 교과서에서 창조의 흔적을 찾아보는 것이 어려웠니? 쉬웠니?

4. 과학 교과서로 하나님이 하신 것을 알아보니까 어때?

5. 우리 잊지 말자! 우리의 창조주가 누구인지를...! 알았지?

    앞으로 성경으로 널 만드신 분이 어떤 분이신지 계속 알아가도록 하자! (서로의 다짐을 받아냅니다!)

6. 다 같이 창세기 1장 24절을 읽어볼까?

24

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가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안녕하세요

J-Virtue Media 상구 & 오감성경사역연구원 입니다.

코로나19로 각 예배도 축소되고 미디어로 대체되고 있는 암울한 상황입니다.

심지어 각 부서 예배도 축소 통합되는 분위기인데요.

예배가 줄어서 뭐 할지 고민하기보다는 조금 더 기도와 간구가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오감성경 유튜브 채널을 통해서 복음캠프 자료 나눔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는데요.

영상 올리고 거의 하루 만에 구독자가 100명을 넘어섰습니다.

자료가 필요하시다면 바로 영상 링크로 가셔서

구독하시고 댓글 달아주시면 자료를 보내주신다고 합니다.

https://youtu.be/NGlNLlIq0GE

본문: 창 1:26~31

제목: “창 B4: 창조 Ⅱ(창조)”

암송 본문

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26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29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 거리가 되리라

 

30

땅의 모든 짐승과

하늘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먹을 거리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31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https://youtu.be/aO1S6wry97Q

해설 및 연구 & 묵상
오감성경사역연구원 김성찬 목사

천지창조!

이 세상이 어떻게 만들어졌는가에 대한 진지한 물음과 그 답을 찾는 구도가 어쩌면 인생의 답을 찾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만약,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세계 라면, 누가 창조했으며 왜 만들었는가! 또한 인간의 발생이 자연 발생인가 그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것인가! 만약,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면, 그는 왜 인간을 만드셨는가! 답을 ‘알고 있다’는 우리는 이런 질문조차 하지 않는 것이 문제이겠지만, 아무리 탄탄한 삶아가는 삶일지라도 이런 답을 구하지 못한 인생은, 어딘가 모르게 답답하고 해결되지 못한 물음 하나를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이것은, 어떤 사람이든 ‘엄마’를 찾는 본성과도 같은 것이다.

놀랍게도 성경은 우리가 가질 수 있는 모든 물음에 대답을 해주고 있다. 천지만물의 기원, 온 현실 세계의 기원을 이야기해주고 있다. 우리는 이 기록을 성경의 첫 책이자 첫 장에 있는 내용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익숙함에 있겠으나, 종교 경전이라는 믿음의 테두리를 벗어나 인문학이라는 큰 틀 속에서 본다면 자칫, 우리만의 이야기로 그칠 위험성을 안고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창조는 과학의 영역도 아니요, 증명의 대상도 아닌, 믿음의 대상이다. 창조의 행위에 대한 증명을 통해 신의 존재를 규명하는 역설적 구도가 팽배한 이 세대에서 “믿음”이라는 도구로 의심 한 번 없이 수용 가능한 대상으로 자리 잡고 있다. 즉, 창조는 해석이나 설명이 도구가 아니라 “믿음”의 영역이라는 것이다. 그 믿음의 실체를, 대상을 논리적으로 규명하고 과학적으로 입증하고자 하는 노력을 ‘창조과학’이라는 명목 아래 마치 의례 그래야 하는 것인 양 받아들여졌다는 점이다. ‘창조과학’이라는 이상한 논리로 성경의 기록을 과학적으로 증명 가능한 영역으로 격하시킨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창조과학’ 따위로 증명 가능한 기록이 아니다.

즉, 믿음의 영역을 과학적으로 입증되었다 하여 믿을 만한, 믿어도 되는 결론으로 안정감 가질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이것을 과학주의 신앙이라 하니, 우리의 신앙이, 특히 창조의 주제를 가지고 설명되어야 할 여러 과학적 논증을 들이대며 믿음의 근거를 제시받을 이유와 명분도 없다는 점이다. 하지만, 과학과 신앙을 분리하여 과학은 과학이고 신앙은 신앙이라는 점을 구분하고 선을 긋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초중고에서 배우는 과학지식들이 성경과 배치된다는 점을 우리는 너무도 당연한 듯 받아들이면서 가르치고 있다. 즉, 학교에서 배우는 과학의 여러 이론들이 창조를 통해 드러난 하나님의 신성을 부인하듯이 결론을 내리고 배격하고 경계하는 자세로 아이들에게 ‘믿음’을 강요했음을 시인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과학과 신앙의 절충을 찾는 과정에서 과학과 신앙을 분리하여 ‘성경’에 접근한 결과라고 본다. 특별히 ‘창조’에 있어서만큼은 엄격하고 엄중하여 ‘믿음’이 맹목적인 신앙으로 자리를 잡아 교과서가 틀리다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우리는 가르치는 자로서 이 부분에 더욱 정직하게 반응해야 할 것이다. 세상의 기원은 ‘믿음’에 대한 부분이라는 점을 정확하게 고백하고 시작해야 한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만드실 때에 사용하신 방법이 ‘창조’라는 것을 인정하고 시작해야 한다.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가 원하는 세상을, 그의 시간 안에, 그의 영역 속에서 얼마든지 조성하시고 새롭게 하실 수 있다는 것을 명시해야 한다.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즉, 우리가 사는 지구가 최초의 지구인지 어떻게 아는가? 모르는 것이다. 끊임없이 별이 생성되고 사라지는 끝을 알 수 없는 우주의 영역 속에서 지구라는 별이 우주 공간에서 최초의 지구가 현재까지의 지구인지 어떻게 알 수 있느냐이다.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현재’를 지배하는 시간의 개념 안에서 겨우 점의 점과 같은 정도로 이해되는 것이지 이것을 우리의 관점에서 하나님의 ‘창조’를 다 해석하려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수 천 번 업고 덮으셨을지 알 수 없는 영역이므로 우리는 그저 창세기 1장에 기록된 ‘창조’의 역사가 현재까지 이어진다는 사실에 감격해야 할 것이다. 놀랍지 않은가! 언제 일어난 줄도 모르는 ‘창조 사건’이 현재에도 동일한 역사의 흐름 안에 이어져 있다는 사실이...!

엄격히 말하면 우리는 창조된 존재라기보다는 조성된 존재이다. 무에서 유로 ‘창조’된 것은, ‘빛’이 유일할 정도로 6일 동안 하나님이 하신 것은 극히 제한 적이다. 그렇다고 하여 하나님 그 자체가 제한이 있으시거나 능력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해하지 말 것이며 오류에 빠지지 말 것이다. 마치, 이창호 9단이 바둑 초단자를 이겼다고 하여 그의 능력이 초단자를 이기는 수준 정도가 아닌 것과 같다. 하나님의 ‘창조’는 그런 영역으로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흙으로부터 조성되었다. 그 흙은 셋째 날, 궁창 아래의 물이 한곳으로 모인 후 드러난 뭍이다. 그렇게 모인 물은, ‘하나님의 신은 수면 위에 운행’ 하였다는 표현에 따르면 언제부터 있었던 물인지 알 수 없는 그야말로 미지의 물이다.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물’이라는 표현이라 해도 무방하다. 그 물 아래 흙, 즉 ‘바닥’이라는 개념으로밖에는 설명할 수 없는 그런 흙이 존재했었음을 성경은 이야기한다. 그래서 그 흙이 언제부터 있었는지도 알 수 없는 부분이겠으나 어쨌든, 우리는, 사람은, 인간은, 첫 사람 아담은, 그 수면 아래 감추어져 있던 흙에서 비롯되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무에서 유에서 창조된 존재라고 하기엔, ‘우리의 형상을 따라’라는 표현이 발목을 잡기 때문이다. 그래서 분명,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조성되었고 만들어진 존재라는 것만큼은 부인할 수 없는 부분이다. 이렇게 사람이 조성되고 완전하게 세상을 이룰 때까지 하나님은 6일의 시간을 보내셨다. 6일 정도는 되어야 다 만들어질 수 있는 천지 세계이기 때문이 아니다. 6일이라는 시간 그 자체에 의미가 발견되어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있을 것이기에 하나님은 그렇게 하신 것이다. 왜 그러셨을까를 묻고 그 답을 찾고자 진지하게 연구하고 노력하는 것이 헛된 것은 아니겠으나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하셨다는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겠다.

그렇다면 각 일차들에 따라 하나님이 하신 것은 무엇일까? 천지 조성되는 시작 점 이전의 상태가 어떠하였는지는 각설하고 시작한다. 먼저, 하나님은 첫째 날에 ‘빛’을 만드신다. 이 ‘빛’의 정체가 별이 폭발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라 할 수도 있고, 단순한 분출일 수도 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현재 우리가 확인하는 ‘가시광선’ 으로서의 빛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아마도 질량 덩어리 일 수도 있고, 빅뱅일 수도 있고, 거대한 정말 정말 거대한 초신성 일 수도 있고, 블랙홀의 충돌 일 수도 있고... 모른다. ‘빛’ 덩어리이다. 이 ‘빛’으로 인해 ‘어둠’과 ‘밝음’의 개념이 시작되었고 ‘시간’의 개념이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첫째 날’이라고 하신다. 이것을 어떻게 ‘설명’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우리가 현재 지배받고 있는 ‘시간’은 태양계가 만들어진 넷째 날에 이루어진 것인데 첫째 날이라 이야기하는 그 ‘날’을 ‘욤(히브리어)’, ‘24’시간이라고 단정할 수 없는 바이다. 그래서 하나님이기 때문에 그가 능력이 부족하여 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기에 24시간으로서의 날이라는 ‘믿음’을 강요해서는 안 되는 부분이라 하겠다. 성경이 이야기하지 않는 부분은 겸손하게 이야기 한 부분까지만 수용하면 되겠다.

그런 후, 하나님은 하늘이라 칭하신 궁창을 만드신다. ‘공간’을 만드신 것이다. 이 공간이 우주 공간 전체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고 본다. 그렇다면 전 우주에 ‘물’이 편만했어야 하는데 현재 인공위성들이 물속을 헤매는 것이고, 화성탐사선도 수중 운행을 한다는 것인데 말이 안 되는 부분이다. 이성으로도 해석도 납득이 안 되는 영역이다. 우주 공간에 가득한 물이 지구라는 작은 별에 다 모여서 바다를 이루었다는 뜻인데.... 질량 보존의 법칙에 따르면, 하나님이 행하신 창조가 그렇게 무식하고 판타지 같은 것이 아님을 믿기에 여기서 조성하신 공간은 대기 상태 정도가 아닐까 한다. 즉, 여기에서의 하늘은 우주 공간 전체를 이야기함이 아니라고 본다. 물을 궁창위의 물과 궁창 아래의 물로 나누신 것을 보면 특정한 공간에 제한하신 것이다. 그렇게 하시고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둘째 날’이라 하신다.

그런 후, 하나님은 궁창 아래의 물을 한곳으로 다 모으신다. 자, 운동에너지가 발생했다는 뜻이다. 그리고 모였다는 것은, 흘렀다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중력이 작용했다는 의미이다. ‘빛’이 창조되기 이전부터 ‘중력’이 존재했었는지, ‘천하의 물이 한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셨을 때부터 중력이 있었는지 필자의 짧은 지식으로는 가늠할 수 없는 영역이겠으나, ‘드러난다’는 명을 내리신 것으로 보아, 첫째 날에 ‘빛’ 이전부터 중력의 작용이 있었겠지 않았나 추정해본다. 여기에서 궁창 아래 물은 ‘뭍’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이 또한 현재의 지구 상태를 전제해서 보기 때문이지 확실히 그러했다고 이야기할 수 없는 영역이다.). 그렇게 드러난 뭍에 하나님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라 하신다. 뭍이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의 속성을 머금고 있었다는 뜻이다. 그래서 흙이 있는 곳엔 어김없이 풀이 자라는 것을 볼 수 있다. 흙은 천연 상태로라면 언제든지 생명을 틔울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한다. 우리 인간과 원산지가 같다.

그런 후, 하나님은 넷째 날에 하신 것은 놀라움 그 자체이다. 첫째 날에 하신 ‘낮’과 ‘밤’의 개념을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영역으로 만들어버리신 것이다. 전 우주 공간에 퍼져 있는 별이라기보다는, 태양계를 만드셨다고 하는 것이 맞다. 지구가 공전과 자전을 이때부터 시작되었는지, ‘주기’를 갖게 되었는지 확실하지 않으나 분명한 것은, 현재 우리가 영향을 받고 있는 시간의 개념이 이때부터임은 확실하다. ‘욤’, ‘날’의 완벽한 이해이다.

그런 후, 다섯 째 날에 하나님이 하신 것은, 지구 대기권을 채우는 것과 바다를 채우는 일을 하셨다. 나는 모든 것, 물에서 번성하는 모든 것을 만드시고 보시기에 좋아하셨다. 하나님이 ‘~하라’고 하셨을 때, ‘~하라’ 하시기 전까지 염두에 두신 그대로 완벽하게 조성되었다는 뜻이다. 완벽하다!

그런 후, 여섯 째 날에 하나님이 하신 것은,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로 내어 놓으라 하신다. 셋 째 날에 하신 것과 같은 표현이다. 이 역시 흙이 내포하고 있는 생명력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사람’이 만들어진다. 남자와 여자가 같은 날 만들어진 것인데 창세기 1~2장의 전개 상, 상당한 시간이 흐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아니다. 살아 움직이는 생물의 이름을 지은 것과 잠들게 하여 여자를 만드신 것 모든 것이 같은 날 이루어졌다. 현재의 하루와 당시 여섯 째 날의 하루와 다르지 않은 시간인 것을 감안하면 마지막 날은 상당히 분주한 하루였음을 짐작 알 수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그렇게 하신 후, 우리에게 주신 명령은 놀랍도록 경이적이다. ‘이 세계를 경영하라!’고 하셨으니 어마어마한 특권을 우리에게 주신 것임을 새삼스럽게 깨닫는 바이다.

그런 후, 쉬신다. 쉬는 것까지, 여기까지가 천지만물을 이루는 완성이며 끝이다.

하나님의 창조는 현재에 영향을 주는 사건이며 우리가 살아가는 현장에서 마땅히 누리는 하나님의 흔적이다. 더듬어 알 수 있는 충분한 것이며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증거들이다. 그래서 짧지만, 간략하게 살펴본 천지창조에 대한 기사들을 보며, 오늘을 통괄하시는 하나님을 현재의 은혜로 고백하기를 기대해 본다.

활동

[활동] 그림카드에서 천지창조 날짜 별로 해당되는 것을 찾아보기

[준비물] PPT, 그림카드, 교재 p16~17

“다음 그림들을 보고 각 빈칸에 몇째 날에 창조되었는지 숫자로 적어보세요~!”

[그림카드를 나누어 준 후]

“하나님이 둘째 날에 하신 것을 찾아 들어주세요!”

“하나님이 넷 째 날에 만드신 것을 찾아 들어주세요!”

(각 날짜별로 하고, 1~6일까지 차례대로 들어보라 하고, 조별로 한 사람이 한 장씩 들어 보이게 하면서 다양한 인원이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다 같이 창세기 1장 1절을 큰 소리로 외워봅니다! 시작”

분반나눔시 주의사항

다그치듯 하지 않습니다. 설교를 잘 들었는지 그렇지 않은지는 점검하고 짚어주는 시간이며 활동한 내용을 통해 말씀에 대한 이해와 반응을 확인하는 시간입니다. 아이들은 배운 것을 작게라도 활동에 참여한 후에 나눔을 한 것이므로, 어떤 형태로든 자기의 감정과 느낌을 이야기하게 됩니다. 짧게 한 마디 하더라도 최대한 칭찬과 격려로 나눔을 이끌어 가시기 바랍니다. 나눔 진행 순서는 다음과 같습니다(현장의 상황에 따라 다르게 진행 가능하며 유동적으로 접목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점검 및 활동내용 소감 나눔] → [말씀을 바탕으로 한 일주일의 각오] → [암송구절 제창] → [축복 기도 후 해산]

1. 다 같이 오늘의 본문과 제목이 어떻게 되지?

2.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첫째 날부터 여섯 째 날까지 순서대로 이야기해볼까?

3. 다른 것은 다 하나님이 하라는 대로 만들어졌는데, 우리 사람만 달라! 어떻게 다를까?

4. 우리에게 주어진 특권이자 명령이 있는데 그게 뭐지?

5. 다 같이 창세기 1장 28절을 읽어볼까?

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안녕하세요

J-Virtue Media 상구 & 오감성경사역연구원입니다.

 

2020년을 시작하고도 벌써 한 달이 다 지나가고 있습니다.

이번 주면 2월 첫 주를 맞이하게 되는데요.

지난 한 달간 교회학교는 어떠셨는지요?

명절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어려웠다면 마음을 다시 다잡고 새로 시작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J-Virtue Media는 지난 2년간 오감성경의 콘텐츠가 도움이 되도록

동영상으로 지원하는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https://tv.naver.com/5sensesbible

 

오감성경 : 네이버TV

머리로 배우고 온몸으로 익히는 오감성경 우리가 가지고 있는 다섯 가지 감각, 인간의 모든 인지능력에 반응하도록 '쉽고', '재밌고', '빠르고', '바르게'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66권의 성경 전부를 가르치고 익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머리로 배우고 온 몸으로 익히는 오감성경입니다. 운동선수들이 기초 자세부터 익히는 것은 "몸"이 먼저 기억하고 그 기억대로 즉각반응하는 상태로 경기에 임하고자 하는 것 때문입니다.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듣고" 배

tv.naver.com

 

여기에 더 나아가 교회학교의 공과에서도 한 가지 내용을 꾸준하게 지속적으로

알려주고 가르칠 수 있는 커리큘럼을 함께 공유했었습니다.

커리큘럼은 아래의 링크로 가셔서 다운로드하시면 됩니다.

https://limsk98.tistory.com/204?category=745886

 

교회학교 모세오경 1년 커리큘럼_오감성경사역연구원 제공

안녕하세요 J-Virtue Media 상구입니다. 그동안 J-Virtue Media는 오감 성경 콘텐츠를 동영상으로 제작하고 이를 온라인으로 배포하고 홍보하는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오감성경 네이버TV 채널 바로가기 하지만 오..

limsk98.tistory.com

이번 포스팅은 그 다섯 번째입니다.

 

 

5주차의 본문은

본문: 말라기 2장 5~6절

제목: 구약성경은 레위기가 중심 Ⅰ

 

5

레위와 세운 나의 언약은

생명과 평강의 언약이라

내가 이것을 그에게

준 것은

그로

경외하게 하려 함이라

그가

나를

경외하고

내 이름을

두려워하였으며

6

그의 입에는

진리의 법이

있었고

그의 입술에는

불의함이

없었으며

그가

화평함과 정직함으로

나와

동행하며

많은 사람을

돌이켜

죄악에서

떠나게 하였느니라

 

 

암송 구절은 5절입니다.

여기에 걸맞은 오감성경 동영상입니다.

아래의 링크로 가시면 모세오경 내용을 1분 안에 살펴보는 바이블톡(모세오경)을

시청하실 수 있습니다.

https://tv.naver.com/v/1748259/list/133463

 

오감성경_바이블톡(Bible Talk)_ver.Intro

오감성경 | 오감성경_바이블톡(Bible Talk)_ver.Intro 오감성경 우리가 가지고 있는 다섯 가지 감각, 인간의 모든 인지능력에 반응하도록 성경을 가르치고 익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머리로 배우고 온 몸으로 익히는 오감성경입니다. 운동선수들이 기초 자세부터 익히는 것은 "몸"이 먼저 기억하고 그 기억대로 즉각반응하는 상태로 경기에 임하고자 하는 것 때문입니다.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듣고" 배운 것을 "적용" 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익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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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영상의 내용을 글로 풀어보면

성경을 이해하는 많은 접근법들이 있다. 지금부터 이야기하는 부분은 성경을 쉽고 빠르고 바르게 익힐 수 있는 많은 접근들 중의 하나로 그 어떤 성경 개관보다 강력한 느낌 이상의 무엇인가를 남겨 줄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산에서 하나님으로 받은 세 가지가 있다. 십계명, 성막, 레위기! 이 세 가지는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나온 후 시내산에 도착하여 받은 것으로 각각 심중한 의미들을 담고 있다. 그중에, 십계명은 출애굽기 20장에 나오는 부분으로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부분이겠다. 그리고 성막은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지내는 동안 하나님을 만나는 거룩한 처소요, 그들의 민족 공동체의 정체성을 형성해 나가는 너무나도 중요한 상징가건물이다. 그런데 레위기는 무엇이란 말인가!

성경의 한 권인 것은 알겠는데, 창세기, 출애굽기, 민수기, 신명기와 놓고 본다면 그 의미나 경중함이 다분히 뒤 처지는 듯하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율법의 완성이신 예수께서 다 이루셨으므로 그 의미만 전달되면 레위기가 할 일은 다 한 것이라는 듯, 그렇게 홀대한 것도 다분하다. 또한 지금은 신약의 시대이므로 구약인 레위기를 굳이 언급해가며 강조해야 할 정당성도 희미하다. 오히려 율법서 5권 중에 가장 길고 방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 창세기는 상당히 익숙한데, 가장 짧고 제일 간단한 내용들로 가득 찬 레위기가 몇 장까지 있는지조차 모른 채 가볍게 여기는 경우가 너무도 흔하다.

아니다. 레위기는 그런 책이 아니며 그런 취급당해야 되는 책도 아니다. 말라기서에 등장하는 ‘레위와 맺은 나의 언약’이라고 언급되는 그 언약은 곧, 레위기인데 우리는 너무나도 모른 채 언약의 허울에만 사로잡혀 신기루 안에 살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즉, 꼭 알아야 하는 책을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인 그런 책으로 여기고 지내며 예수 구원의 영생 속에 이 땅의 기름진 복을 희구하던 것을 반추해야 할 부분이다. 하나님은 시내산에서 이스라엘과 함께 맺었던 그 언약, 바로 레위기를 어떤 마음으로 주셨는지를 이야기해주고 있다. 첫사랑의 아련함과 설렘을 잊은 채, 익숙함과 타성에 젖어 본질을 상실한 이들에게 하나님은 준엄하고 솔직한 심정으로 깨닫게 하시는 부분이 곧 말라기서에 언급된 부분이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레위기를 추억하며 이스라엘을 언약의 회귀로 촉구하고 계시는 것일까? 그것은 레위기의 중요성 때문이다. 즉, 이스라엘 백성이 구원받은 후(바울은 홍해를 건넌 것을 이스라엘이 세례 받은 것이라 하였다. 그래서 출애굽을 구원이라고 표현해도 무방하다.), 시내산에 도착하여 이제 구원받은 백성으로 살아가야 하는 그들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나’라는 답을 주는 책이 곧 레위기이다. 그래서 레위기가 곧 구약성경의 중심이 되며 기준이 된다. 구원받은 백성이 구원받은 백성답게 살아가도록 하는 책이 레위기인 것이다. 삶의 지침과 기준을 제시하는 공식적인 언약이므로 이를 구약이라고 할 수 있겠다. 즉, 구약이라고 했을 때, 창~말을 일컬어 하는 통칭보다 더 정확한 표현은 레위기가 곧 구약인 것이다.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받지만, 레위기를 지키면 복을 받는다. 이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다.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예수를 믿어야 하지만, 복을 누리는 삶을 살고자 하면 레위기대로 살아야 하는 것이다. 복의 누림 현상, 26장에 명시되어 있는 내용이다.

그렇다면, 이 레위기를 주신 하나님이 누구이시며 이 레위기를 받은 이스라엘 백성은 어떻게 민족을 이루었으며 이집트에 들어가게 되었는가! 이를 밝혀주고 있는 책이 곧 창세기이다. 창세기를 통해 레위기를 주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 수 있으며 그들이 어떻게 누구로부터 민족을 이루었는지 근원을 밝혀주고 있는 책이 창세기이다.

출애굽기는 말 그대로 이집트를 탈출한 내용으로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탈출하여 시내산까지 도착하여 레위기를 받기까지의 과정을 담은 역사적 기록이다. 이집트를 탈출하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경험하게 된 세세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민수기는 제목 그대로 하면 백성들의 수를 헤아린 기록인데, 히브리어 원문에 보면 ‘광야에서’라는 제목이 있다. 즉, 광야에서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경험하고 체험한 이야기들이다. 무엇으로 왜 그들이 하나님을 경험하고 체험했을까! 레위기대로 가나안에서 살아야 하는 이스라엘은, 실제 살아보기 전에 레위기대로 익숙해지고 체질화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 기간, 그것의 이야기를 담은 것이 곧 민수기이다. 결론으로 이야기하자면,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 광야에서 레위기대로 훈련한 40년간(정확하게 38년이겠으나 통상적으로 40년이라 하겠다.)의 기록, 그것이 바로 민수기이다.

신명기는 계명을 되풀이한 책으로, 말 그대로 계명을 되풀이하고 다시 설명한 책이다. 광야에서 훈을 거의 마친 후, 가나안에 들어가려 하니 문제가 하나 생겼다. 출애굽 2세대에게 레위기를 다시 설명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모세는 광야에서 태어나고 자란 2세대를 모압 평지에 모아두고 레위기를 본문으로 세 편의 설교를 통해 하나님이 주신 계명, 율법을 다시 한번 상기하도록 한다.

율법이자 구약인 레위기를 중심으로 하여 이렇게 창세기, 출애굽기, 민수기, 신명기가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어서 이를 율법서라고 칭한다. 그리고 모세가 기록하였다고 하여 모세오경이라고도 한다. 구약성경의 중심이요, 기준이 되는 이 책을 통해 하나의 거대한 율법이 완성되었으며 현재까지도 이 율법의 권위와 능력은 예수 그리스도로 완성되어 오늘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하겠다.

자,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들어간다. 그들이 가나안에서 살면서 무엇을 기준으로 살아야 하는가? 바로 레위기이다. 그 자신의 율법이자 민족의 율법인 레위기대로 살아가는 현장이 약속의 땅, 가나안인 것이다. 율법대로의 삶, 레위기대로의 삶이라 하겠다. 그렇게 하루는 레위기대로 살고, 하루는 레위기대로 살지 못하고... 매일의 순간을 기록한 그들이 일 년의 시간을 기록하고 일 년의 시간을 기록한 그들이 일생을 기록하여 레위기대로의 삶을 전해준다. 그것이 곧 역사이다. 그래서 구약성경의 역사서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레위기대로 살았는가 살지 못했는가에 대한 천 년의 기록! 이것이 곧 역사서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등장하고 사라지고 하면서 많은 이야기들을 만들어 냈지만, 결국, 그들의 이야기는 율법대로의 삶이었느냐 아니었느냐 뿐이다.

하나님은 출애굽기 19장 초반부에서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며 말씀하시기를 언약을 어길 시 저주가 임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 편에서 먼저 언약을 어기시지 않은 한, 언약을 어기지 않고 끝까지 지켜 행해야 할 입장에 처한 쪽은 바로 언약을 받은 편이다. 그래서 언약, 율법, 약속, 계명, 말씀을 듣고 지켜 행하는 자에게 주시는 것은 “복” 이었음을 우리는 기억한다. 레위기 26장에 기록된 복이 그대로 임하게 되고, 어길 시 레 267장에 기록된 저주가 그대로 임하게 되는 삶, 그것이 이스라엘의 삶이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보란 듯이 레위기를 져버리고 ‘자기 소견의 옳은 대로’ 행하여 하나님을 떠나 다른 것을 자기 하나님 삼는 행위를 하게 된다. 그에 대하여 하나님은 일언의 망설임도 없이 저주를 내리셔야 함이 마땅하다. 자신을 위해 우상을 만들고, 이웃을 해하며, 말씀의 행함이 없이 살아가는 그들에게 하나님은 저주를 내리셔서 언약을 이행하셔야 한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기회를 주신다. 돌이킬 기회를 주시고, 뉘우칠 기회를 주신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즉시 저주가 임해야 하는 것이 원래 계약인 것인데, 하나님은 너무도 우리를 사랑하셔서 그렇게 행하지 않으시고 그의 사자들을 통하여 레위기를 기억하라고 하신다. 언약을 회복하라고 하신다. 그랬을 때, 임박한 진노를 면하게 될 것이고 도래한 저주를 거둘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렇게 이스라엘에게 나타나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한 사람들을, “선지자”라고 한다. 그리고 미리 예견된 하나님의 저주가 곧 임하게 될 것을 알고 그대로 전한 사람들이기에 “예언자”라고도 한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들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결국 저주를 받아 흩어지게 되고 멸망에 이르게 된다. 그래서 그들이 선지자들의 이야기를 따르지 않았으므로 인해 초래한 결과를 상기하여 후대의 교육이 되고자 선지자들의 이야기를 기록한다. 그것이 선지서로 우리에게 전해오고 있다. 하나님의 사자들이 이야기, 즉, 이스라엘 백성들이 레위기대로 살지 않자, 심판과 저주 전, 징계로써 경고한 사람들의 기록! 이것이 선지서이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이 레위기대로 살지 못하기만 했을까? 아니다! 살았다. 살았을 때, 무엇을 받는가? 바로 복을 받는다! 레위기대로 살았을 때,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고 보니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고 하나님이 주신 지례를 높여 부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그 노래와 고백, 지례로 찬양한 것을 모은 책이 바로 시가서이다.

구약성경은 이렇게 레위기를 중심으로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하나의 덩어리와 같이 유기적인 관계를 갖고 있다. 율법으로서는 결국, 하나님의 뜻대로 설 수 없는 존재임이 구약의 전 역사 속에서 드러난 것이다. 그래서 친히 확인 가능한 존재가 우리에게 나타나사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우리를 원에 이르게 한 법,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되시겠다.

분반나눔 진행시나리오

 

[활동] 성경목록외우기

[준비물] ppt 준비(오감성경사역연구원으로 문의주시면 됩니다. 유료구매 필요)

 

분반나눔시 주의사항

다그치듯 하지 않습니다. 설교를 잘 들었는지 그렇지 않은지는 점검하고 짚어주는 시간이며

활동한 내용을 통해 말씀에 대한 이해와 반응을 확인하는 시간입니다.

아이들은 배운 것을 작게라도 활동에 참여한 후에 나눔을 한 것이므로, 어떤 형태로든 자기의 감정과 느낌을 이야기하게 됩니다.

짧게 한 마디 하더라도 최대한 칭찬과 격려로 나눔을 이끌어 가시기 바랍니다. 나눔 진행 순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현장의 상황에 따라 다르게 진행 가능하며 유동적으로 접목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점검 및 활동내용 소감 나눔] → [말씀을 바탕으로 한 일주일의 각오] → [암송구절 제창] → [축복 기도 후 해산]

 

1. 구약성경의 중심, 기준이 무엇이라고?

2. 레위기를 주신 분이 누구이시고 레위기를 받은 이스라엘이 누구인지 근원을 밝혀주고 있는 책은?

3.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탈출하여 시내산에 도착하여 레위기를 받기까지의 과정을 기록한 책은?

4.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레위기대로 훈련한 38년간의 기록은?

5. 모세가 출애굽 2세대에 모압평지에서 레위기를 본문으로 한 세 편의 설교는?

6. 이스라엘이 레위기대로 살았는가 살지 못했는가를 천 년의 기록은?

7. 이스라엘이 레위기대로 살지 않았을 때, 심판과 저주 전 징계로써 경고한 사람들의 기록은?

8. 이스라엘이 레위기대로 살았을 때, 하나님이 주신 복으로 찬양하고 노래한 책은?

9. 구약성경 몇 권?

10. 다 같이 말라기 2장 5절 읽고 끝나볼까?

 

5

레위와 세운 나의 언약은

생명과 평강의 언약이라

내가 이것을 그에게

준 것은

그로

경외하게 하려 함이라

그가

나를

경외하고

내 이름을

두려워하였으며

 

안녕하세요

J-Virtue Media 상구 & 오감성경사역연구원입니다.

 

 

오늘의 구정이군요. 모두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우선 모세오경 1년 커리큘럼을 먼저 공유해드립니다.

https://limsk98.tistory.com/204

 

교회학교 모세오경 1년 커리큘럼_오감성경사역연구원 제공

안녕하세요 J-Virtue Media 상구입니다. 그동안 J-Virtue Media는 오감 성경 콘텐츠를 동영상으로 제작하고 이를 온라인으로 배포하고 홍보하는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오감성경 네이버TV 채널 바로가기 하지만 오..

limsk98.tistory.com

 

본문: 누가복음 24장 44~48절

제목: 성경의 주인공

 

해설 및 연구/묵상

사람이 만들어낸 모든 저작물에는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주인공이 존재한다.

장편이든, 단편이든 그것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든 모든 것은 주인공을 중심으로 배경이 이루어지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래서 주인공을 파악하고 줄거리를 익히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특히, 그것이 역사물이라고 할 때는 더더욱 그렇다. 개인의 역사, 가문의 역사, 민족의 역사, 인종의 역사,

인류의 역사를 다룬 기록물들은 특정 인물을 매개로 그 인물과의 관계 속에서

발생한 사건이 중심되어 전개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그래서 인물의 선호도나 정치 성향에 따라 읽어가는 이들에게 역사는 새롭게 인식되며 다채롭게 구성된다.

 

그렇게 본다면, 성경은 인문학 서적으로서의 역사를 다룬 최고의 책 중의하나요,

기록 유산으로서도 충분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책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성경은 조금 더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유는 이렇다. 보통 역사를 다룬 기록들은 소수의 몇 사람만으로 구성된 책으로

주로 특정 지지층에 의해 해석이 통일되도록 되어 있다.

편집자들이나 기록 당사자들이 가지고 있는 정치적 성향이나 신분 등이

사회적으로 통일성을 이루어 동일한 세계관을 강요하지 않아도

충분히 사건의 기록이 한 방향으로 흐르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그 한 예가 조선왕조실록이라 할 수 있다.

사관이라는 직업의 통일성과 사회적 지위는 실록이 제작되는 과정에서 ‘그러하더라’가 아닌,

‘그러하였다’는 시점으로 일관된다.

그렇다면 성경은 이런 구조로 보았을 때 갖게 되는 가장 큰 특징은 무엇일까?

 

성경은 놀랍도록 정교하고 세밀하다.

담고 있는 시간의 넓이에 비해 철저하게 기획된 한 사람에 의해 조정되고

편집된 듯한 인상을 줄 정도로 통일성을 갖는다.

그 이유는, 일반적인 역사 서적들과의 비교를 통해 더욱더 확고하게 드러내 보일 수 있는 부분이다.

즉, 역사로서의 성경으로 보아도 일정 수준을 뛰어넘고, 인문서적으로 보아도 문체와 구성의 정교함이

현대의 그 어느 것과도 비교불가인 것이다. 이를 정리해보자면,

 

역사 서적은 기록자가 통일성을 이룬 반면, 성경의 기록자들은 다양한 신분과 사회적 계급을 가지고 있다.

왕과 왕자부터 시작하여 목축업 종사자는 물론, 농/어업을 통괄하며 공무원과 의사,

심지어 전과 경력을 가진 사람들까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담고 있는 내용은 “한 주제”, “한 사람”을 지칭하며

주제가 흐트러지거나 어긋나지 않고 있다.

즉, 다시 말해, “대한민국에 대해 쓰시오!” 했을 때,

길 가는 사람 10명에게 다 물어보고 쓰라고 하면 각자가 경험하고 알고 있는

‘대한민국’에 대하여 쓸 것이다. 그 쓴 것을 대한민국에 대해 전혀 듣고 보지도 못한 사람이 읽었을 때,

‘아, 이것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글이구나’로

인식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과 같은 것이다(각 교회에서 성경의 통일성에 대하여 증명을 할 때,

실제로 해보시기 바랍니다. 놀라운 결과를 얻게 될 것입니다).

 

역사 서적은 과거형으로 기록하고 현재의 해석을 담고 있는 반면,

성경은 과거의 사건이 현재에도 유효한 미래적 시각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심지어 이루어지지 않은 일을 예견한 기록들까지 담고 있는 독특한 역사 인문학 서적이다.

즉, 역사 서적은 “그랬었구나”라고 지식을 전달받고 교훈을 얻을 수 있는 것으로 그치지만,

성경은 “그러 할 것이다”로 추정되는 수준을 넘어 “그렇게 된다!"라는 확신의 어조를 담고 있다.

그래서 성경은 과거의 책이나 미래지향적인 지침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것이 일반적이 서적과의 차이점이다.

 

역사 서적은 한정적인 지리적 배경을 담고 있으나 성경은 지리적 한계와 개연성이 특정인으로 통일된다.

이것은, 역사 서적은 특정 구역 안에서 발생하는 사건과 인물의 관계에 따라 제한되지만

성경에서 다루고 있는 사건들은, 그리고 등장하는 인물, 민족이 다루는 배경은

상당히 넓은 면적으로 분포된다.

즉, 성경의 지리적 배경인 성경에 등장하는 대표적인 민족인 이스라엘이 거주한

팔레스타인 지역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중동지역의 세계 역사와 다분히 관계되어 있으며 심지어 여타 민족의 발생 기원까지 담고 있는

상당히 독특하고 다루는 범위가 광활하다.

 

역사 서적은 기록 당시의 철학을 겨냥하거나 인문학적인 접근을 주요 목적으로 하지 않는 반면,

성경은 이 모든 것을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다.

즉, 인류의 기원 및 국가의 발생은 물론 선과 악의 발생 등을 통해 인문학적인 질문들에

진지하고도 명쾌하게 서술하고 있다.

그래서 성경에서 발견하게 되는 인생의 진리는 모든 인류를 통달하고 있으며 세대를 초월한 보편,

타당하고 범 적용 가능한 전제를 충족한다.

 

역사 서적은 독자의 해석이 보편타당한 반면,

성경은 독자로 하여금 독자의 상황에 따라 완벽하게 적용될 수 있다.

이것이 성경만의 독특한 매력이기도 한 것인데, 배경과 교육 환경과 상관없이

언제나 성경을 마주할 때마다,

성경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의 방향은 항상 같은 표현으로 귀결된다.

 

자, 그렇다면 이런 성경이 어느 한 지점을 향하여 목적성을 가지고 기술되어 있다고

성경 스스로가 증언하는데, 그것은 무엇일까! 바로 본문에 나와 있는 내용과 일치한다.

 

44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즉,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성경의 주인공이 곧 자기 자신이므로 이야기하신다.

어떤 특정 사건, 즉 부활에 지칭되는 것 같으나 복음서 전체를 놓고 보았을 때,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과 부활을 이야기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이렇게 기록이 되어 있는 이 성경으로 예수를 주와 그리스도로 믿을 수 있고

만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분과 대화할 수 있고, 교제할 수 있는 것은 성경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더 알고 깊이 교제하고자 한다면

성경의 주인공이신 성경으로 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구절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모든 기록,

즉 구약의 기록이 그의 부활하심으로 전부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종의 선언과도 같다. 그는 성육신하시었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으나 삼일 만에 부활하셨고,

하늘에 오르셨다. 이제 그 예수님은 다시 오실 것이다. 이것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고,

또 이루어졌기 때문에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그에 대한 이야기도 이루어질 것이라는

확신과 믿음이 있다. 그래서 우리가 견지해야 할 삶의 전형은 결국,

말씀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믿음 가운데 거하며 그 말씀을 붙드는 것이라 하겠다.

 

성경의 주인공이신 예수 그리스도, 그가 성경을 이루시고 이후로도 이루실 것이기에

우리는 그 성경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교제해야 할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서부터!

 

진행 시나리오

[활동] 피켓 만들기, 전도

사진 설명을 입력하세요.

[준비물] 피켓 만들기: A4 종이, 사인펜(색연필 등), 풀, 나무젓가락

오늘의 설교 본문이 어떻게 되죠?

누가복음 24장 44~48절을 외치면 여러분이 크게 읽어주세요! 좋습니다. 성경의 주인공이신 예수님을 소개하는 피켓을 만들어 보도록 하겠습니다(사진으로 피켓을 들고 시위하는 사진을 보여준다). 이렇게 예수님에 대한 짧고 상정적인 단어들을 선택하여 여러분이 누군가에게 예수님을 알려 주고자 할 때, 아주아주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는 피켓을 만들어 봅니다.

 

분반 나눔

분반 나눔 시 주의사항

다그치듯 하지 않습니다. 설교를 잘 들었는지 그렇지 않은지는 점검하고 짚어주는 시간이며 활동한 내용을 통해 말씀에 대한 이해와 반응을 확인하는 시간입니다. 아이들은 배운 것을 작게라도 활동에 참여한 후에 나눔을 한 것이므로, 어떤 형태로든 자기의 감정과 느낌을 이야기하게 됩니다. 짧게 한 마디 하더라도 최대한 칭찬과 격려로 나눔을 이끌어 가시기 바랍니다. 나눔 진행 순서는 다음과 같습니다(현장의 상황에 따라 다르게 진행 가능하며 유동적으로 접목하시기 바랍니다).

[말씀 점검 및 활동 내용 소감 나눔] → [말씀을 바탕으로 한 일주일의 각오]

→ [암 송 구절 제창] → [축복 기도 후 해산]

 

1. 오늘 진짜 수고 많았다! 어땠니? 성경의 주인공이 예수님이라는 걸 알고 있었니?

2. 그래, 오늘 말씀에서 보면 모세와 선지자의 글과 시편이 가리키는 것은 무엇이었지?

3. 일주일 성경의 주인공이신 예수님이 네 마음에도 주인공 되었으면 좋겠구나!

어떻게 하면 예수님을 네 삶의 주인공으로 모실 수 있을까

4. 다 같이 누가복음 24장 44절을 마쳐볼까?

 

44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5. 축복의 기도

 

 

안녕하세요

J-Virtue Media 상구 & 오감성경사역연구원 입니다.

 

 

2020년 하고도 10일가까이 지나가는 시점에서

여러분들의 계획은 다들 안녕하신지요?

연말을 바쁘게 지내다보니 계획이라 할 것도 없이 지났지만

올해 오감성경분반나눔 지도안은 매주 금요일 이전에 업로드 할 계획입니다.

아직도 1년 계획안을 찾고 계신분이 있다면?

아래 링크를 참조해 주세요

https://limsk98.tistory.com/204

 

교회학교 모세오경 1년 커리큘럼_오감성경사역연구원 제공

안녕하세요 J-Virtue Media 상구입니다. 그동안 J-Virtue Media는 오감 성경 콘텐츠를 동영상으로 제작하고 이를 온라인으로 배포하고 홍보하는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오감성경 네이버TV 채널 바로가기 하지만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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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의 제목은 제목: 성경은 무엇이기에 왜 배워야 하죠?였고

디모데후서 3장16절 말씀으로 분반나눔을 진행했습니다.

활동으로는 퀴즈, 암송대회, 한 해 소원 적어보기의 활동을 진행했었습니다.

 

오늘은 2주차(1월 2주차) 계획안 입니다.

 

 

2주차 분반나눔지도안

 

분반 나눔에서는 크게본문 - 암송 - 활동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로 본문의 경우는 주어와 동사를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읽습니다.

 

본문: 신명기 31장 9~13절

제목: 성경은 어떻게 배우는거야?

 

9

모세가

이 율법을

써서

여호와의 언약궤를 메는

레위 자손 제사장들과

이스라엘 모든 장로에게

주고

 

10

모세가

그들에게

명령하여이르기를

매 칠 년 끝 해

곧 면제년의 초막절에

 

11

온 이스라엘이

네 하나님 여호와 앞

그가 택하신 곳에

모일 때에

이 율법을

낭독하여

온 이스라엘에게

듣게 할지니

 

12

백성의 남녀와 어린이와

네 성읍 안에

거류하는 타국인을

모으고

그들에게

듣고 배우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하게 하고

 

13

너희가

요단을

건너가서

차지할 땅에

거주할 동안에

이 말씀을 알지 못하는

그들의 자녀에게

듣고

네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게 할지니라

 

다음 단계는 활동입니다.

1. 퀴즈

설교 후, 간단한 퀴즈로 본문의 내용을 기억할 수 있도록 유도합니다.

‘설교 본문과 제목은?

 

2. 반별 사진 콘테스트

가장 멋지고 화려하고 이쁘고 멋있는 사진을 찍는 반에게 가장 높은 점수를 주는 방식.

(시간을 어느 정도 준 후에 한 곳으로 모아서 바로 그 자리에서 모두 다 있을 때 확인한다!

취합 방법은 카카오톡, 이메일 등 여건에 따라 자유롭게 진행 /

포상방법은 반 별 회식등 각 교회 시행여건에 맞게 진행)

 

그 다음 단계는 암송입니다.

너희가

요단을

건너가서

차지할 땅에

거주할 동안에

이 말씀을 알지 못하는

그들의 자녀에게

듣고

네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게 할지니라

 

분반나눔

 

1. 오늘 말씀에서 가장 기억나는 것은 무엇이니?

2. 자,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왜 배운다고 그랬지?

3. 다같이 신명기 31장 13절 읽어보자!

4. (격려와 다짐)우리 성경대로 한 번 해보자! 알았지?! 응원한다!

5. 축복 기도 후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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