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깊이의 문제라고 봅니다. 오감성경은 여러분이 깊은 샘을 길어 올릴 수 있도록, '할 수 있겠구나!' 하는 가능성의 기대와 '어떻게 하지?' 하는 방법의 예를 제시합니다. 여러분의 교육환경, 충분히 비옥하십니까? 척박한 지금의 교회교육 환경에 물을 대는 길이 되고 싶습니다!
에덴, 우르-하란, 애굽, 가나안
창세기의 주요 지리무대입니다. 각 장소마다 일어난 '사건'이 있고, 사건 안에 사람이 있습니다. 오감성경은 창세기 전체 내용을 사건과 사람으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주는 '지식'을 전달해주지 않습니다.
창세기를 들여다 볼 때 쉽고 재밌고 빠르고 바르게 볼 수 있도록 도울 뿐입니다. 그러니까 창세기 50장이 여러분 안에서 쉽게 정리되고 빠르게 이해하고 재밌게 이해될 수 있도록, 그래서 바르게 가르칠 수 있도록 돕습니다. 그 바른 길이라는 것은 결국 창세기 1장부터 50장까지, 내용의 정리 뿐 아니라 그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도록 돋움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캠프용 교재나 여러분에게 드릴 186페이지 수련회 교재나 뒷 부분에 “창세기에서 발견한 예수 그리스도” 라는 페이지가 있습니다. 잘 알아도 알아야 할 예수를 알지 못하면 안다 할 수 없고 보았어도 예수를 발견하지 못하였다면 봤다고 할 수 없는 것일테니까요!
설렙니다. 일주일 남았습니다. 자료도 손보고 있고 내용도 다듬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늘 고민하시는 깊이의 문제를 해결하는 첫 매듭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하며 ‘그래, 해봐야겠다!’하는 마음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뭐 새로울게 있겠습니까… 성경 처음부터 끝까지 바르게 가르쳐 보겠다고 하는 여러분에게 우리 같은 길 가는데 외롭지 않노라고 힘 얻어가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새로운 방법을 찾으려 하거든, 지금 해야 할 것은 제대로 해내었는가 부터 되짚어 보며 다음 주 월요일, 우리 동지애로 만나봅시다!
18 유다가 그에게 가까이 가서이르되 내 주여 원하건대 당신의 종에게 내 주의 귀에 한 말씀을 아뢰게 하소서 주의 종에게 노하지 마소서 주는 바로와 같으심이니이다 19 이전에 내주께서 종들에게 물으시되 너희는 아버지가 있느냐 아우가 있느냐 하시기에
20 우리가 내 주께 아뢰되 우리에게 아버지가 있으니 노인이요 또 그가 노년에 얻은 아들 청년이 있으니 그의 형은 죽고 그의 어머니가 남긴 것은 그뿐이므로 그의아버지가 그를 사랑하나이다 하였더니
21 주께서 또 종들에게 이르시되 그를 내게로 데리고 내려와서 내가 그를 보게 하라 하시기로
22 우리가 내 주께 말씀드리기를 그아이는 그의 아버지를 떠나지 못할지니 떠나면 그의아버지가 죽겠나이다
23 주께서 또 주의 종들에게 말씀하시되 너희 막내 아우가 너희와 함께 내려오지 아니하면 너희가 다시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하시기로
24 우리가 주의 종 우리 아버지에게로 도로 올라가서 내 주의 말씀을 그에게 아뢰었나이다
25 그 후에 우리아버지가 다시 가서 곡물을 조금사오라 하시기로
26 우리가 이르되 우리가 내려갈 수 없나이다 우리 막내 아우가 함께 가면 내려가려니와 막내 아우가 우리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그 사람의 얼굴을 볼 수 없음이니이다
27 주의 종 우리아버지가 우리에게 이르되 너희도 알거니와 내아내가 내게 두 아들을 낳았으나
28 하나는 내게서 나갔으므로 내가 말하기를 틀림없이 찢겨죽었다 하고 내가 지금까지 그를 보지 못하거늘
29 너희가 이 아이도 내게서 데려 가려하니 만일 재해가 그 몸에 미치면 나의 흰 머리를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게 하리라 하니
30 아버지의생명과 아이의생명이 서로 하나로 묶여 있거늘 이제 내가 주의 종 우리 아버지에게 돌아갈 때에 아이가 우리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31 아버지가 아이의 없음을 보고 죽으리니 이같이 되면 종들이 주의 종 우리 아버지가 흰 머리로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게 함이니이다
32 주의종이 내 아버지에게 아이를 담보하기를 내가 이를 아버지께로 데리고 돌아오지 아니하면 영영히 아버지께 죄짐을 지리이다 하였사오니
33 이제 주의 종으로 그 아이를 대신하여 머물러 있어 내 주의종이 되게 하시고 그 아이는 그의 형제들과 함께 올려 보내소서
34 그 아이가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내가 어찌 내 아버지에게로 올라갈 수 있으리이까 두렵건대 재해가 내 아버지에게 미침을 보리이다
해설 및 연구/묵상_오감성경사역연구원 김성찬 목사
창세기 후반부에서 가장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38장에 나온 유다의 비위사건이다. 37장의 내용과 39장의 이야기가 전개되는 중에 전혀 관련성 없어 보이는 듯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성경의 배치나 전체적인 흐름을 두고 본다면 창세기 38장에 등장하는 유다의 이야기가 창세기 후반부 내용에 중요한 부분인 것을 짐작 할 수 있지 않을까? 그 중심엔 유다가 있는데, 왜 창세기 후반부에서 유다를 짚고 넘어가야 하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야곱의 네 번째 아들로 태어난 유다는 29장에서 붙여진 이름의 의미를 소개한 다음, 창세기 37장에 등장한다. 요셉을 팔아넘겨버리자는 무지막지한 제안을 한 사람이 유다이다. 한 편 에서는 요셉을 구덩이에서 건져내고자 하는 책략이었다고 하는데, 그건 너무 터무니없는 억측이랄 수밖에 없다. 놀라운 것은, 유다가 ‘제안’을 했을 때, 다른 형제들이 다른 의견을 내거나 반대를 하거나 하지 않고 유다가 하자는 대로 했다는 것이다. 형제들 사이에서 상당한 신뢰와 리더십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으로 해석 될 수 있는 대목이다. 여하튼, 유다의 의견대로 요셉은 팔려간다. 어쩌면 형제들이 요셉을 팔아넘긴 것이 아니라 유다가 넘겼다 해도 과장된 것은 아니겠다.
그렇게 요셉을 판 후, 짐승에게 물려 죽었다고 위장조치를 한 형제들은, 요셉이 돌아오지 않는 것을 보고 통곡을 하고, 그 모습을 형제들이 본다. 요셉이 목숨을 잃을 정도로 해를 당하였다면, ‘너희들은 괜찮으냐!’ 정도 물어봐 줄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성경엔 아무이야기도 나타나지 않는다. 비록 자기들, 정확하게 말하자면, 자기 의견대로 요셉이 팔아치워졌지만 죽은 줄 알고 있는 그 상황에서 목숨을 부지한 다른 아들들에게는 관심을 보이지 않는 야곱을 보며 유다는 솔직하게 이야기 하지 보단 집을 나서게 된다. 실망을 했을 수도 있고, 상처를 받았을 수도 있었을지 모른다. 아버지에겐 오직, 요셉과 베냐민 뿐이라는 것이 자기 눈앞에 현실로 확인된 것이기 때문이리라!
집을 나간 유다! 가출이라면 가출이다. 유다가 형제들을 떠나 이방 사람과 교제하며 가정을 꾸리게 된다. 성경 38장의 이야기다. 그 이야기의 전개대로 유다는 세 아들을 낳고 어느덧 장남이 장성하여 결혼을 하게 되는데...! 이럴 수가! 우리가 알다시피 두 아들을 잃게 된다. 엘, 오난을 잃고서야 깊이 무엇인가 깨닫게 된 유다! 무엇을 깨달았을까! 바로, 아들을 잃어버린 아비의 마음을 헤아리게 된 것이다. 막내 셀라마저 죽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며느리를 잠시 돌려보내지만, 며느리 다말은 그럴 수 없었다. 당시 풍습 상 아이를 낳지 못한 채 친정으로 가게 되면 여자로서의 취급은 물론 홀대가 확연하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알다시피 다말의 지략으로 유다를 통해 쌍둥이를 낳는다. 엘, 오난을 잃어버린 대신에 베레스와 세라! 유다는 비록 아들을 잃었으나 두 아들을 주심으로 얼마간의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그것이 비위로 인해 일어난 것일지라도 그마저도 하나님은 선으로 바꾸시는 것을 경험하게 된 것이다.
유다는 아들을 잃어버린 다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을 것이다. 야곱이 요셉을 잃고 통독하며 마음을 놓아 버렸던 것을 보며 서운한 마음과 원망마저 가졌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며 그것이 얼마나 철부지 같았었는지 깨달았을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 앞에 사실 있는 그대로 이야기 할 수 없는 유다의 마음은 그저 매일같이 속죄하는 기분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38장에서 시간이 흐른 후, 39장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창세기 38장의 이야기가 최소 20년의 간극을 가지고 전개되는 동안 39장의 이야기도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요셉이 총리가 되는 과정과 총리가 되어 풍년 7년을 보내고 흉년 2년 째, 야곱에게 닥친 기근은 또 다른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요소로 작용한다.
흉년 2년 째, 요셉이 총리가 된지 9년이 되는 때, 요셉과 형제들은 대면하게 된다. 물론 요셉만 알아 볼 뿐, 베냐민을 제외한 형제들의 면면을 확인한 요셉은 그의 동생, 베냐민의 신변을 확인 할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시므온은 볼모로 베냐민을 데려오라는 것을 두고 복귀중인 유다 일행은, 그 자체로 야곱에게 충격을 준다. 농담 같지만, 형제들이 몰려서 움직이기만 하면 꼭 한 명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시므온이 없어 진 줄 알았으나 자초지종을 들은 야곱은 한 번 더 절망한다. 창세기 42장 38절에 그 내용이 잘 나와 있는데, 야곱은 요셉에 이어 그의 유일한 형제 베냐민까지 형제들 손에 맡겨야 한다는 것이 너무도 감당하기 힘든 현실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총리와 약속한 것은 어길 수 없고... 야곱의 완고함이 형제들의 비행에 비추어 보면 충분히 이해되는 부분이다. 베냐민을 놓아줄 수 없는 마음! 그 때, 유다의 활약이 돋보인다.
창세기 43장 3~5절이다. 3유다가 아버지에게 말하여 이르되 그 사람이 우리에게 엄히 경고하여 이르되 너희 아우가 너희와 함께 오지 아니하면 너희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하였으니 4아버지께서 우리 아우를 우리와 함께 보내시면 우리가 내려가서 아버지를 위하여 양식을 사려니와 5아버지께서 만일 그를 보내지 아니하시면 우리는 내려가지 아니하리니 그 사람이 우리에게 말하기를 너희의 아우가 너희와 함께 오지 아니하면 너희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르우벤이 이야기 했을 때에는 아무 반응 없던 야곱이었다. 그러나 유다가 나서서 이런 이야기를 하니 반응을 한다. 처음엔 격정적인 반응이었고, 원인과 결과 중심으로 원망같은 책망을 하는 야곱이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한 마디를 더한 유다의 이 말에 야곱은 순응한다.
창세기 43장 8~10절. 8유다가 그의 아버지 이스라엘에게 이르되 저 아이를 나와 함께 보내시면 우리가 곧 가리니 그러면 우리와 아버지와 우리 어린 아이들이 다 살고 죽지 아니하리이다 9내가 그를 위하여 담보가 되오리니 아버지께서 내 손에서 그를 찾으소서 내가 만일 그를 아버지께 데려다가 아버지 앞에 두지 아니하면 내가 영원히 죄를 지리이다 10우리가 지체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벌써 두 번 갔다 왔으리이다
야곱과 유다는 아들을 잃어본 아픔이 있는 사람들이다. 두 부자만이 공감 할 수 있는 ‘아비의 마음’ 이라는 것이 흐른다. 유다가 처음에는 야곱에게 그냥 이야기 했을지 몰라도, 여기서는 다른 분위기다. 야곱의 마음을 헤아리는 아비의 마음으로 다가서는 유다의 간곡함에 야곱도 마음을 돌이킨다. 유다가 직접 담보가 되겠다는 이야기에 감동을 받아서 그랬는지 알 수는 없는 부분이겠으나 르우벤이 자기의 두 아들을 담보하겠다는 것과는 격이 다른 이야기다. 그렇게 시므온을 제외한 유다 일행은 요셉 앞에 다시 서게 된다.
은잔으로 베냐민을 형제들에게서 떼어놓고자 한 요셉의 계략에 말려든 유다 일행! 그들은 절망에 빠지게 된다. 베냐민은 더더욱 놀랐을 것이다. 항변할 수도, 누구를 원망 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성경이 형제들을 이야기 할 때, ‘유다가 그의 형제들’ 이라는 표현을 한 것을 보면 유다가 형제들 사이에 상당한 위치였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래서 절망 속에 있는 형제를 대신하여 유다가 이야기 한다.‘우리와 이 잔이 발견된 자가 다 내 주의 노예가 되겠나이다(창 44:14)’이렇게 이야기 한 것은, 베냐민 없이 복귀하는 것은 의미가 없기 때문인 것을 유다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다의 항변에도 상관없이 상황은 더 심각해지고 만다. 총리는 그를 뜻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그에게 더욱 간절하게 이야기 한다. 눈물 없인 읽을 수 없는 대목이다. 아들을 잃어버린 아비의 마음이 무엇인지 안 유다는, 그 아비의 마음으로 총리에게 이야기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18유다가 그에게 가까이 가서 이르되 내 주여 원하건대 당신의 종에게 내 주의 귀에 한 말씀을 아뢰게 하소서 주의 종에게 노하지 마소서 주는 바로와 같으심이니이다 19이전에 내 주께서 종들에게 물으시되 너희는 아버지가 있느냐 아우가 있느냐 하시기에 20우리가 내 주께 아뢰되 우리에게 아버지가 있으니 노인이요 또 그가 노년에 얻은 아들 청년이 있으니 그의 형은 죽고 그의 어머니가 남긴 것은 그뿐이므로 그의 아버지가 그를 사랑하나이다 하였더니 21주께서 또 종들에게 이르시되 그를 내게로 데리고 내려와서 내가 그를 보게 하라 하시기로 22우리가 내 주께 말씀드리기를 그 아이는 그의 아버지를 떠나지 못할지니 떠나면 그의 아버지가 죽겠나이다 23주께서 또 주의 종들에게 말씀하시되 너희 막내 아우가 너희와 함께 내려오지 아니하면 너희가 다시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하시기로 24우리가 주의 종 우리 아버지에게로 도로 올라가서 내 주의 말씀을 그에게 아뢰었나이다 25그 후에 우리 아버지가 다시 가서 곡물을 조금 사오라 하시기로 26우리가 이르되 우리가 내려갈 수 없나이다 우리 막내 아우가 함께 가면 내려가려니와 막내 아우가 우리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그 사람의 얼굴을 볼 수 없음이니이다 27주의 종 우리 아버지가 우리에게 이르되 너희도 알거니와 내 아내가 내게 두 아들을 낳았으나 28하나는 내게서 나갔으므로 내가 말하기를 틀림없이 찢겨 죽었다 하고 내가 지금까지 그를 보지 못하거늘 29너희가 이 아이도 내게서 데려 가려하니 만일 재해가 그 몸에 미치면 나의 흰 머리를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게 하리라 하니 30아버지의 생명과 아이의 생명이 서로 하나로 묶여 있거늘 이제 내가 주의 종 우리 아버지에게 돌아갈 때에 아이가 우리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31아버지가 아이의 없음을 보고 죽으리니 이같이 되면 종들이 주의 종 우리 아버지가 흰 머리로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게 함이니이다 32주의 종이 내 아버지에게 아이를 담보하기를 내가 이를 아버지께로 데리고 돌아오지 아니하면 영영히 아버지께 죄짐을 지리이다 하였사오니 33이제 주의 종으로 그 아이를 대신하여 머물러 있어 내 주의 종이 되게 하시고 그 아이는 그의 형제들과 함께 올려 보내소서 34그 아이가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내가 어찌 내 아버지에게로 올라갈 수 있으리이까 두렵건대 재해가 내 아버지에게 미침을 보리이다
여기서도 유다는 자신이 볼모가 되겠으니 베냐민을 놓아주라는 이야기를 한다. 아버지를 위해 기꺼이 그렇게 하겠다는 뜻을 보인다. 유다가 앞서서 이야기한 이 이야기를 듣는 요셉은 격동하여 한 참을 울고 나서야 자신이 요셉인 것을 밝혔다. 드라마 같은 장면이다. 요셉은 귀가하는 형제들에게 의전차량(?)을 제공했을 것이다. 그리고 야곱에게 요셉의 상황을 이야기 하고 야곱은 고센으로 옮긴다. 그리고 이주 후, 요셉과의 연락망으로 유다가 사용된다(창 46:28~34). 형제들 사이는 물론이고 요셉과 아버지 야곱 사이를 이어주는 핵심적 가교역할을 한 사람이 유다이다. 유다의 활약으로 온 가족이 만날 수 있었고, 한 가족인 것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야곱은 유다의 이런 마음을 헤아렸을 것이다. 이는 그를 축복하는 대목으로 알 수 있다. 창세기 49장 8~12절이다.
8유다야 너는 네 형제의 찬송이 될지라 네 손이 네 원수의 목을 잡을 것이요 네 아버지의 아들들이 네 앞에 절하리로다9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내 아들아 너는 움킨 것을 찢고 올라갔도다 그가 엎드리고 웅크림이 수사자 같고 암사자 같으니 누가 그를 범할 수 있으랴10규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통치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이르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11그의 나귀를 포도나무에 매며 그의 암나귀 새끼를 아름다운 포도나무에 맬 것이며 또 그 옷을 포도주에 빨며 그의 복장을 포도즙에 빨리로다12그의 눈은 포도주로 인하여 붉겠고 그의 이는 우유로 말미암아 희리로다
다른 형제들이 누릴 수 없는 풍요로움과 번성, 심지어 왕권에 대한 축복은 유다의 이름 그대로의 성취이다. 유다를 통해 야곱의 인생 황혼기에 누릴 수 있었던 하나님의 언약이 성취를 보며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보답이기도 할 것이다. 놀라운 것은, 야곱의 축복대로 유다의 자손에게 그대로 성취되었다는 사실이다.
다리 놓는 역할, 끊어진 관계를 이어주는 자로서의 가장 본형을 보여준 사람, 유다! 그의 아품이 곧 야곱의 아픔을 헤아릴 수 있는 것이었으며 야곱이 돌이킬 수 있는 근거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무너진 야곱의 가정을 세워주고 견고하게 하며 참된 연합과 일치를 이끌어 낸, 너무나도 귀한 일을 감당하였다. 그래서 유다를 Bridge Focus 라고 하였다. 얼마나 귀한가!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단절된 이 세상과 하나님 사이를, 세상 속의 단절된 관계들을 회복하고 이어주는 다리 놓는 것이야 말로 이 시대 우리의 역할이 아닐까!
진행시나리오
[활동] 캠프 초청자 작정하기 [준비물] 작정서/기도카드 [진행내용] 다리 놓는 역할을 감당하여 끊어진 관계를 회복하고 하나님의 언약이 성취되는 복을 누릴 수 있었던 유다의 삶을 따라 캠프(성경학교/수련회)에 초대 할 친구를 작정하고 이름을 넣어 기도하며 결단하는 시간입니다.
분반나눔
분반나눔시 주의사항
다그치듯 하지 않습니다. 설교를 잘 들었는지 그렇지 않은지는 점검하고 짚어주는 시간이며 활동한 내용을 통해 말씀에 대한 이해와 반응을 확인하는 시간입니다. 아이들은 배운 것을 작게라도 활동에 참여한 후에 나눔을 한 것이므로, 어떤 형태로든 자기의 감정과 느낌을 이야기 하게 됩니다. 짧게 한 마디 하더라도 최대한 칭찬과 격려로 나눔을 이끌어 가시기 바랍니다. 나눔 진행 순서는 다음과 같습니다(현장의 상황에 따라 다르게 진행가능하며 유동적으로 접목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점검 및 활동내용 소감 나눔] → [말씀을 바탕으로 한 일주일의 각오] → [암송구절 제창] → [축복 기도 후 해산]
1. 자, 다같이 오늘의 본문과 제목이 어떻게 되지? 2. 창세기를 이루는 두 기둥은? ‘B4', 'F4' 3. 창세기를 이루는 두 기중에서 B4와 F4 네 가지는 뭐지? ‘창조’, ‘타락’, ‘심판’, ‘분산’ /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4. 오늘 우리가 살펴 본 사람은 누구인지 이야기 해보고, 소개를 해봅니다. 5. 최근, 친구사이를 화해시켰다거나 자기를 통해서 좋아지고 달라진 것을 경험한 적이 있다면? 6. 유다의 다리 놓는 역할처럼,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꿈과 비전, 소원을 통해서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 어떤 식으로 다리 놓는 역할을 할 수 있을까? 7. 이번 주, 머릿속 말씀을 다같이 읽어보고 마무리 하자!
창세기 49:10
암송순서
묵상포인트(관계묵상)
10 규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통치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이르리니 그에게 모든백성이 복종하리로다
1. 골격보기 첫째주절:이르리니 둘째주절:백성이복종하리로다
2. 살붙이기 ① 어떤 백성이 복종합니까? → 모든 ② 모든 백성이 누구에게 복종합니까? → 그에게 ③ 언제까지 이른다고 합니까? → 실로가 오시기까지 ④ 무엇이 떠나지 않는다고 합니까? → 규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통치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기를
3. 전체암송
1. 모든 백성이 유다에게 복종할 것입니다.
야곱은 유다에 대해서 유언합니다. 통치자가 유다의 후손에서 나오고, 백성들은 그에게 복종한다는 것입니다. 죽기 전에 자손들에게 남길 유언은 무엇입니까?
29 이스라엘이 죽을 날이 가까우매 그의 아들 요셉을 불러 그에게 이르되 이제 내가 네게 은혜를 입었거든 청하노니 네 손을 내 허벅지 아래에 넣고 인애와 성실함으로 내게 행하여 애굽에 나를 장사하지 아니하도록 하라
30 내가 조상들과 함께 눕거든 너는 나를 애굽에서 메어다가 조상의 묘지에 장사하라 요셉이 이르되 내가 아버지의 말씀대로 행하리이다
31 야곱이 또 이르되 내게 맹세하라 하매 그가 맹세하니 이스라엘이 침상 머리에서 하나님께 경배하니라
본문 창세기 48:1-7
1 이 일 후에 어떤사람이 요셉에게 말하기를 네 아버지가 병들었다 하므로 그가 곧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과 함께 이르니
2 어떤사람이 야곱에게 말하되 네 아들요셉이 네게 왔다 하매 이스라엘이 힘을 내어 침상에 앉아
3 요셉에게 이르되 이전에 가나안 땅 루스에서 전능하신하나님이 내게 나타나사 복을 주시며
4 내게 이르시되 내가 너로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여 네게서 많은 백성이 나게 하고 내가 이 땅을 네 후손에게 주어 영원한 소유가 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5 내가 애굽으로 와서 네게 이르기 전에 애굽에서 네가 낳은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내 것이라 르우벤과 시므온처럼 내 것이 될 것이요 6 이들 후의 네소생은 네 것이 될 것이며 그들의유산은 그들의 형의 이름으로 함께 받으리라
7 내게 대하여는 내가 이전에 밧단에서 올 때에 라헬이 나를 따르는 도중 가나안 땅에서 죽었는데 그곳은 에브랏까지 길이 아직도 먼곳이라 내가 거기서 그를 에브랏 길에 장사하였느니라 (에브랏은 곧 베들레헴이라)
암송
창 47:27 이스라엘 족속이 애굽 고센 땅에 거주하며 거기서 생업을 얻어 생육하고 번성하였더라
창 48:4 내게 이르시되 내가 너로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여 네게서 많은 백성이 나게 하고 내가 이 땅을 네 후손에게 주어 영원한 소유가 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1. 골격보기 27절 첫째주절: 이스라엘 족속이 거주하며 둘째주절: 생육하고 번성하였더라 4절 첫째주절: 이르시되 둘째주절: 내가 나게 하고 셋째주절: 내가 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2. 살붙이기 27절 ① 이스라엘 족속이 어디에 거주합니까? → 애굽 고센 땅에 ② 어떻게 이스라엘 족속이 생육하고 번성 하였습니까? → 생업을 얻어 ③ 어디서 생업을 얻었습니까? → 거기서
4절 ① 누구에게 이르십니까? → 내게 ② 내가(하나님) 무엇이 나게 합니까? → 많은 백성이 ③ 누구에게서 많은 백성이 나옵니까? → 네게서 ④ 하나님이 어떻게 많은 백성이 나오게 하십니까? → 너로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여 ⑤ 내가(하나님) 무엇이 되게 하리라 하십 니까? → 영원한 소유가 ⑥ 내가(하나님) 어떻게 영원한 소유가 되 게 하신다 하십니까? → 이 땅을 네 후손에게 주어
3. 전체암송
1. 이스라엘이 거주하며 생육하고 번성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생육하고 번성할 수 있도록 애굽 고센 땅에 거주하게 하셨고, 생업을 주셨습니다.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먹을까 걱정하지 않도록 예비하시고 인도하셨습니다.
2. 하나님이 많은 백성이 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생육하고 번성할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자손이 번성하는 것은 하나님의 복과 은혜로 됩니다.
3. 하나님이 이 땅을 영원한 소유가 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신대로 가나안 땅을 후손에게 영원한 소유로 주실 것을 확인해주십니다. 하나님은 이 약속을 여러 차례 말씀하셨습니다. 약속을 이루실 하나님을 기대하고 소망하라는 것입니다.
해설 및 연구/묵상_김성찬 목사
굴곡진 여정이다. 인생의 절반을 집에서 보내고 바깥 세상에 발을 들여 놓은 이후, 그 후반부의 사건으로만 본다면 결코 쉬운 인생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야곱에게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시고 권능을 발하셔서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신 것을 보면, 하나님의 은혜가 임할 수 있는 사람의 조건이라는 것은 애시당초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의 선대에서부터 하나님이 ‘그의 믿음을 보시고 그를 의로 여기사’ 복을 주신 것을 보면, 야곱이 누리는 인생 후반부의 은혜는 믿음의 결과인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보장된 보상이 제시된다고 하여 (언제 끝날 지도 모르는)현실의 처절함을 맛보라 한다면, 선뜻 발을 내딛을 이가 누가 있을까! 그래서 야곱이 멋진 것이다. 끝까지 그 발걸음을 타박타박 걸어도 걷는 것을 멈추지 않았던 인생이 야곱이기 때문이다. 벧엘에서 하나님을 첫 대면한 후, 그에게 주신 약속을 끈질기게 붙잡으면서 다음 걸음의 근거로 삼았던 야곱이다. 아들을 잃은 슬픔과 현실의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아픔을 겪었을 지라도 그가 어그러지지 않았던 것은, 언제나 하나님은 동일하게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우리가 알다시피 야곱이 요셉과 재회하기 전, 가솔들을 데리고 애굽으로 내려 갈 때, 하나님은 그에게 나타나사 강조하시고 힘주어 말씀하신다.
창46:1이스라엘이 모든 소유를 이끌고 떠나 브엘세바에 이르러 그의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께 희생제사를 드리니2그 밤에 하나님이 이상 중에 이스라엘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야곱아 야곱아 하시는지라 야곱이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3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하나님이라 네 아버지의 하나님이니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4내가 너와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겠고 반드시 너를 인도하여 다시 올라올 것이며 요셉이 그의 손으로 네 눈을 감기리라 하셨더라
하셨던 말씀을 가만 살펴보면, 이런 류의 말씀을 야곱 처음에게 하신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브라함에게 하셨던 말씀의 내용과 유사하며 이삭에게 주신 말씀과 비슷하다. 심지어 애굽으로 내려가기 전, 다시 한 번 힘주시어 강조하시는 어조의 말씀으로 주신 이 말씀도 같은 맥락이다. 바로, 이런 부분이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기억 할 수 밖에 없는 매력이라 하겠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처한 상광과 겪었던 환경이 달랐을 것인데 그들에게 하신 말씀은 동일하다는 것이다. 결국, 상황과 환경이 달라질지라도 처음 주신 말씀만 끝까지 붙들고 기억하면 결국 그 말씀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신 말씀으로 증명이 되고 있다. 답은 나와 있다. 하나님의 말씀, 그것 밖에 없다.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며 우리의 모든 상황을 통찰하고 계신다. 늘 깨달아 알 수 있고 깨우칠 수 있도록 돕는 분까지 곁에 두셨으니 적어도 우리는 야곱보다는 나은 조건이 아닌가! 자, 이제 무엇을 듣고 그것을 어떻게 기억 할 것인가?
신앙의 전수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수이다. 지금 나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다음 세대에게 들려주는 것이다. 그들로부터 어른 세대들에게 임한 하나님의 말씀을 바라보게 하여 나에게 임한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에게도 동일하게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이 다음 세대를 위한 참 소망이다. 아브라함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이삭이 들었고, 야곱이 마음에 담았으며 이를 그의 자녀들에게 전수하는 장면이 펼쳐지는 창세기 48장은 야곱의 인생을 무시 할 수 없는 힘이다. 강요도 아니고, 강압적으로 애써 이끌려고 하는 것도 없다. 하나님과 동행하며 그와 함께 하셨던 하나님을 자녀들이 보고 알 수 있도록 있는 그대로 열어 둔 것이다. 죽기까지 아등바등 붙들고 있어야 할 것은, 재산이 아니라 믿음의 유산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그대로 그에게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 그 열망이다. 야곱이 바라보았던 하나님의 약속, 그 약속이 그를 이끌었으며 그가 죽기 전, 유언을 통해서도 확인 할 수 있는 바이다. 부모로, 교사로, 앞서 말씀을 맡은 자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단 하나이다. 나에게 처음 주신 하나님의 말씀, 그것이 지금 나에게 이루어지고 있는가! 바로 이것...!
진행 시나리오
[활동] 카드섹션 To 야곱의 삶
[준비물] 스케치북 또는 이면지, 펜
[진행내용]
야곱의 삶을 카드뉴스 형태로 제작하는 것으로, 먼저 모둠별로 야곱의 삶을 키워드로 정리하도록 하고 그 키워드를 중심으로 카드뉴스를 제작합니다. 한 장에 한 키워드씩 넣고 사진(그림)도 넣어서 야곱이 삶이 어떠하였는지 알 수 있도록 합니다. 단순히 삶을 추적하고 사건을 정리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그 안에서 하나님의 섭리와 은혜가 무엇인지, 즉 하나님의 약속이 어떻게 그의 일생을 이끌었지 발견하도록 합니다.제작 후에는 게시를 해도 좋고, 반 별로 나와서 발표를 해서 각자의 다른 시각이 주는 즐거움을 만끽하도록 합니다.
분반나눔
분반나눔시 주의사항
다그치듯 하지 않습니다. 설교를 잘 들었는지 그렇지 않은지는 점검하고 짚어주는 시간이며 활동한 내용을 통해 말씀에 대한 이해와 반응을 확인하는 시간입니다. 아이들은 배운 것을 작게라도 활동에 참여한 후에 나눔을 한 것이므로, 어떤 형태로든 자기의 감정과 느낌을 이야기 하게 됩니다. 짧게 한 마디 하더라도 최대한 칭찬과 격려로 나눔을 이끌어 가시기 바랍니다. 나눔 진행 순서는 다음과 같습니다(현장의 상황에 따라 다르게 진행가능하며 유동적으로 접목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점검 및 활동내용 소감 나눔] → [말씀을 바탕으로 한 일주일의 각오] → [암송구절 제창] → [축복 기도 후 해산]
1. 자, 다같이 오늘의 본문과 제목이 어떻게 되지?
2. 창세기를 이루는 두 기둥은? ‘B4', 'F4'
3. 창세기를 이루는 두 기중에서 B4와 F4 네 가지는 뭐지? ‘창조’, ‘타락’, ‘심판’, ‘분산’ /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4. 야곱이 죽은 나이를 알아보고 그가 에서를 피하여 집을 나왔을 때가 몇 살 때였는지 역으로 계산해보자!(Hint: 130세 때 애굽으로 옴, 그 때 흉년 2년 때였으므로 요셉의 나이 39세)
5. 애굽으로 가기 전 하나님은 야곱에게 나타나셔서 말씀을 하십니다(창 46:1~4). 그 내용이 누구에게 하셨던 내용과 비슷합니까?
6. 야곱이 창세기 49장에서 12아들에게 축복을 하는데요, 가장 긴 구절로 축복해준 아들은 누구입니까?
사역하는 교회는 5월 어버이 주일을 기점으로 현장예배 기지개를 켜려고 한다. 좋은 일이다. 온라인으로 예배를 송출한 교회들은 막강한 장비와 인력으로 수준높은 콘텐츠를 생산해주었다. 초기 "인터넷 방송"이 가능한 것으로 감격했던 교회들은 점점 찐방송국으로 #진화 하고 있다. 게다가 어지간한 #전도사, #목사 는 콘텐츠 생산에 오프라인 사역 이상의 에너지를 쏟으며 그야말로 '창조적 사역'의 진면모를 보여주었다. 교회를 아우르는 모든 자원을 집합 한 4차 산업혁명시대의 일상화를 대비한 합리적인 대안이다. 결론을 내리는 바, 이것이 한국교회의 저력이고 힘이라고 본다. 다만 공감의 한계는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인 것은 인정해야 할 것이다.
이제 #여름성경학교, #캠프, #수련회 를 기획해야 할 단계이다. 아니 솔직히 이야기 하면 연초에 구상한 기획을 다 갈아엎고 새롭게 구성해야 할 상황이다. 일단, 학사일정에 맞춰서 진행하기도 어렵고 기존대로 숙박형태를 고수하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기도 할테니까...!
새로운 접근이 필요한 때다. 그런데 문제는 "어떻게...?" 이다. 머리를 맞대어 보지만 기승전코로나! 머리가 아프다. 1월에 겨울수련회 끝나고 기획 다 세운 것을 3월에 다 엎어버리고 새롭게 판을 짰으니 정말 쉽지는 않다. 어려울 뿐이지 답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 답은 뭘까?
답을 찾기 전에 몇 가지만 고려해보자!
첫째, 본질!
성경학교니까, 바이블캠프니까, 교회에서 주최주관하는 캠프니까 당연히 #성경 을 배우고 익힐 수 있는 것이어야 하겠다. 그래서 기획을 할 때 물어보자! 이번 여름행사 총 일정 중 성경을 몇 시간 정도 가르치는지, 그리고 나에게 그런 의지가 있는지..! 아이들은 이번 여름행사에 성경을 얼마나 배우고 갈 수 있는지!
둘째, 재미!
좋다, 교회는 무조건 재밌어야 한다. 레크레이션 요소가 반드시 필요하다. 와서 감정적으로 해소되는 것이 있어야 한다. 이왕이면 온몸으로 경험 할 수 있는 것이면 더 좋다. 5060 세대에게 어릴적 성경학교 때 제일 기억나는게 뭐냐 물으면 반 이상이 캠프파이어, 물놀이, 천로역정을 이야기 한다. 답은 거기에 있다. 재밌게 하되 온몸으로 경험 할 수 있는 것으로...! 그래서 이왕이면 성경을 배우되 온몸으로 익히도록 해보자! 그러면 그들이 5060이 되어 이렇게 말하지 않겠는가! '라떼는 말이야~ 성경을 진짜 재밌게 배웠어!' 이런 라떼면 사발로 들리킬 수도 있겠다. 재밌어야 한다기에 재미만 찾다간 처음에 언급한 본질을 놓치게 된다.
셋째, 믿음!
가장 많은 자원을 투입하는 성경학교에서 '구원', '영생', '믿음', '천국', '예수', '회개', '확신' 등을 해결 할 수 없다면 하지 말아야 한다. 할 수 있는 교회나 전문 사역단체에 맡기는 편이 훨씬 좋다. 집회로 소독약 살포하듯이 해서는 한계가 있으므로 반드시 1:1로 살펴봐야 한다. 교회의 장점은 전 세대가 모일 수 있는 너무나도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시무장로가 3학년 아이 손잡고 '구원상담' 하는 장면을 상상해보라! 다른 것은 몰라도 여름행사로 '믿음'은 해결해야 한다.
돕고 싶다.
5만교회의 교회학교를 돕고 싶다. 교역자도 없고 반주 하는 교사에 겨우 반 맡는 교사 두세명 있는 교회들이 자력으로 치를 수 있는 여름행사가 되도록 돕고 싶다. 교역자도 있고 교사 인프라도 있는데 콘텐츠가 없어서 전문사역단체만 보고 있는 교회들이 진짜 성경학교를 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
하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기꺼이 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돞고 싶다.
아마도 교회들은 금 오후~주일 예배 또는 토 오전~주일 예배 정도로 진행하려고 할 것으로 보인다. 모여서 하기는 하되 숙박은 어려울 테니 통학형으로 하려고 할 것이다. 그런데 하기만 하면 되지 정도로 넘길 수 없는 무게감을 갖는게 여름행사이기에 일정을 짜는데 상당한 고민이 있을 것 같다. 청년을 지도하는 나도 그렇기 때문에...
고민하다가 나눔을 해보려고 한다. 잘 해서 나누는 것도 아니고 탁월해서 나누는 것도 아니고 자랑하려고 나누는 것도 아니다.
정말 돕고 싶다.
교회에서는 교회에서만 들을 수 있는 이야기를, 아이들이 대가를 지불하고 온 여름행사에서 꼭 거기에서만 들을 수 있는 이야기를 모든 교회들이 들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래서 나눔을 해보려고 하는 것이다. 도우려고 하는 것이다.
내용은 대략 이렇다.
3시간이면 구약이든 신약이든 성경개관을 배우고 '아~! 성경이 이거구나!' 할 수 있는 프로그램!
6시간이면 성경개관을 배우고 난 뒤, '모세오경', '역사'선지서', '사복음서', '요한계시록' 중 하나를 개관 할 수 있는 프로그램!
9시간이면, 성경개관을 배우고 6시간 프로그램에 나온 성경의 다섯 파트 중의 하나를 개관하고 포스트게임(코너학습 또는 활동학습 또는 뭐 그런거)까지 할 수 있는 프로그램!
12시간이면, 3~9시간에서 제시된 프로그램에 디테일을 더하여 직접 배우고 익히는 활동에 일부 성경통독까지 들어가는 프로그램!
2박 3일이면, 다섯 파트 중에 하나를 정해서 다 훑어 볼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다 끝나고 나면, '아~! 이 성경이 이거였구나!' 정도로 알 수 있는 프로그램!
계획표와 준비물, 간단한 진행시나리오와 피피티를 나누면 "본질"와 "재미"와 "믿음"을 다 잡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계획표 같은 경우는 3, 6, 9, 12, 2박 3일로 다섯 파트 중의 하나를 진행 할 것을 감안하여 총 25개의 계획표가 생성된다. 뭐 이정도면 어지간한 교회는 다 커버할 수 있겠지 하는 생각에서다. 게다가 간단한 진행과 준비물을 담았으니 '의지'만 있다면 충분히 응용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나도 했는데 뭐~' 라는 생각이기 때문이다. 피피티는 잘 모르겠다. 받고서 난감 할 수도 있는데 없는 보단 낫지 않겠나 싶다. 다섯 파트를 슬라이드 7개 정도로 담아보려고 하니까 피피티 파일만 5개가 될 것 같다.
자료는 지금 제작중에 있으므로 이번 주 목요일 정도면 공개되지 않을까 싶다. 댓글로 이모티콘 남겨주시면 자료 오픈되었다고 답글로 달아드릴 예정이다. 아마도 늦어도 금요일까지는 해보려고 한다. 이메일은 보안상의 이유로 남기지 말기를 부탁드린다.
기대해도 좋다.
자료 말고 여름사역..! 성경 하나만 가지고도 진행 할 수 있는 진짜 성경학교를 하게 될테니까...! 나도 기대된다. 성경을 바르게 가르치면 교회는 바르게 세워질테니까!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것은, 현재 가시적으로 확인 가능한 현실 세계만을 이야기하고 있지 않다. 관측된 중력파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현재 성경의 역사로 대변되는 창세기 1장 3절부터의 역사가 곧 인류의 모든 역사라고 단언할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즉, 1장 2절과 3절 사이의 간극이 얼마나 되는지, 그리고 2절의 진행 기간이 어느 정도인지 인간에게 주어진 ‘시간’의 개념으로는 당시의 ‘공간’의 개념을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 발견된 중력파1)는 성경적으로도 큰 의미를 갖는다. 그래서 1장 3절부터 나와 있는 천지창조 사건은 그 사건보다도 더 먼저 있었던 어떤 사건, 일이 있음을 암시하고 있으며 실제로 성경 스스로 실제 일어났던 사건이 있음을 증언한다. 오늘은 그 부분에 대하여 다루고자 한다. ‘마귀/사탄 개론’이라고 보면 된다.
1) 상대성이론에 의하면 모든 작용은 유한한 전파속도(진공 속에서 광속도)로 전해지는 근접작용으로 해석된다. 가령 전자기 작용에 대한 전자기파는 이런 종류의 근접작용을 하는 파동이다. 마찬가지 의미에서 중력 작용에 대한 파동으로 생각된 것이 중력파이다. A. 아인슈타인은 일반상대성이론의 중력장(정확히 만유인력장)의 방정식에서 장이 약하다고 보았을 경우의 근사법을 써서 진공 속을 광속도로 전파하는 전자기파와 비슷한 중력파의 존재를 밝히고, 쌍성(雙星)의 운동에 대한 중력파의 영향을 논했다. 아인슈타인이 지적한 중력파의 효과는 실제로 관측하기에는 너무 작은 것이었으나, 1974년 J.테일러와 R.헐스의 쌍성펄서 PRS1913+16에 대한 연구를 통하여 중력파의 존재가 간접적으로 확인되었다. 쌍성펄서의 공전주기는 매년 100만 분의 75초 정도 짧아지고 있는데 상대성이론에 따르면 이는 중력파에 의하여 에너지가 방출되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네이버 지식백과] 중력파 [gravitational wave, 重力波] (두산백과) 관련 글, Version February 5, 2016 L1600013-v2 https://www.ligo.caltech.edu/system/media_files/binaries/293/original/Press_Release_Korean.pdf?1455063294
먼저 뱀의 존재이다. 뱀이라는 이름으로 사탄이 등장하는 것을 우리는 유의 깊게 보아야 한다. 뱀의 출현 당시에는 아담과 하와가 ‘타락’ 하기 이전이었으며 하나님조차도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언급하시어 이미 ‘선’과 ‘악’이 존재한다는 것을 일러주고 계신다. 그래서 창세기 1~3장에서 등장하는 ‘하나님’, ‘사람’, ‘사탄’의 세 존재를 알고 가는 것이 곧 신앙의 첫걸음이라고 하겠다. 그래서 이 영적인 세계의 창조를 언급하고자 하는 것이다.
오늘의 본문은 주전 587이나 586년경에 에스겔이 하나님 말씀을 받아서 기록한 내용이다. 그런데 에스겔에게 에스겔 그 스스로도 잘 알지 못하는 ‘어떤 이야기’가 “계시”로 주어졌다
당시, 상당한 부를 바탕으로 사치를 일삼고 그로 인한 교만이 가득한 그런 사람들이 이스라엘 북쪽에 ‘두로’라는 나라로 존재했었다. 세계사 입장으로 보면, 페니키아 해변에 위치한 나라인데 그 당시에는 두로가 바다 가운데 있는 섬으로 일부 문헌에 따르면 두로는, 엄청나게 화려하고 휘황찬란한 도시 형태로 있었다고 전하고 있다. 그러다가 나중에 함락이 되는데, 현재로는 레바논의 해변으로 옮겨져 항구도시로 형성되어 있다.
이런 두로의 모습은 당시나 현재의 자본주의 관점으로 보면, 많은 부의 축적과 누림은 “복받은” 형태라 할 수 있겠다. 즉, 불신앙의 입장에 선 이들이 갖게 되는 시각으로 두로는 성공이며 곧 복받은 사람들이다. 지중해 전 지역의 무역이 그 지역에 집중이 되고 생활 수준은 OECD 최고에 달하는데 어찌 그렇다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하나님은 에스겔을 불러서 세상의 시각으로가 아닌 다른 시각을 계시로 일러주신다.
에스겔 28장 12절에 “인자야”라고 부르신다. 여기서 인자야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선지자 에스겔을 부를 때 사람의 아들아 그렇게 부른 것이라 할 수 있다. 아래 12절, “인자야 두로 왕을 위하여 슬픈 노래를 지어 그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너는 완전한 도장이었고 지혜가 충족하며 온전히 아름다웠도다” 그리고 14절을 보자! “너는 기름 부음을 받고 지키는 그룹임이여 내가 너를 세우매 네가 하나님의 성산에 있어서 불타는 돌들 사이에 왕래하였도다” 여기, “기름부음을 받고 지키는 그룹임이여”라는 표현을 주목해서 보고(밑줄을 긋든지), 15절을 이어서 보자! “네가 지음을 받던 날로부터 네 모든 길에 완전하더니 마침내 네게서 불의가 드러났도다”
하나님을 두로왕을 위해 슬픈 노래를 지으라고 하시며 말씀하신 비유를 살펴보자! 당시의 두로 왕이 주전 580년, 그러니까 587~588년의 그 정도 사람인데 그가 언제 에덴동산에 살았었겠는가! 즉, 여기서 이야기하는 두로왕은 어떠한 것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은유”로 언급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네가 바로 그 기름부음을 받은 지키는 그룹이다’는 표현으로 은유를 나타내고 있다. 그렇다면 ‘그룹’은 무엇일까? ‘그룹’은 헤루핍이라는 천사 세계를 그룹이라고 그렇게 말한다. 천사 세계를 성경이 말할 때 이름 없이 그냥 천사라 하는 곳도 있지만 ‘그룹 헤루핍’이라는 천사들의 세계가 실재한다. 이사야서에 보면 ‘스랍’이라는 천사가 나온다. 이들은 전부 다 하나님을 가까이에서 모시는 그런 천사들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성경에는 이렇게 등장하는 천사를 언제쯤 창조하셨는가 하는 그런 명확한 기록이 나와있지 않다.
스스로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므로 분명히 피조물이다. 피조물이므로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이고 하나님으로부터 지음 받은 존재이다. 그런데 이 피조물을 언제, 어떻게 만드셨는지 인간 창조처럼 구체적인 기록이 없다. 그래서 기록은 없지만 하나님께서 언젠가 창조하시기는 창조하셨는데, 그중에 천사 하나를 지목해서 어떤 특정 사건에 있었던 이야기를 해주시고 계신다.
특별한 천사, 그 모든 천사 중에 가장 아름다우며 가장 지혜롭고 지위가 높은 천사가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그 천사가 교만하게 되어서 타락을 하는 장면, 바로 우리가 읽은 본문의 이야기이다. 교만한 마음이 들어 ‘내가 하나님보다 못한 것이 무엇이 있느냐 자기 의자를 자기 보좌를 하나님 의자 있는 옆에 갔다 놓아보겠다’는 굉장히 교만한 생각을 했다는 것이다. 이 부분은 이사야 14장에 더욱 자세하게 나타나 있다. 12~15절까지인데,
12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13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앉으리라
14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 하는도다
15그러나 이제 네가 스올 곧 구덩이 맨 밑에 떨어짐을 당하리로다
이 부분은 바벨론 왕에 대한 슬픈 노래로 오늘의 본문과 같은 맥락에 있다. 에스겔서 28장은 두로의 왕을 비유할 때에도, 이렇게 힘이 있거나 권세가 있거나 돈이 있거나 지혜가 있거나 해서 교만하게 되면 언제나 비유의 대상을 지칭해두고 있다. 즉, 두로의 왕이 잘 나간다고 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를 그 어떤 타락한 천사에 비유하고 있고 바벨론 왕도 교만에 이르게 되었을 때,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라고 하는 어떤 천사 타락한 천사에 비교하고 있다.
이것은 그 당시 사람들에게 (현재의 한국인은 잘 모르는) 하나님의 천사 중에 가장 잘생기고 가장 똑똑하고 가장 지혜롭고 가장 큰 권세를 가지고 있던 자가 교만했다가 타락한 그 이야기는 누구나 어린아이까지도 다 알고 있는 이야기인 것이다.즉, 현재(성경에서의 지금 시점) 어떤 사람을 설명할 때에 이 사람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께서 이 사람을 어떤 시각으로 보고 계시는지 이야기하고자 할 때에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그 옛날 교만했다가 교만한 천사가 타락한 이야기로 그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시는 것이다.
애초부터 없던 사람은 없었으니 없어도 되는 생활이 곧 자기의 삶이므로 없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영광스럽고 권세가 있는, 아름다우며 부유한 그런 존재가 아무것도 없이 쫓겨나면 그것을 회복하려고 엄청 노력하게 된다. 이런 현상은, 사탄이 어떤 사람에게 들어가게 되면 무엇을 추구하게 되는지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것과 같다. 하나님 나라에서 쫓겨나 권세나 영광이나 부귀나 영화나 지혜나 박탈 당한 채로 쫓겨났다면 그가 추구할 때 그가 원래 가졌던 그것을 다시 추구한단 이야기이다. 다시 말하면 이 세상에서 가장 잘 나간다는 권세의 세계, 사치의 세계, 명예의 세계 이런 곳에는 언제나 사탄이 개입하게 되어있다는 점이다.
그 당시에 에스겔서에 나오는 두로의 왕에게 지금 사탄이 들어가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는 것과 같다. 그래서 두로 왕이 세상에서 무역을 해서 잘되고 있다. 그 당시 세계에서 가장 잘 살게 되는데 왜 그렇게 잘 살게 되느냐 왜 그렇게 사치하고 교만하고 그렇게 할 수 있느냐를 본다면, 그 옛날 하나님 나라에서 타락한 그 천사가 천사 마귀가 지금 두로 왕에게 들어와 있게 되면 나타나는 결과 그것이 곧 돈을 끌어모으게 되고 사치하게 되며 권세를 부리를 것으로 표현된다.
그래서 성경은 그런 것을 보고 부러워하지 말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예수님 당시에는 그 사탄이 로마라는 나라를 붙잡고 온 세계를 지배하고 있었고 그것이 한때는 두로와 바벨론 또 한때는 애굽, 앗수르, 헬라, 로마, 히틀러, 일본의 히로히또 이런 식으로 세계로 돌면서 사탄이 쓸 만한 인물 없나 하며 찾다가 이렇게 해서 사치하고 교만하고 권세 있고 잘 살고 이런 것을 추구하도록 하는 것이다. 세상적인 것... 이런 것을 성경은 세상 적이고 정욕 적이고 육신적이고 물질적이고 마귀적이라고 말하고 있다. 하나님이 주셔서 풍성하게 누리게 하는 그런 길이 있는가 하면 사탄이 들어가서도 이런 악을 누릴 수가 있는 삶이 곧 공존한다는 것이다.
사탄의 세계 귀신의 세계 한 군데만 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요한계시록 12장 3~4절이다.
3하늘에 또 다른 이적이 보이니 보라 한 큰 붉은 용이 있어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라 그 여러 머리에 일곱 왕관이 있는데
4그 꼬리가 하늘의 별 삼분의 일을 끌어다가 땅에 던지더라 여기서 알 수 있듯이, 사탄이 타락하면서 저 혼자 타락한 것이 아니고 하늘의 천사들 세계를 삼분의 일을 같이 데리고 타락했다는 성경적 근거이다. 함께 타락한 천사들은 오늘의 우리가 알고 있는 귀신이라 할 수 있다.
사탄 혹은 마귀라고 하는 것은, “단수”로 되어있다. 최고로 높은 자, 두로 왕에게 해당되는 화강석까지 왔다갔다하던 또는 아침의 아들 계명성아 하던 것은 ‘하나’이다. 그 하나가 천사 중에 가장 높은 천사인데 그 아래 천사들 중에 삼분의 일에 해당하는 수를 데리고 함께 하나님께 반역을 하면서 타락을 한 것, 이것이 곧 성경의 이야기이다. 하나님은 이들을 가장 무시무시하고 악독하고 독한 것들은 무저갱 속에 가두어 놓으신 것이다(그래서 그렇게 지독한 것들은 여기에 없고 이 땅에 활동하는 악한 영들은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진짜 믿는가, 가짜 믿는가, 시험할만한 정도의 수준의 것들만 있다고 본다).
베드로후서 2장 4절에 보면,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라는 표현이 나온다. 이것들은 지금도 나오지 못한다. 아주 악한 것들은 어두운 구덩이에 던져져서 거기에 갇혀있는 것이다.
유다서 6절도 보면,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라는 표현이 나온다. 확실히 여기를 보면 갇혀있는 것들이 있다. 땅에 나와서 제멋대로 활동이 안 되는 것들이 있는 것이다. 그것은 아주 악한 것들이다. 그리고 지금도 어떤 귀신이 갈수록 악해져서 너무 심하게 사람을 괴롭히는 그런 경우가 있으면 가끔 잡아서 묶어다가 무저갱에 집어넣으시는 것으로 보인다.
누가복음 8장 26~39절에 보면,
26그들이 갈릴리 맞은편 거라사인의 땅에 이르러
27예수께서 육지에 내리시매 그 도시 사람으로서 귀신 들린 자 하나가 예수를 만나니 그 사람은 오래 옷을 입지 아니하며 집에 거하지도 아니하고 무덤 사이에 거하는 자라
28예수를 보고 부르짖으며 그 앞에 엎드려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당신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당신께 구하노니 나를 괴롭게 하지 마옵소서 하니
29이는 예수께서 이미 더러운 귀신을 명하사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셨음이라 (귀신이 가끔 그 사람을 붙잡으므로 그를 쇠사슬과 고랑에 매어 지켰으되 그 맨 것을 끊고 귀신에게 몰려 광야로 나갔더라)
30예수께서 네 이름이 무엇이냐 물으신즉 이르되 군대라 하니 이는 많은 귀신이 들렸음이라
31무저갱으로 들어가라 하지 마시기를 간구하더니
32마침 그 곳에 많은 돼지 떼가 산에서 먹고 있는지라 귀신들이 그 돼지에게로 들어가게 허락하심을 간구하니 이에 허락하시니
33귀신들이 그 사람에게서 나와 돼지에게로 들어가니 그 떼가 비탈로 내리달아 호수에 들어가 몰사하거늘
34치던 자들이 그 이루어진 일을 보고 도망하여 성내와 마을에 알리니
35사람들이 그 이루어진 일을 보러 나와서 예수께 이르러 귀신 나간 사람이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 예수의 발치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두려워하거늘
36귀신 들렸던 자가 어떻게 구원 받았는지를 본 자들이 그들에게 이르매
37거라사인의 땅 근방 모든 백성이 크게 두려워하여 예수께 떠나가시기를 구하더라 예수께서 배에 올라 돌아가실새
38귀신 나간 사람이 함께 있기를 구하였으나 예수께서 그를 보내시며 이르시되
39집으로 돌아가 하나님이 네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셨는지를 말하라 하시니 그가 가서 예수께서 자기에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셨는지를 온 성내에 전파하니라
군대귀신이 ‘무저갱에 들어가라 하지 마시기를 간구한다는’라는 표현이 나온다. 예수님이 무저갱에 들어가라고 하지도 않으셨는데 귀신들이 간구를 하고, 또 그들이 먼저 예수님을 알아본 것이다. 예수님은 무저갱 대신에 돼지 떼에 들어가 그 돼지들이 몰사를 한 내용, 조금만 상상하면서 보면 끔찍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놀라운 이 사건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다. 군대 귀신 들렸던 자가 온전하게 되니까 사람들이 오히려 예수님이 오시기를 거부한 것이다. 이것은 이 땅에 있는 귀신들이 시간이 갈수록 악해지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어느 정도 선 가지고는 대적이 안 된다는 뜻이다. 그래서 묶어서 수시로 무저갱에 던져 넣는 것으로 보인다. 당시의 예수님은 그때의 예수님으로 그치지 않고 오늘, 우리가 고백하는 주님이시오 예수님과 동일하기 때문이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은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연약함을 아시기 때문에 감당치 못할 시험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피할 길도 내신다고, 그렇게 되어있다. 그러므로 도저히 감당하지 못할 그런 귀신은 없는 것이다. 우리가 참 믿음으로 진리를 따라서 하나님 말씀을 따라서 살면 이기지 못할 것은 없다. 사실 이 땅에는 온갖 귀신들이 가득하지만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이기게 해놓으셨다. 예수를 안 믿는 사람들은 매일 속아서 살지만 예수님을 믿고 성경을 아는 사람들은 거기 이용당하지 않아도 될 만큼, 그 정도 되는 것들만 활동이 허락되어 있다. 극악무도한 귀신들은 일찍부터 지옥에 던져 가두어 놓으셨다. 지금도 수시로 너무 악독한 것, 사람이 감당하지 못하는 것들은 묶어서 무저갱에 들여보낸다는 사실을 우리는 성경에서 확인하여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잔챙이 같은 것들이 무서워서 어두운 밤에 골목도 가지 못하고 그럴 필요가 없는 것이다. 감당치 못할 시험당함을 허락하신 일이 없고, 시험당할 즈음에 하나님께서 또한 피할 길도 내신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겠다. 그리고 더 감사하고 놀라운 것은 우리를 돕는 존재로 천사를 두셨다. 그 수가 귀신들의 수보다 많다. 왜냐하면 타락한 것이 삼분의 일이니까....! 이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바로 엘리사가 경험한 사건에서도 알 수 있다(왕하 6:8~23 /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한 자가 그들과 함께 한 자보다 많으니라).
오늘의 내용을 요약하여 보면, 현실 세계 이전에 영의 세계가 존재했다. 그 세계가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알 수 없으나 실재한다. 그 세계는 곧, 악한 영과 천사의 세계이다. 악한 영은 교만하여 타락하였고, 삼분의 일이 같이 타락하였다. 그중의 악독한 것은 이미 무저갱에 가두어졌고 그중의 일부가 현재에 존재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끝까지 이 피조 세계에서 성도를 지키신다. 그들은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 믿음 안에 있는 자들이다.
활동
[활동] 창세기 1장에서 네 단어 찾기, ‘하나님’, ‘종류대로’, ‘그대로 되니라’, ‘보시기에 좋았더라’
[준비물] PPT, 창세기 1장
“다음 중,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이’라는 단어가 몇 번 나올까요! ‘하나님의’ 아닙니다. ‘하나님이’입니다.”
다그치듯 하지 않습니다. 설교를 잘 들었는지 그렇지 않은지는 점검하고 짚어주는 시간이며 활동한 내용을 통해 말씀에 대한 이해와 반응을 확인하는 시간입니다. 아이들은 배운 것을 작게라도 활동에 참여한 후에 나눔을 한 것이므로, 어떤 형태로든 자기의 감정과 느낌을 이야기하게 됩니다. 짧게 한 마디 하더라도 최대한 칭찬과 격려로 나눔을 이끌어 가시기 바랍니다. 나눔 진행 순서는 다음과 같습니다(현장의 상황에 따라 다르게 진행 가능하며 유동적으로 접목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점검 및 활동내용 소감 나눔] → [말씀을 바탕으로 한 일주일의 각오] → [암송구절 제창] → [축복 기도 후 해산]
자, 다 같이 오늘의 본문과 제목이 어떻게 되지?
영적인 세계는 어떤 곳이지?
그래, 이 세상에서 우리를 끝까지 지켜주신다고 하셨으니 우리는 믿기만 하자! 그런데 누구를 믿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