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13:9-13
여러 가지 이상한 교훈에 끌려 다니지 마십시오. 음식 규정을 지키는 것으로 마음이 튼튼해 지는 것이 아니라, 은혜로 튼튼해지는 것이 좋습니다. 음식 규정에 매여서 사는 사람들은 유익을 얻지 못했습니다.
우리에게는 한 제단이 있습니다. 그런데 유대교의 성전에서 섬기는 사람들은 우리의 이 제단에 놓은 제물을 먹을 권리가 없습니다.
유대교의 제사의식에서 대제사장은 속죄제물로 드리려고 짐승의 피를 지성소에 가지고 들어가고, 그 몸은 진영 밖에서 태워버립시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도 자기의 피로 백성을 거룩하게 하시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그러하므로 우리도 진영 밖으로 나가 그에게로 나아가서, 그가 겪으신 치욕을 짊어집시다.
여러 가지 다른 교훈에 끌리지 말라 마음은 은혜로써 굳게 함이 아름답고 음식으로써 할 것이 아니니 음식으로 말미암아 행한 자는 유익을 얻지 못하였느니라
우리에게 제단이 있는데 장막에서 섬기는 자들은 그 제단에서 먹을 권한이 없나니
이는 죄를 위한 짐승의 피는 대제사장이 가지고 성소에 들어가고 그 육체는 영문 밖에서 불사름이라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리라
그런즉 우리도 그의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
(개역개정)
https://youtu.be/BZtq5TQTepw?si=dTMVD2CcN4BjdyyI
- 복음의 정체성을 소유하라
안식교의 음식법에서 겔로그의 시리얼(채식주의 식단의 보완)이 탄생했을 만큼 안식교에서는 음식법이 중요하다. 하지만 음식법에 메이게 된다면 삶에서 신앙의 잘못된 태도를 가질 수 있고, 다른 사람과의 비교를 통해 교만과 같은 율법주의적인 생각을 가질 수도 있다. 이것이 바로 경계해야 할 점이다.
여러 가지 이상한 교훈에 끌려 다니지 마십시오. 음식 규정을 지키는 것으로 마음이 튼튼해 지는 것이 아니라, 은혜로 튼튼해지는 것이 좋습니다. 음식 규정에 매여서 사는 사람들은 유익을 얻지 못했습니다.
히브리서 13:9
본문 9절의 '여러 가지 이상한 교훈'은 유대교의 음식법에 대한 이야기인데 특별히 이를 통해 '거룩'과 구별된 삶을 가르치고 있다. 그들의 일상이 거룩해지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다.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이집트 땅에 데리고 나온 주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게 되어야 한다.
레위기 11:45
신약시대에 와서는 음식법을 지키지 않았다. 음식법은 '거룩'을 가르치기 위한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음식법은 일종의 자전거의 보조바퀴와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자전거를 타는 본질(거룩)을 알기 위한 보조 수단에 불과한 것이다.
신약시대에 와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으로 거룩의 본질을 알게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음식법을 지키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일부 유대인들은 음식법을 계속 지켜야만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다고 가르쳤다. 이외에도 할례를 받아야만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다, 거룩해질 수 있다고 가르쳤다. 음식법을 포함한 율법을 지킴으로 이것이 '선민의식'으로 발전한다면 이것은 교만이라 할 수 있고, 죄악된 본성이라 할 수 있다. 즉, 율법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높이고 자존감을 높이고자 하는 것은 영원한 것이 아니다. 나를 튼튼하게 하는 것은 '거룩'이 아니라 바로 복음 즉, '은혜'인 것이다.(히 13:10)
내 살은 참 양식이요, 내 피는 참 음료이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있고, 나도 그 사람 안에 있다.
요한복음 6:55-56
진정한 구약의 음식법의 성취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2. 복음의 정체성을 드러내라
유대교의 제사의식에서 대제사장은 속죄제물로 드리려고 짐승의 피를 지성소에 가지고 들어가고, 그 몸은 진영 밖에서 태워버립시다.(히브리서 13:11) 대속죄물은 진영 밖에서 태워버림(부정함을 상징) 궁극적으로 가리키는 것은 바로 진정한 속죄의식이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도 자기의 피로 백성을 거룩하게 하시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히브리서 13:12) 그리스도의 피로 인한 속죄로 영원한 제사를 단번에 드림으로 완성 그러하므로 우리도 진영 밖으로 나가 그에게로 나아가서, 그가 겪으신 치욕을 짊어집시다. (히브리서 13:13) 예수님의 고난은 '치욕' = 모욕 + 조롱 ; 우리도 그와 같은 치욕을 짊어지자. 믿음을 자연스럽게 드러내자고 이야기한다. 현대에도 기독교인으로 살아가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려고 하는 사람들은 모두 박해를 받을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3:12
기독교인의 참된 삶에는 고난과 칭찬이 함께 드러난다. 기독교인으로써의 삶에서 칭찬만 추구할 수는 없다. 하지만 모든 것을 감내한다면 복음에 대한 정체성은 드러나게 되어있다.
또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다 내려놓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다 놓아둔다. 그래야 등불이 집 안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환히 비친다.
마태복음 5:15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드러내지 못하는 이유는 두려움 때문이다.
지도자 가운데서도 예수를 믿는 사람이 많이 생겼으나, 그들은 바리새파 사람들 때문에, 믿는 다는 사실을 드러내지 못하였다. 그것은, 그들이 회상에서 쫓겨날까봐 두려워하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보다도 사람의 영광을 더 사랑하였다.
요한복음 12:42-3
삶에서 드러나는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은 믿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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