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13:20-25

영원한 언약의 피를 흘려서 양들의 위대한 목자가 되신 우리 주 예수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이끌어내신 평화의 하나님이

여러분을 온갖 좋은 일에 어울리게 다듬질해 주셔서 자기의 뜻을 행하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또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암 우리 가운데 자기가 기뻐하시는 바를 이루시기를 빕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영광이 영원무궁히 있기를 빕니다. 아멘

형제 자매 여러분, 부디 이 권면의 말을 받아들이기를 권유합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짤막하게 썼습니다.

우리 형제 디모데가 풀여나온 것을 알려드립니다. 그가 속히 오면, 내가 그와 함게 여러분을 만나보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모든 지도자와 성도에게 문안하여 주십시오. 이탈리아에서 온 사람들이 여러분에게 문안합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은혜가 있기를 빕니다.

 

양들의 큰 목자이신 우리 주 예수를 영원한 언약의 피로 죽은 자 가운데서 이끌어 내신 평강의 하나님이

모든 선한 일에 너희를 온전하게 하사 자기 뜻을 행하게 하시고 그 앞에 즐거운 것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가운데서 이루시기를 원하노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무궁토록 있을 지어다 아멘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권면의 말을 용납하라 내가 간단히 너희에게 썼느니라

우리 형제 디모데가 놓인 것을 너희가 알라 그가 속히 오면 내가 그와 함게 가서 너희를 보리라

너희 인도하는 자들과 및 모든 성도들에게 문안하라 이달리야에서 온 자들도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은혜가 너희 모든 사람에게 있을지어다

 

https://youtu.be/7aO4SfEDut8?si=GFpUyW-jx0FbIBfN

히브리서의 마지막 메시지는 구원에 관한 이야기 입니다. 구원은 성경에서 가장 큰 은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모든 종교의 최종 목적은 구원입니다. 죽어봐야 알거나, 신의 선택에 달린 다른 종교와 기독교가 다른점은 기독교는 구원이 출발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원을 죽기전에 알아야하고 구원의 확신은 인생에서의 자유를 준다. 언약의 틀에서 구원은 하나님에 의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에서의 구원을 은혜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가 이것을 알고 이미 있는 진리에 서 있으나 항상 너희에게 생각나게 하려 하노라
베드로후서 1:12

그리고 이 구원은 우리가 살면서 계속해서 기억해야하고 마음에 새겨야 한다.

영원한 언약의 피를 흘려서 양들의 위대한 목자가 되신 우리 주 예수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이끌어내신 평화의 하나님이
히브리서 13:20

히브리서 13:20절에서의 주어는 하나님이다. 여기에서 하나님을 수식하는 평화는 쌍방간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즉 원수된 죄인들과의 평화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원수일 때에도 하나님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해하게 되었다면, 화해한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으로 구원을 얻으리라는 것을 더욱더 확실한 일입니다.
로마서 5:10

죄로인한 원수의 결과는 죽음이다 하지만 원수의 관계가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화평으로 변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히브리서 13:20절에서 이야기하는 영원한 언약의 피로 인함이고 기독교의 영원한 복인 것이다. 하지만 언약에는 반드시 피가 꼭 존재한다.

아브람이 이 모든 희생제물을 주님께 가지고 가서, 몸통 가운데를 쪼개어, 서로 마주 보게 차려 놓았다. 그러나 비둘기는 반으로 쪼개지 않았다.
창세기 15:10

갈데아 우르를 떠난 아브람이 가나안에 도착한 것이 75세이다. 자식을 주시고 이 땅을 차지하고 번성하게 하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에 의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래서 아브람은 엘리에셀을 후계자로 세울지 하나님에게 물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다의 모레처럼 하늘의 별처럼 자손이 많아질 것이라고 이야기 하셨다. 그러자 무엇으로 그것을 알 수 있을지를 물었다. 하나님께 증거를 요구한 것이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15:10절과 같이 이야기하셨다. 아브람은 언약을 세우려고 하시는 하나님의 의도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해가지고, 어둠이 짙게 깔리니, 연기 나는 화덕과 타오르는 횃불이 갑자기 나타나서, 쪼개 놓은 희생제물 사이로 지나갔다.

바로 그 날, 주님께서는 아브람과 언약을 세우시고 말씀하셨다. 내가 이 땅을, 이집트 강에서 큰 강 유프라테스에 이르기까지를 너의 자손에게 준다.
창세기 15:17-18

하나님과 아브람의 언약은 바로 그 날 세워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고대시대의 언약에 대한 의식은 주군과 가신 사이에 채결되는 경우가 많았고 주로 가신이 주군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의식으로 쪼갠 짐승사이를 지나가는 것으로 진행된다. 하지만 창세기 15:17-18절에서의 언약식에서는 약속의 주체인 하나님이 쪼갠 짐승사이를 지나갔다. 이는 이 언약이 파기되는 경우 하나님께서 책임지겠다는 것이다. 즉, 아브람의 불순종도 하나님이 책임지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아브람은 보기 좋게 이 언약을 어긴다.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낳았기 때문이다. 이 책임은 이후 예수님의 피를 통해 아브람의 불순종에 대한 책임을 지시게 된다.

식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시고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다. 너희가 마실 때마다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억하여라."
고린도전서 11:25

너의 죄로 인해 내가 죽는다는 것이 바로 복음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죽으심이 있었기 때문에 언약이 파기되지 않는 것이다.

내가 그들의 불의함을 긍휼히 여기겠고, 더 이상 그들의 죄를 기억하지 않겠다.
히브리서 8:12

이것이 바로 언약 복음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히브리서 13:20절에서 하나님이 위대한 목자가 되는 것이다.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는 목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약을 통해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은혜이다. 은혜는 언약을 통해 주어진 은혜와 구원에 감사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은혜안에 거하며 순종의 선한일을 해야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은 바로 내가 죽는 삶이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하셨으니

이것으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히브리서 13:4

모두 혼인을 귀하게 여겨야 하고, 잠자리를 더럽히지 말아야 합니다. 음행하는 자와 간음하는 자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https://youtu.be/66i7WrX6zrQ

  1. 결혼은 귀한 것

결혼이 어려워지는 이유는 다양하다. 하지만 결혼을 너무 지나치게 귀하게 여긴다는 사실이 결혼을 더욱 어렵게 한다. 특히 나의 능력에 대한 증명, 나의 행복을 위한 결혼, 나를 위해 무엇을 해 주는 가가 결혼의 이유가 된다면 결혼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결혼 후에도 마찬가지이다. 서로를 하나님보다 귀하게 여긴다면 오히려 시험에 들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마음의 공허함을 상대에게 요구한다면 이는 실망과 미움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 렘 2:13에서는

'참으로 나의 백성이 두 가지 악을 저질렀다. 하나는, 생수의 근원인 나를 버린 것이고, 또 하나는, 전혀 물이 고이지 않는, 물이 새는 웅덩이를 파서, 그것을 샘으로 삼은 것이다.'

즉, 생수의 근원을 착각한 것이다. 진정한 결혼에서의 행복이라는 것은 하나님과 나, 상대의 균형적인 삼각관계에서 하나님으로부터의 은혜를 상대에게 흘려보내는 것이다. 렘 31:32에서는

'이것은 내가 그들의 조상의 손을 붙잡고,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나오던 때에 세운 언약과는 다른 것이다.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었도, 그들은 나의 언약을 깨뜨려 버렸다. 나 주의 말이다.'

출애굽은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님과의 일종의 결혼 언약인데 거기서 파생된 십계명을 이스라엘 백성이 어김으로써 언약이 깨어져 버린 것이다. 그 단적인 예가 바로 '바알'을 우상으로 삼은 것이다. 바알의 뜻은 주인이라는 뜻과 남편이라는 뜻이 있다. 하지만 하나님은 여기서 관계를 끝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하고자하는 마음의 '새언약'을 우리와 맺었다. 렘 31:32절에

내가 그들의 허물을 용서하고, 그들의 죄를 다시는 기억하지 않겠다. 나 주의 말이다.'

라고 말씀하고 있다.

 

 

2. 잠자리를 더럽히지 말아야 한다.

그리스의 플라톤에서 어거스틴에 이르는 철학에서 '성'에 대한 잘못된 가르침이 있었다. 하지만 성경에서 잠자리는 부부관계가 아닌 다른 사람과 하지 않는 것으로 가르치고 있다. 창 2:24절에서는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한 몸을 이루는 것이다.'

 

창세기 2:24절 이후부터 '아내'라는 용어가 등장하기 시작한다. 잠자리, 성관계는 생명탄생의 수단이다. 따라서 결혼이라는 언약의 테두리 안에서 생명이 가장 안전하게 지켜지는 하나님의 원리인 것이다. 그리고 성관계를 결혼 언약이전에 많이 경험한다면 당연히 만족도가 떨어지게 되고, 이는 이혼의 또 다른 이유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하나님에 대한 경이로움을 깨닫는 다른 이유로 발전한다. 고전 6:18에서는

음행을 피하십시오. 사람이 짖는 다른 모든 죄에는 자기 몸 밖에 있는 것이지만, 음행을 하는 자는 자기 몸에다가 죄를 짖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의 심판과 은혜로 이야기를 발전시킬 수 있습니다.

 

 

3. 하나님의 심판과 은혜입니다.

히브리서 13:4 후반절에서

'음행하는 자와 간음하는 자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심판은 어떤 것일까요?

로마서 1:24에서는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마음의 욕정대로 하도록 더러움에 그대로 내버려 두시니, 서로의 몸을 욕되게 하였습니다.'

라고 이야기 하고 있는데 하나님의 내버려두심, 하나님의 무관심이야말로 가장 큰 심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이신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사생자의 관계가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은혜로 구원해 주십니다. 이는 위에서 살펴본 렘 31:34절에 나와 있습니다. 즉,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신 은혜로 우리는 다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결혼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언약을 알아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대속의 은혜로 현재 이후부터 거룩하고 깨끗한 삶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내가 상대를 이용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돌아봄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시간이 더 많아져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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